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급 M군 이야기
"아프지 않고 꼬박꼬박 학교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입학할 때 M군의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이제 그 간절함은 무색해졌다.
툭 치면 픽 쓰러질 것 같던 M군이 2학년이 되더니 달라졌다. 얼굴에는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눈에는 총기가 반짝거린다. 키도 부쩍 큰 것 같다. 근육이 없어 팔다리는 여전히 말캉말캉하지만 쉽게 넘어지지 않고 잘 걷고, 잘 뛰어다닌다. 늘 생글생글 웃고 다니는 것은 여전하다.
M군은 지적장애 2급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특수학급에 와서 나를 만났다. 짧은 곱슬머리에 숱이 많고 짙은 눈썹, 처진 눈, 하얀 피부. 어찌 보면 외국 아이 같은 이국적인 이목구비였다. 처음 만났을 때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움직임도 거의 없었고, 초점 없는 퀭한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선천적인 각막혼탁이어서 눈부심이 있으면 앞을 잘 보지 못했다. 햇빛이 강한 한낮 야외에서는 모자나 선글라스가 필수였다.
M군은 잦은 병치레로 유치원을 거의 다니지 못했다고 했다. 감기를 앓아도 입원할 만큼 지독하게 앓는다고 했다. 유치원을 나간 날짜가 다 합쳐봐도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온 M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학교 출석'이었다. 공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아프지만 말고 꼬박꼬박 학교에 갈 수만 좋겠다는 게 학부모의 하나밖에 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M군은 너무 간단히 그 목표를 성취했다. 1학년 동안 결석을 한 날을 다 합쳐도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학교는 M군을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웠다. 그가 학교에 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는 일이 M군에게 당연한 일로 인식되었을 때쯤 M군은 더는 우리 모두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M군이 학교에 잘 출석하게 되자, 하나 밖에 없던 학부모의 바람이 점점 가짓수를 늘려나가는 것도 정해진 순서였다.
1학년 때 M군은 늘 보호자와 함께 통학했다. 등교할 때는 형과 같이 학교에 왔고, 하교할 때는 할머니가 M군이 끝날 때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M군을 데려가셨다. M군의 집은 학교와 별로 멀지 않았다. 학교 건너편에 바로 보이는 아파트였다. 자기 집을 못 찾아갈 M군은 아니었지만 눈부심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넘어질 수도 있고, 반응 속도가 느려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었다. 따라서 M군의 자가 통학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어야 했다.
2학년이 됐으니 우선 길 건너기만 혼자 해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앞에는 학교보안관이 늘 학생들이 건널목을 건너는 것을 돕고 담임 교사가 하교 지도를 하므로 위험요소는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할머니가 교문 앞에서 기다리지 않고 교문 건너편 길에서 M군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M군이 평소 어떻게 길을 건너고 있는지 관찰해보기로 작정했다.
M군은 빨간불에 서 있을 줄도 알고, 초록 불에 건널 줄도 알았지만 한 가지 고쳐야 할 점이 있었다. 길을 건널 때 무조건 오른쪽만 보고 건넌다는 사실이었다. 고개만 튼 정도가 아니라 몸 전체가 오른쪽을 향하고 있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는 없겠지만, 왼쪽에서도 차가 올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어야 했다. 다음 날,나는 M군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M군, 이제 집에 갈 때 혼자 길 건너지?"
"네"
"선생님이 어제 M군이 길 건너는 걸 봤어. "
". . . . . . "
"그런데 M군이 이쪽만 보더라고. "
나는 오른쪽만 보는 M군 흉내를 냈다.
"길 건널 때는 한 쪽만 보면 안 돼. 차가 이쪽, 저쪽으로 오잖아. "
나는 왼손으로 왼쪽에서 오는 차를, 오른손으로 오른쪽으로 오는 차를 나타내 보였다.
"오른쪽만 보면 왼쪽에서 오는 차를 못 봐. 그래서 쿵!하고 교통사고 날 수도 있어요. "
M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차에 받히는 슬랩스틱 연기를 해 보였다. M군은 그게 재밌었는지 꺄르르 웃었다.
"길을 건널 때는 양쪽을 다 봐야지. 이쪽 보고, 저쪽 보고. 이쪽 보고, 저쪽 보고"
나는 양쪽으로 차를 살피는 시늉을 했다.
"알겠지?"
"네"
M군은 내게 시원스레 대답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우연히 M군 할머니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
"요즘은 M군 혼자서 집에 오게 하고 있어요. "
"그럼 할머님은 아예 안 나오시는 거고요?"
