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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초보운전 선생님의 수난기

특수학급 C군 이야기



C군은 현장학습 전날까지 계속 결석이었다.


평소 결석이 잦은 편이긴 했지만, 결석이 며칠째 계속되니 걱정이 됐다. 결석 첫날에는 어머니가 전화로 C군이 아프다는 걸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픈 건지 모를 일이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잠드는 C군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짜증과 분노를 어머니에게 쏟아놓는 게 다반사였다. 평소 C군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머니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선생님의 추궁을 받게 되니까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를 적당히 둘러대서 상황을 모면했을 수 있었다. 나는 계속 의심스러웠다.

C군 어머니는 휴대전화가 없었다. C군 집에서 유일하게 전화를 가진 사람은 5학년인 형뿐이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려면, 어머니가 연락을 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어머니가 퇴근하는 늦은 시간에 맞춰 C군의 형 번호로 전화를 해야 했다. 그나마도 연락이 안 될 때가 많았다. 말하기 곤란하거나 난처한 일이 있을 땐 더 연락이 안 됐다. 어머니와 통화하고 싶다고 형에게 문자는 남겨 놓았는데, 어머니가 실제로 읽었는지 알 수 없었다. 과연 C군은 오늘 학교에 올 수 있을까? 오늘이 현장학습 날인지 알고는 있을까?

오늘은 C군 평생에 두 번째인 현장학습이었다. 1학년 때는 학교 적응이 안 돼서 현장학습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2학년 때는 63빌딩을 가기로 단단히 약속해놓고는 당일 아침에 등교하지 않았다. 버스를 십여 분 붙들고 있었는데, 기다려도 C군이 오지 않아 그냥 출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C군에게 생애 최초의 현장학습이라는 짜릿한 순간이 찾아왔다. 그 장소는 두물머리에 있는 한 생태학교였다. C군의 두 눈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로 반짝였다. 그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모든 것을 경이로워했다.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선물 받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C군이었다. 유리병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나에게 완전 변태와 불완전 변태의 차이점에 대해 쉴 새 없이 설명해주었다. 그는 곤충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덕분에 나도 곤충에 대해 조금 박식해지는 것 같았다.

성공적인 첫 번째 현장학습 이후 두 번째 현장학습에 대한 기대치가 꽤 높아졌다. C군은 한 달 전부터 달력을 들여다보며, 현장학습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동에 걸릴 줄 몰랐다. 이번에 못 가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 .

63빌딩에 가지 못했을 때도 그랬다. 친구들이 현장학습에 다녀온 다음 날이 되어서야 자신에게 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C군은 아직 어렸다. C군은 아침 일찍 학교에 오지 못한 자신을 끝없이 자책했다.

"왜 학교를 안 오냐고! 왜 안 오냐고! "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이 저지른 일처럼 원망했다. 모든 건 C군이 원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일관성 없이 혼란스러운 감정은 C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C군이 억울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C군 형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등교 전 이른 시간이니까 어머니가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여보세요? "

 어라. 기대도 안 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C군 도움반 선생님이에요! 어머니 오늘 현장학습인 거 알고 계셨죠? 오늘은 결석하면 안 되거든요. C군 이제 아픈 것 괜찮나요? "

 얼마 만의 통화인지 나는 속사포같이 많은 말들을 쏟아놓았다.

"아니, 어제는 C군이 아니라, C군 형이 아파서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해서 못 보낸 거예요. "
"아, 그러셨어요? "

사실 C군과 C군 형은 공동 운명체였다. C군이 학교에 못 가는 날, 형도 학교에 못 가고, 형이 학교에 못 가는 날, C군도 학교에 못 갔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C군 집은 집안 사정으로 학교와 몇 킬로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했다. 걸어 다니기에는 먼 거리라서, 형제 둘은 택시로 통학하게 되었다. 버스도 있지만, C군이 홧김에 혼자 버스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는 택시만 이용되었다. 문제는 택시비였다. 택시비가 한 달에 2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어머니 혼자 식당에서 일해서 버는 월급으로는 생활비도 부족한 형편이라 20만 원은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조심스럽게 집과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을 전학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C군 형이 우리 학교에서 6학년을 졸업하고 싶어 한다는 이유를 대셨지만 나는 오히려 C군을 새 학교에 적응시키는  훨씬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았다. 학교를 받아들이는 C군도 버겁고 C군을 받아들이는 학교도 버거울 거였다.

"그럼 오늘은 학교 올 수 있나요? "
"안 그래도 오늘은 보내려고 했어요. "

아이를 현장학습에 보내겠다는 어머니의 말이 반가웠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그런데 현장학습 언제 끝나나요? "
"학교 도착 예정 시간이 4시쯤 돼요. "
"아, 그럼 현장학습 못 보내겠네요. C군 형이 그때까지 못 기다려요. "
"예? "

이건 또 무슨 말인가.

