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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나는 아이를 울리는 교사다

특수학급 C군 이야기


예전에 병설 유치원 교사에게서 들었던 하소연 하나가 생각난다. 수업이 끝난 뒤, 한 학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려고 교실에 찾아왔다고 한다. 그 학부모는 예전에 어떤 안 좋은 경험을 했는지 교사들에 대한 피해 의식이 강했고, 꽤 예민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마침 아이가 엉엉 울고 있었다. 학부모는 아이가 울고 있는 게 영 못마땅했는지 아이를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다.


"왜 그래? 선생님이 꼬집었니?"


세상엔 아이를 꼬집는 교사도 있겠지만, 교사가 아이를 꼬집을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교사가 훨씬 많다. 그래도 어떤 학부모는 집에서는 자주 울지 않는 아이가 학교에서 우는 걸 보면,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래서 아이가 우는 원인이 전부 교사에게 있는 양 의심과 오해의 화살을 쏘아댄다. 그리고 나도 그 교사 중에 하나다.

영문도 모르고 맞은 화살은 살갗보다 더 여린 마음의 속살을 파고들어 상처를 남긴다. 아이가 우는 게 교사 탓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이미 깊이 박힌 의심의 뿌리를 뽑을 자신도 없다. 졸지에 교사는 아이를 울린 죄인이 된다. 울리지 않았더라도 우는 아이를 제대로 달래지 못한 죄인이 된다. 특히, 특수교사는 아이의 울음마저도 책임지라고 강요받을 때가 많다. 그게 행동 문제 전문가라는 당신의 역할 아니냐며.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당신이 월급을 받는 대가가 아니냐며. 그러면 할 말이 없어진다. 변명하면 할수록 자신이 무능한 교사임을 자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방과 학교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미술 수업을 받으러 가는 C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요즘 계속 C군의 태도가 나빴다는 얘기도 들렸다. 외부 강사는 미술치료사 출신이었는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지도하는 건 우리 학교가 처음이었다. 계속 말썽이라는데 모른척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뒷문으로 미술 수업을 하는 교실에 몰래 들어가 보았다.


예상은 여지없었다. 미술 강사의 설명은 조금도 듣지 않던 C군은 책상을 거칠게 앞뒤로 흔들더니, 보란 듯이 책상을 앞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책상은 거의 90도 가까이 기울어져서, 거의 쓰러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C군은 손으로 책상다리를 붙들어 책상이 완전히 쓰러지진 않게 버티고 있었다. 자신이 금방이라도 책상을 내동댕이 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이 일이 수업 중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미술 강사는 "C군아, 하지 마."고 말할 뿐이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전혀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아이들 활동을 보조하는 특수교육실무사도 옆에 있었지만, 소근육이 약한 아이 옆에서 자신은 너무 바빠 C군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듯 그의 행동을 못 본 척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늘 펼쳐질 수업 풍경이었다. C군은 교사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계속했다. 아무도 자기를 혼낼 수 없다는 듯, 아무도 자기를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듯 말이다. 보다보다 못한 내가 한마디를 했다.

"똑바로 앉아. "

미술 강사도 실무사도 두려워하지 않는 C군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 내가 짜나고 거슬렸을 것이다. 그때부터 C군의 시선은 교실 뒤에 서 있는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모든 불만은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듯 째려보는 눈빛. 이 순간만큼은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하는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듯한 시선.

"C군. "

나는 C군만 들릴 만한 크기로 이렇게 말했다.

"미술 수업 하지 말고 선생님 교실로 갈까? "

반 협박조였다. 부끄럽지만 그 순간에는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내 수업도 아닌 공간에서 큰 소리로 훈육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내 눈치를 살피던 C군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좀 얌전해진 것 같아 다행스러워하며 나는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십여 분이 지났을까. 나는 C군이 계속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져 다시 미술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포개서 접은 종이를 오리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팔을 양옆으로 벌린 한복 입은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린 종이를 펼치면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사람들 그림이 되었다. C군의 책상 구석에도 내팽개쳐진 그 그림이 있었다. C군은 가위질을 잘 못 하는데, 말끔하게 오려진 것으로 보아 누군가 대신 오려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수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흰 종이에 무당벌레만 반복해서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무당벌레는 C군이 가장 좋아하는 곤충이다. 언젠가 C군이 내게 물었다. 무당벌레가 어떤 소리로 우는지 아느냐고. 난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C군이 알려 주었다. 무당벌레는 "무당무당" 운다고.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부엉이가 "부엉부엉" 울듯, 무당벌레는 "무당무당" 운다고. 당시에는 그저 웃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는 무당벌레를 볼 때마다 환청처럼 "무당무당"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C군 덕분에 나는 무당벌레가 어떤 소리로 우는지 알게 되었다.