"M군이 길 다 아니까, 저 없이 혼자 다녀도 될 것 같아요. "
할머니도 매일 시간 맞춰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것도 큰일이었을 거였다. M군이 자가 통학을 시작한다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항상 유아 같던 M군이 벌써 자가 통학을 하다니 박수라도 쳐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
등하굣길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이라는 건 100% 예방할 수 없었다. 차에 치이지 않을까, 위험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불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웬만큼 믿지 않는다면 아이가 혼자 다닐 기회를 줄 수 없을 거였다. 아이의 독립심 형성을 위해 부모가 언젠가 꼭 결단할 문제였다.
"요즘 M군 길 혼자서 잘 건너나요? 또 한쪽만 보고 건너지 않나요?"
"양쪽 잘 봐요. 그런데. . . . . . "
"네? 왜요?"
우물쭈물하는 M군 할머니의 태도가 이상했다.
"엄청나게 두리번거리면서 건너요.... "
할머니가 뒷말을 흐리는 게 어쩐지 이상했다. 표정도 영 석연치 않았다. 좌우를 살핀다는 건 내가 가르쳐준 대로 잘 실천하고 있다는 뜻인데, 왠지 좋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하교하는 M군을 쫓아가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M군에게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챙기라고 말해주고, 눈부심 방지용 모자를 쓰게 한 뒤 교문 앞까지 데리고 나왔다. 그때 S양도 함께였다. S양의 어머니는 교문 앞까지 나와 계셨다.
"M군은 이제 할머니가 안 데리러 오세요?"
"네. 혼자 집에 가요. "
"와, M군 대단하네. "
S양은 지적장애가 있는 데다, 오른쪽 편마비로 약간 절뚝이며 걸었다. S양의 자가 통학은 시기상조였다. 자가 통학을 시작한 M군을 영 부러워하는 눈치라 무슨 말이라도 해드려야 할 것 같았다. S양은 아무래도 거리 때문에 자가통학을 당장 시작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M군은 집이 가까워서 가능한 것 같아요. S양은 집이 먼 편이라서 어렵긴 하지만, S양도 곧 혼자 다닐 수 있을 거예요. "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상은 흉흉했다. 그래서 지적장애를 가진 여자아이에게 자가 통학을 권유하는 건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아무리 위기 대처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어떤 위험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가 위험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S양을 어머니 편에 보내고 M군과 나는 교문 앞에 섰다. 나는 M군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는 전제로 길 건너기를 1단계부터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인도에 서서 신호등을 봐야 해. 차도에 이렇게 가깝게 설까, 이렇게 멀리 설까?"
나는 큰 걸음을 내디뎌 차도 가까이에 섰다가 다시 뒷걸음질하여 인도 안쪽에 섰다.
"멀리요. "
M군은 내가 선 인도 안쪽을 가리켰다.
"그래, 그러면 여기서 기다리자. "
우리는 인도 안쪽에 서서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빨강 불에 건너는 거니, 초록 불에 건너는 거니?"
"초록 불이요. "
"초록 불 깜박깜박할 때는 건널까, 건너지 말까?"
M군은 두 손을 교차해서 엑스를 나타내 보였다. 수업 시간에 OX 퀴즈를 할 때, 늘 취하던 제스처였다.
"오, 잘 알고 있는데?"
M군은 길 건너는 법을 정말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제복을 입은 학교보안관도 교통지도를 하며 힐긋힐긋 우리를 봤다. 할아버지뻘인 그는 아이들에게 항상 친절했다. 보안관님도 있는데 길 건너기 따위 무슨 걱정이랴. 안심하고 있을 때, 초록 불이 켜졌다.
"M군아, 이제 건너야겠지? 자, 이제 손을 들고 건너가자. "
M군의 어깨를 툭 치자, M군은 발을 내디뎠다. 나는 그저 뒷모습을 지켜보려고 섰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M군이 좀 이상했다. 길을 건너면서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도리도리 춤'을 추고 있는 거였다. 돌리는 속도가 하도 빨라, 보는 사람도 정신 없어질 정도였다. 차가 오는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선생님이 전에 가르쳐준 "길을 건널 때는 양쪽을 다 봐야지. 이쪽 보고, 저쪽 보고. 이쪽 보고, 저쪽보고"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저렇게 바쁘게 고개를 움직이면 움직이는 차를 제대로 보기는커녕 어지러워서 넘어질 것 같았다.
이래서 M군 할머니 표정이 안 좋았구나. 그는 두리번거려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얼마나 자주 두리번거려야 하는지는 몰랐다. 주위를 경계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가 주위를 경계하는 시늉만 배워서 흉내만 내는 꼴이었다. 하지만 기특했다. 나름대로 선생님이 말한 것을 기억해서 실천하려고 애쓴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가르쳐야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다시 고민해보고 다시 가르쳐야지.