"4시까지는 늦어서 형이 못 기다려줘요. 요즘 형이 동생 기다리는 게 힘들대요. "

보통 5학년의 하교 시간이 대략 2시 30분 정도니, 4시까지 기다리는 게 그렇게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기다려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해가 안 됐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동생을 항상 기다려줘야 하는 형이 못내 불쌍했던 모양이었다.

"현장학습 같이 가야 해요, 저희 현장학습 가면 학습도움반도 비고 아무도 없어요, 어머니. "
"현장학습은 가지 말고, C군은 그냥 자기 교실에서 공부하다가  형이 끝나고 데리고 오게 하는 게 좋겠어요. "

생각지 않은 어머니의 반응에 나는 한순간 멍해졌다. 학습도움반에 선생님이 없으니, C군은 자기 학급에서 하루를 보내게 하겠다는 말씀이었다. 안될 말이었다.

"어머니 안돼요. C군이 현장학습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요. 아마 C군을 놓고 간 걸 알면 나중에 엄청나게 울걸요."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학습도움반. 뒤늦게 사태를 알게 된 C군의 분노. 그 모든 감정 폭발은 C군의 반 담임 선생님이 감당해야 할 터였다. 아마 그날 C군 반의 하루 수업이 통째로 날아갈 판이었다.

"어머니, 그럼 제가 집에 데려다줄까요? 집이 K대학교 근처라고 하셨죠? "
"예. 그럼 너무 좋죠. 선생님이 전화하시면 형이 나와서 기다리라고 할게요. "
"알겠습니다. 형이 전화를 잘 안 받는 편이라 걱정인데요. 혹시 형이 안 나오더라도, K대학교 근처에서 C군 혼자 집 찾아갈 수 있긴 하죠? "
"네. 할 수 있을 거예요. "

다행히 협의가 성사되었다. 내가 C군을 집에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C군은 현장학습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남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아직 초보운전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C군이 학교에 못 올 거로 생각했다. C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관심이 없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C군의 결석을 안타까운 일로 여겼다. K군, M군, S양 모두 '기회를 잃는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의리까지 있었다. C군의 등교 소식을 전할 때 아이들은 매우 반가워했다. C군은 레드 카펫을 밟으며 시상식에 입장하는 남자 배우처럼 친구들의 열띤 박수 세례를 받으며 특수학급에 입장했다. 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 수 있어 내 마음도 뿌듯했다.

목적지는 여의도에 위치한 과학체험관과 방송국이었다. 두 군데나 방문해야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기왕 버스까지 대절했으니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어 욕심이 냈다. 기계나 로봇 등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는 신나는 시간이었다. C군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것저것을 질문하고 관찰하고 체험했다. 나는 현장학습 내내 열심히 대답해주고, 설명해주고, 뛰어다녔다.


체험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있었지만, 아이들 수준에 맞는 맞춤형 설명은 교사의 몫이었고, 아이를 인솔하고 통제하면서 사진 찍고, 간식 먹이고, 화장실 보내고, 준비물을 챙겨주어야 했다. 속이 안 좋았던 M군이 식당 의자 위에 시원하게 토를 해버려서 "죄송합니다. "를 남발하다가 거의 내쫓기듯 식당을 나왔을 땐, 심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체력은 완전히 고갈돼버린 나는 학교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축 늘어져 버렸고,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의자에 몸을 묻고 깊이 잠들어 버렸다.

"흐응 왜 불편해. 으으응. 왜 불편하냐고. 아으으으으으으"

한참 잘 자고 있는데, C군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버스 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버스 좌석이 불편했는지 그는 몸을 연신 비틀고 있었다.

"C군아 자리가 불편하니? "
"아흐흐흐흐!!!!! 의자가 왜 이래!!!! 아으으"

C군은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잠자던 아이들이 깜짝 놀란 듯 깨어나 주의를 둘러보게 할 정도였다. 버스에는 우리 학교 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눈치가 보였다.

"C군아, 일어나 봐. 뒤로 가자. "

나는 C군을 나직한 목소리로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C군을 거의 안듯이 일으켜 한산한 뒤쪽 자리로 데려갔다. 외투나 가방 따위의 짐이 없고, 옆자리 친구도 없는 자리에 가면 좀 나을 것 같았다.

"이러면 조금 편할 거야. "

시트를 뒤로 눕혀주니 C군의 투정은 조금 잦아들었다. C군이 조용해지자 나머지 아이들도 다시 평화롭게 잠을 청했다. 이렇게 요란한 잠투정이라니. 매일 아침 이렇게 잠투정을 한다면 어머니도 깨워서 학교에 보낼 재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한 결석 중에서 이 잠투정이 원인이 된 날은 몇 번이나 있을까.