"무당~~무당~~"

무당벌레를 그릴 때면 C군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졌다. 무당벌레가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줄곧 무당벌레만 그리는 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통합학급 미술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뭘 어떻게 그리고 만들어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무당벌레를 그렸다. 무당벌레의 붉은 날개 사이에 숨으면 C군은 안전했다. 무당벌레는 아무런 실패감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날 무당벌레는 성이 잔뜩 난 모양이었다. 무당벌레를 그리는 것조차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미술 강사의 얼굴을 향해 사인펜을 집어 던지려는 듯한 위협을 할 때는 내가 다 난처해 어쩔 줄 몰랐다. 강사는 난처해하면서도 훈계조차 하지 않았다. 강사가 C군을 무서워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이게 맞을까? 이게 정말 그 아이를 위한 길일까? 지켜보는 나는 속이 타들어 갔다.

주의를 환기해 사인펜을 던지는 행동을 잊게 하려고, 나는 C군 앞에 강강술래 그림을 내밀다.

"C군아, 한복 치마를 한번 색칠해볼까? "

 나는 붉은 색연필을 집어 들었다. C군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치마에 무당벌레 무늬가 있으면 어떨까? 아주 예쁠 것 같은데. "

빈 종이에 낙서처럼 무당벌레를 그리는 것보단, 한복 치마에 무당벌레만 그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C군이 수업의 틀에 조금이라도 들어왔으면 했다. C군은 한복 치마에 무당벌레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내 재촉에 마지못해 조금 끄적이기도 했다. 조금 그리다 밀어내면 다시 끌어다 책상에 올려놓고, 또 조금 그리다 밀어내면 다시 끌어다 책상에 올려놓느라 약간 소란스러워졌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신경질이 난 C군이 팔을 휘두르는 바람에 강강술래 종이의 일부가 찢어졌고, 나는 거기서 물러섰다.


내 수업이 아니기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수업이었고, 내 손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업은 막바지였고 C군은 수업이 원하는 결과물을 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나는 C군을 집에 보내고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내 교실, 내 수업 안에서는 타협이 되는 듯해도 내 손 밖에서는 여전히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C군이었다. 내 통제권 밖의 아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였다. 정리를 마친 특수교육실무사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네. "
"제가 보기에 C군은 말이에요. 선생님만 보면 화를 내는 것 같아요. "
"네? "
"아까 미술 시간에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선생님이 오시고 나니까 화를 내더라고요. "

이게 무슨 말일까. C군이 화내는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불쾌함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듯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쏘아보던 C군의 얼굴과 나를 비난하는 듯한 그녀의 얼굴이 동시에 겹쳤다.

"그게 아니에요. "

목구멍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필사적인 해명을 시작했다.

"아까 제가 뒤에서 보는데 C군이 미술 강사님에게 펜을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시비를 걸고 있던데요. 그걸 막느라 제가 C군 옆에 가서 수업  참여를 도와준 거 잖아요. "
"그랬나요? 그건 제가 몰랐네요. 하지만 수업 초반에도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C군이 다시 얌전해졌어요. "
"제가 C군이 책상을 쓰러뜨리려는 걸 막았잖아요. 그리고서 얌전해졌길래 자리를 뜬 거고요."

말을 할수록 가슴에 생채기가 났다. 내 말에 나 스스로가 책임질 수 있을까. 정말 C군이 화내는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기어코 내가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뭘까. 교사로서의 위신?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내 살을 깎아 먹는 것 같았고, 더 깊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C군이 책상을 쓰러뜨릴 때, C군이 선생님에게 펜을 던지려 할 때 당신은 뭘 했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마 그녀는 자기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특수교육실무사가 자신이 전담으로 맡고있지 않은 아이의 돌발적인 문제 행동까지 중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다만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자리가 오히려 부러웠다. 특수교사는 단 하루도 무책임할 자유가 없으니 말이다.  