아이의 실패는 항상 새로운 학습 목표가 된다. 그래서 아이가 배우는 과정에서 무언가 모르거나, 어설프거나, 실패하는 것이 선생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내일 내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선생님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은 모두 학생의 몫이다. 아이가 모르는 게 많을수록 선생님은 가르칠 게 많아지고,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전에 놓친 기회를 다시 얻게 되는 것 같다. 인생에 단번에 완성되는 게 어디 있을까.
다음 날, 나는 M군을 데리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리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자, M군아, 잘 봐! 차가 왼쪽에서 오지? 그럼 왼쪽을 보면서 가는 거야. 선생님 하는 것 봐봐! 이렇게! 딱 절반까지만 가는 거야!"
나는 연극배우처럼 과장된 시범을 보였다. 나는 중앙선까지 갈 때까진 왼쪽에서 오는 차를 살피기 위해 왼쪽을 보고, 중앙선을 지나서는 오른쪽에서 오는 차를 살피기 위해 오른쪽을 보는 것을 훈련시킬 작정이었다. 좌우를 얼마나 자주 두리번거려야 하는지 모르는 지적장애 M군에게는 그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 중앙선까지 가서는 오른쪽을 봐야 해. 잘 봐! 차가 오른쪽에서 오지? 그럼 이제부터는 오른쪽을 보면서 가는 거야. "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하교하던 아이들이며 학부모님들이 나를 기웃기웃 쳐다보았다. 긴 설명을 하느라 초록 신호를 몇 번이고 놓쳤다. M군과 함께 길을 건너면서 실전 상황을 연습시킨 후 다시 교문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 알겠지?"
"네. "
"절반은 이쪽, 절반은 저쪽이야!"
"네"
마침 초록 불이 켜졌다.
"그래, 그럼 이제 가보자!"
M군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출발하라는 신호였다. M군은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왼쪽을 보며 느린 걸음을 옮겼다. 왼손에는 실내화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M군은 중앙선에 잠깐 멈춰서더니 뭔가를 생각난 듯 주춤거렸다. 천천히 실내화 주머니를 오른손으로 옮긴 그는 왼팔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오른쪽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좀 느리고 굼떴지만 배운 대로 왼쪽과 오른쪽을 순서대로 바라보며 길을 건넌 것이다. 실내화 주머니를 든 손은 왜 꼭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쟤가 제가 가르친 제자예요!"라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더 자랑스러웠던 점은 그 사람 많은 하굣길에 M군 말고는 손을 들고 길을 건너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M군은 말 그대로 '길 건너기'의 정석을 보여줬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평소처럼 M군과 S양을 데리고 교문에 나왔는데 그날은 S양의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S양을 데리러 나왔다.
"안녕하세요, S양 할머니. "
"예, 선생님, 그런데 이 친구는 혼자 가나 봐요. "
S양 할머니가 M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혼자 길 건너는 법 배웠어요. "
"선생님, 그럼 S양도 가르쳐주세요. S양아, 너도 선생님께 배워. "
S양 할머니는 등 떠밀 듯 S양에게 말했다.
"네. 좋죠. S양아, 이리 와봐. "
생각지도 않은 좋은 기회였다. S양은 집에 얼른 보내기 바빠서 길 건너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었는데 M군이 배웠던 대로 S양도 완벽하게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사람을 횡단보도 앞에 세웠다.
"S양을 위해서 다시 설명할 거야. 우선 차랑 가깝게 설까, 멀리 설까? 그래, 이렇게 멀리 서야겠지? 그럼 초록 불에 건널까? 빨강 불에 건널까?"
내가 설명하는 동안 초록 불은 무심히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할머니, 죄송해요. 다음에 건널게요. "
나는 할머니께 양해를 구했다.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얘들아, 길을 건널 때는 손을 꼭 들고 가야 해. 그리고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봐야 해. "
설명을 하는 사이 다시 초록 불이 켜졌다.
"차가 왼쪽에서 오면 왼쪽을 보고. . . . . . "
"선생님!"
"네?"
할머니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할머니는 S양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선생님, 저 급한 일이 있어서 얘 먼저 데려갈게요. "
내가 대답 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S양을 붙든 채로 휭하니 길을 건너가 버렸다. 초록 신호가 깜박이고 있었는데, 아랑곳하지 않지 않았다.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순간 머쓱해졌다.
"내 설명이 너무 길었니?"
무안한 마음에 M군에게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M군의 하얀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초록 불이 깜박일 때는 길을 건너면 안 돼. "
내 말을 들은 M군은 대답 대신에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M군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지만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이라고 속으로 말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설마 '선생님은 참 말도 많고 걱정도 많네요.'라고 말한 건 아니겠지? 속마음이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아야 한가지라도 더 가르칠 수 있는, 나는 특수교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