"C군아, 도착했어. 이제 내려야 해! "
"흐응 흐응"

도착하기 10분 전부터 C군을 깨웠지만, 그는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잠이 덜 깬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리고는 특수학급으로 끌고 오다시피 데려왔다. 교실에 도착한 아이는 책상에 엎드려 다시 잠들었다. 나머지 아이들을 전부 집에 돌려보내고, 교장실, 교무실에 들려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고, 행정실에 들러 학교 카드와 영수증을 제출한 후, 보건실에 들러 구급낭을 반납한 후 돌아왔을 때도 아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일어나. 이제 집에 가야지! "
"흐어엉 흐응"

나는 눈을 뜨지 못하는 C군을 부축해서 내 차에 데리고 왔다. 뒷자리 안전띠를 채워주고, 내비게이션에 'K 대학교'를 목적지로 입력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말았지만,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초보운전으로 학생을 집에 데려다줘야 한다는 긴장감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던 거였다.

다행히 K대학교까지는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교차로를 지나 C군 집 근처라고 들은 한 은행 앞에 차를 세웠다. 주정차가 안 되는 곳이라 비상 깜빡이를 켰다.

"C군아. 일어나 봐! 여기 C군 집 앞이지? 자, 일어나서 봐봐! "

 그런데 C군은 도대체 눈을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C군아, 일어나야 해. 다 왔어! "

 나는 운전석에서 몸을 뒤로 쭉 빼서, C군을 흔들어 깨웠다.

"으응 왜 그래요!! 흐응 흐"
"내려야 한다고! 여기 봐봐. 너희 동네 맞지? "
"흐응. 몰라. 흐응"

내가 놓친 중요한 사실이 비로소 생각났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C군의 정확한 집 주소를 미리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그때 뒤에서 내 차를 향한 시끄러운 경적이 들려왔다. 더 길을 막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직진뿐이었다. 나는 은행 앞을 지나쳐 거침없이 직진했다. 차를 어딘가 세우고 싶었지만, 대학교 앞은 사람도 많고 무척 복잡해서 안전하게 주차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차는 C군 집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가까스로 낯선 골목 구석에 차를 세운 나는 C군 형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았지만 10분 간격으로 계속 걸었더니 겨우 통화가 됐다.

"죄송해요. 깜박 잠들었어요. "
"그랬구나."

형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도가 되었지만, 몸은 긴장으로 여전히 경직되어 있어서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이 지금 차로 C군 데리고 왔거든? C군이 잠에 취해서 집에 혼자 찾아가기 어려울 것 같아. 지금 바로 선생님이 C군을 은행 앞에 내려줄 거야. 지금 바로 나와 있어야 해! 금방 도착하니까 바로 나와 있어! "

 나는 빠른 속도로 신신당부했다.

"예"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바로 차의 방향을 돌려 지나간 길로 돌아갔다. 가는 동안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C군,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해! 그리고 창밖을 봐! 여기 너희 동네 맞지? "
". . . . . . "

C군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자면 안 돼! 어디 봐봐! 여기 K대학교잖아. "
". . . . . . . "

대답이 없으니 다시 잠든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너희 동네 맞지? 집에 찾아갈 수 있지? "
"아 씨X! "

시원하게 터져 나온 욕설 한 마디.

"우리 동네 맞는데, 선생님 왜 자꾸 나를 짜증 나게 해요! "


백미러로 살짝 보니, C군은 멀쩡하게 깨어나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일어난 것도 다행이고, 자기 동네인 것을 알아본 것도 정말 다행이었다. 욕을 얻어먹고도 이렇게 마음이 개운할 수 있다니. 욕을 얻어먹고도 이렇게 안심이 될 수 있다니.

다시 비상 깜빡이를 켠 채로 은행 앞에 정차했지만 역시나 형은 길에 나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C군은 집을 찾아가는 것 따위는 아주 쉬운 일인데, 그걸 할 수 있느냐고 귀찮 시끄럽게 계속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연신 짜증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짜증이 오히려 반가웠다. C군을 내려주어도 괜찮다는 뜻이니까. 뒤에서 경적이 울릴까 봐 마음이 급했고, 차에서 내리는 것도 두려웠다. 팔을 뒤쪽으로 간신히 뻗어 C군의 안전띠를 풀어주었다. C군은 차 문을 여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차 안에서 곡예를 하듯 뒷문을 열었다. 투덜거리던 C군은 차에서 내리더니 휭하니 가버렸다. 인사도 없이, 차 문조차 제대로 닫지 않고 말이다. 나는 낑낑거리며 뒷좌석 차 문을 닫았고 그제야 C군 집에 데려다주기 미션이 끝이 났음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 웃음이 났다. 내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누가 봤더라면 꽤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C군을 데려다주지 못했다면 그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주지 못했을 테니 내 엉터리 운전 실력도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최선이었다면,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초보 딱지를 언제 뗄지 모르는 미숙한 선생님이지만 미숙함을 덮어버릴 만큼의 마음이 대체재로 허락된다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지 않을까.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진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한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서 한 어른은 얼마만큼 어른스러워져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일의 운전 실력은 오늘보다 나아져 있겠지. 긴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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