 



꼬집어서 아이를 울렸냐는 오해를 받은 선생님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헌신했을 텐데, 집에 돌아가는 마당에 아이가 울어 버리고 학부모에게 오해를 받았으니 온종안 쌓은 노력이 수포가 된 것이다.


솔직히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아이를 울릴 일은 거의 없다. 아이가 원할 때 과자를 주고, 아이가 원할 때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아이가 원할 때 만화 영화를 보여준다면 아이는 학교에서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아이가 친구를 때려도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아이가 욕을 하고 친구와 다퉈도 못 들은 척하고, 아이가 공부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면 아이는 학교만큼 편한 곳이 없을 것이다.


이제 인정해야겠다. 나는 사실 아이를 울리는 교사다. 누가 보면 아이와 싸우려고 학교에 오는 사람처럼 보였을 정도로 C군과 대결하고 또 대결했다. 온순하고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들 사이에서 C군은 유들유들해졌지만 동시에 버릇이 없어지고 제멋대로 굴었다. 나도 평소에는 다정하고 관대하게 굴었지만, 내가 가진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타협하지 않았다. 적어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은 허용할 수 없었다. 그게 내가 가진 최소한의 틀이었다.


물론 약을 먹지 못하는 ADHD 학생이니 이해해야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중한 학령기를 아무렇게나 낭비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자기 중심성을 깨주지 않고 평생 유아와 같은 감정 상태로 살아간다면 C군에게는 평생 면역력을 키울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인생에 하나도 개입하지 않는 건 방임이 아닐까. 나는 방임하는 선생님이 되기 싫었다. 대신에 나는 면역력을 키워주는 예방주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프랑스 교육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 내 교육관과 비슷해서 와닿았던 개념이 있었다. 바로 카드르(틀)였다. 프랑스에서 교육은 단호한 카드르로 본다. 카드르란 어떤 부분에는 매우 엄격하면서도 다른 것에 대해선 매우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이다. 카드르라는 대원칙만 지키면 그 틀 안에서는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지 않는다. 어떤 일은 허용되고 어떤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격하게 제시한다.

제한이 없으면 아이들은 스스로의 욕망에 소모되고 만다. 프랑스의 부모들이 카드르를 강조하는 이유는 경계가 없으면 아이들이 자기 욕구에 제압당해버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중략) 자기 욕구에 제압당했는데 그걸 스스로 멈출 줄을 모를 때 바로 떼쓰기가 나온다.
                                                                                         -파멜라 드러커맨 <프랑스 아이처럼> 중에서


특수교육에서는 학생마다 서로 다른 틀을 설정한다. 학생의 장애 정도, 능력, 강점과 약점에 따라 틀의 크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할지가 결정된다. 한복 그림에 내 마음에 드는 모양과 색깔로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정해진 한복 그림에만 그려야 한다면, 그게 내가 정한 카드르다. 설정한 틀이 적절한지는 교사의 역량에 달려 있다. 물론 틀릴 수 있다. 학생에게 무리가 되는 목표로 잘못 설정할 수도 있다. 학생은 모두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목표를 설정하기란 불가능하다. 계속 반성하면서 고쳐나가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사 자신을 믿으면서.  


변명을 하자면 이런 것이다. 아무리 특수한 훈련을 충분히 받은 폭탄 제거반이라도 매번 조금씩 다른 모양과 구조를 가진 폭발물이 주어진다면 그 해체 작업은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이전에 본 적 없는 지뢰를 밟고 서서,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지뢰를 제거하는 일은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아마 고도의 집중과 긴장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특수교사인 우리의 일이 그렇다. 아이를 폭탄이나 지뢰에 비교하는 게 온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각기 다른 아이들의 인생에 뛰어들어 그 인생에 몸을 부대끼며 사는 특수교사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학생을 화나게 하는 것이 나쁜 선생님일까, 학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게 나쁜 선생님일까. 물론 나는 후자가 정답이라고 믿고 있지만, 마음이 흔들린다. 교사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게 슬프고 억울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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