특수학급 C군 이야기
C군은 감정이 풍부한 아이다. 화를 잘 내는 것도 어쩜 그가 감정이 풍부하다는 증거인 것 같다. 슬픔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지루함도 제대로 구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분노하는 것으로만 표현하는 건지 모르겠다. 가끔 C군의 여린 속내가 드러나는 일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폭군 같은 외면과는 달리 내면은 한없이 부드럽고 순수한 아이다.
2학년 통합교과 단원에는 북한에 대해 배우는 내용이 담겨 있다. C군과 함께 학습지를 풀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얼싸안고 울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C군은 이 그림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글자를 점으로 연결해야 했다.
"C군아, 이건 뭐 하는 그림일까?"
나는 C군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고 있어요. "
"기분이 어떤 거 같아?"
"울고 있어요. "
C군은 그림 자체가 주는 정보 이외에는 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남한에 살고 있을까, 북한에 살고 있을까?"
"북한!"
아이고. 정말 모르는구나. 나는 지도를 가져와서 북한과 남한에 관해 설명했다. 북한과 남한 사람은 한때는 같이 살았으나 지금은 헤어져 만날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이 할아버지는 북한에 살아. 이 할머니는 남한에 살아. 서로 못 만나다가 오랜만에 만난 거야. "
". . . . . . "
"얼마나 보고 싶었겠니? '아이고, 여보!' '아이고, 당신!' 오랜만에 만나니까 너무 반가워서 이렇게 안고 우는 거야. 이런 걸 '이산가족 상봉'이라고 해. "
". . . . . . "
"그러면,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앞으로 같이 살 수 있을까?"
"?"
"살 수 없어. 잠깐 만났다가 다시 헤어져야 해. 이 할아버지는 북한으로, 이 할머니는 남한으로 가야 해. "
C군은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다시 못 만나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또 하면, 또 만날 수 있어. "
C군은 눈물이 나는 걸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는 것 같았다. C군을 울리는 건 뭐 크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작은 조각 그림 하나도 감수성 짙은 소년에게는 최루성이었다.
추석 즈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계기 교육의 의미로, 추석에 하는 일을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성묘하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C군과 K군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니?"
"예"
"그렇구나.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이야. 나이가 들고 병에 걸려서 돌아가시거든. 그럼 이런 무덤에 묻히게 돼. 그럼 엄마랑 아빠랑 같이 여기 산소에 찾아가는 거야. "
나는 손가락으로 그림 속의 무덤을 가리켰다.
"무덤에 들어가면 해골이 돼요?"
해골은 게임을 해본 아이들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응. 땅에 묻히면 몸은 해골이 되었다가, 나중엔 흙이 되어 사라지는 거지. "
아이들의 눈빛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늙으면 죽어요?"
C군이 물었다. 이렇게 가끔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대답해줘야 할 때가 있다.
"응, 그래. 사람은 늙거나 병에 걸리면 죽게 돼. 사고가 나도 죽어. C군도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
"죽으면 어떻게 돼요?"
특수학급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럴 때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들도 죽음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런 면에서 죽음이란 온 인류의 공통 화두인 게 틀림없다.
"선생님은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해. "
아이마다 가진 종교성은 다르겠지만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절망적인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영혼의 존재조차도 종교 편향 교육이라면 도리가 없지만, 아이들은 영혼이 존재하고 하늘나라가 존재한다고 믿어야 그나마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힘을 갖게 되는 것 같았다.
"엄마도 죽어요?"
"응?"
"엄마는 안 죽는데, 엄마는 안 늙었는데. "
"엄마도 나중에 나이 많이 드시면 돌아가실 수 있어. "
순간 C군은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눈은 붉어졌다. 나는 아차 싶어서 말을 고쳤다.
"아니아니. 지금이 아니고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말이야. 엄마 머리가 하얘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아주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되면 말이야."
수습을 해도 이미 늦은 것 같았다. C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안 죽는데. 형이랑 나랑 계속 같이 살 건데."
C군은 금방이라도 엄마를 잃을 것 같은 슬픔 속에 잠겨 버렸다. 성묘에 대해 가르치려다가 교실은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동화 수업을 하다가 슬픔에 젖은 날도 있었다. 그때 우리는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결말 부분을 읽고 있었다. 날개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돌아간 선녀와 어렵사리 재회한 나무꾼. 그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문득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선녀는 나무꾼에게 날개 달린 말을 주며 절대 말에서 내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만난 나무꾼은 팥죽을 먹다가 그것을 말 등에 엎지르게 되고, 뜨거움에 놀란 말은 몸부림을 치다 나무꾼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날개 달린 말은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나무꾼은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어 매일 지붕에 올라가 선녀를 그리워하다 수탉이 되어 버렸다. 이야기를 다 읽었는데 C군이 눈을 깜박이고 있는 게 보였다.
"C군아, 왜 그래?"
"아이씨"
"왜 그러는데? 뭐 때문에 화났어?"
"왜 팥죽을 먹냐고 엉망이잖아. "
"아. . . "
"안 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말 타고 가면 되잖아. 아나, 왜 먹냐고. "
C군은 팥죽을 먹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진 나무꾼을 향해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눈물까지 닦으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꼭 먹고 가라고 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나 봐. "
"아 왜 뜨겁냐고"
"아,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머니가 안 뜨거운 팥죽을 주는 거야! 호호 식혀서 미지근하게 만든 다음에 주는 거야!"
". . . . . . "
"음. . . 또. . . 팥죽 그릇을 안 떨어뜨리게 이렇게 손으로 잘 잡고 먹으면 어떨까?"
". . . . . . "
"음. . . 또 무슨 방법이 있을까?"
선생님이 팥죽 그릇을 안 떨어뜨리는 갖가지 방법을 얘기해주니 기분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C군은 혼자 나무꾼이 하늘나라로 돌아갈 새로운 방법이 없을지 골몰하기 시작했다.
"아, 그럼 되겠네. 좋은 생각이네. "
"그럼 수탉은 나무꾼인가요?"
"응. 나무꾼이 수탉이 된 모양이야. "
"죽어서요?"
"응, 죽어서 수탉이 됐나 봐. "
"죽었는데 어떻게 수탉이 되죠?"
"어. . . . 그게. . . . 나무꾼의 영혼이 수탉이 되었나 봐!"
C군은 수탉이 된 나무꾼이 슬퍼진 모양이었다. 또 눈을 깜박였다. 휴우. 나는 선녀와 나무꾼이 이렇게 눈물이 나도록 슬픈 동화인지 처음 알았다. 동화 한 편도 이토록 진정성을 갖고 읽다니. 내 설명은 얼마나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 걸까.
때로는 진땀 나지만, 눈물 많고 감수성 넘치는 C군 덕분에 대수로울 것 없는 내 수업이 반짝반짝해진다. 수업을 앞둔 내 두 손이 비어 있어도 가득 찬 것처럼 굴 수 있는 건 아이들이 마저 가득 채워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수업의 주인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라고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