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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이 Jan 13. 2019

나는 교실을 지킬게 너는 마음을 지켜줘

특수학급 C군 이야기




 아이가 돌연 사라지는 것만큼 교사를 겁나게 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교실이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아니고, 학생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인지라, 교실 밖으로 몰래 나가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못 나갈 것도 없다. 나도 몇 번 아이를 잃어버려 봤다. 컴퓨터를 좋아하던 한 아이는 아무도 없는 컴퓨터실에 들어가 숨어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한 아이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 가 있었다. 킥보드를 타고 등교를 하던 한 아이는 학교 정문을 지나쳐,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직진했다. 학교에 보냈다는 엄마와 학교에 안 왔다는 교사 사이에 걱정스러운 대화가 오갔고, 질주 본능을 이기지 못한 아이는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진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


 학생들이 교육받는 공간에서 사라지면 교사의 머릿속에는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운동장? 화장실? 급식실? 학교 안에서 발견되면 다행이지만,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면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그래서 도망 다니는 습관을 지닌 아이는 경계 대상 1호다.


 C군은 도망다니는 습관을 가진 아이는 아녔다. 그런데 그가 최 체육 시간마다 상습적으로 체육관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교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C군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특수학급에 올 시간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과 짧은 통화를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도 체육관을 뛰쳐나갔고, 찾다보니 그가 빈 자기 교실에 혼자 들어가 앉아 있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체육관에 있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혼자 교실에 있겠다는 C군만 달래고 있을 수 없었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급적 내 도움 없이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담임 선생님이었다. 특수학급에 보내서 미안하다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상황을 접수한 나는 C군을 자리에 가만히 앉혔다. 


"C군이 화가 많이 나는 일이 있었다고 들었어. 여기 앉아서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해보자."

순간 C군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눈에 눈물이 가득 고다.

"나는 이제 2학년 7반 싫어. 학습도움반과 돌봄 교실은 좋지만 2학년 7반은 싫어. 2학년 7반 안 갈 거야."

자기가 지을 수 있는 표정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하다고 생각되는 표정을 짓고 있는 C군.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세상을 할퀴고 위협하고 싶지만, 아직은 발톱이 덜 자란 새끼 야생 동물 같다.  

"그래. C군에게 힘든 일이 있었구나. 선생님은 네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잘 몰라.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해."

C군의 눈이 동그래졌다. 

"C군은 화가 나서 체육관을 뛰쳐나왔지? 그래서 교실에 갔지?"
"네."
"거기서 혼자 있었니?"
"네."
"안돼. 그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위험한 행동이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C군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설명 방법이 무엇일지 머리를 굴려보았다. 긴 설명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는 C군에게는 이해하기 쉽고 절대 잊히지 않는 임팩트 있는 설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교실에 있으면 안 돼. 만약 C군이 혼자 있을 때, 나쁜 사람이 총을 들고 학교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지? C군이 혼자 있으면 아무도 C군을 지켜줄 수가 없잖아!"

게임이나 동영상에 많이 노출된 C군에게는 총 얘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쯤 설명해도 충분했을 텐데 선생님의 생각이 갑자기 태평양 너머 미국까지 건너갔다.





2012년이었다. 미국 샌디훅이라는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선생님들의 목숨을 건 대처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1학년 교사였던 비키 소토는 총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을 교실 벽장으로 피신시켜 보호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범인을 자신의 몸으로 막던 그녀는 결국 총에 맞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이들은 덕분에 무사했다. 평생 선생님으로 살고자 했던 소토가 자신의 어린 학생들이 위험에 빠지자 본능적으로 몸을 던진 것 같다고 그녀의 지인이 말했다. 27세의 나이였다.


나는 당시 뉴스는 내게 충격적이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 되었다면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해보았다. 목숨을 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담해야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교사는 최대한 강한 척해야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렸던 것을, 먼 훗날 성인이 된 아이가 웃음거리로 떠올리게 되더라도 말이다.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 총을 쏘면 몸으로 막아서라도 너희를 보호해야 해! 선생님은 학생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어. 2학년 7반에서는 2학년 7반 선생님이 보호하고 학습도움반에서는 학습도움반 선생님이 보호하는 거야."

내 선연한 외침에 옆에서 잠자코 놀던 K군도 깜짝 놀라 저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어린이를 지키지 않고, 어린이가 다치도록 내버려 두면 선생님을 경찰이 잡아가. 선생님이 감옥에 갈 수도 있어. 그런데 C군이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있으면 선생님이 지켜주고 싶어도 지켜줄 수가 없잖아!"

이토록 목숨을 건 설명이 있을까. 이토록 눈물겨운 설득이 있을까. 공을 들인만큼 내 설득 작업은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다. 선생님이 어쭙잖은 영웅 흉내를 내는 동안 C군의 얼굴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C군은 편안할 때 살결이 뽀얗고 참 예뻤다. C군은 아까 무엇에 화가 났었는지 다 잊어버린 채 흥미진진한 듯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몽상에 빠진 선생님도 가끔은 유용한 것 같다. 선생님의 마음학생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한 편의 연극놀이 같은 대화라도 가끔은 괜찮지 않을까.


평정심을 되찾은 C군은 나와 함께 체육관에서 화가 난 경우에 대처하는 두 가지 약속을 정했다. 첫째, 화가 많이 났을 때는 진정될 때까지 체육관 의자에 혼자 앉아 있기로 할 것. 둘째, 그래도 화를 참기 어려울 때는 담임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기로 할 것.

"선생님, 제가 화가 많이 나서 참을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학습도움반에 가서 마음을 진정하고 올게요."

그리고 선생님이 허락이 떨어지면 교실에 가지 않고 학습도움반으로 바로 오도록 할 것. 나는 C군이 제 말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선생님께 어떻게 말씀드리고 와야 한다고?"
"선생님 제가 화가 많이 나서... 도움반 가서 장난감 가지고 좀 놀고... 진정하고... 다시 올게요."

'뭐라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해주겠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차마 입 밖에 내놓지 못한 마음의 소리가 들려 왔다. '장난감'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준수한 대답이라고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가 약속을 지키기로 자신 있게 선언하고 나니 어쩐지 약속의 무게감이 학생보다 나에게 더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 총을 들고 올 때 목숨 걸고 학생을 지켜줘야 할 책무성이 너무 무거워 어쩐지 어깨가 아픈 것 같았다. 영웅으로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영웅을 꿈꾼 적도 없는데 아이 앞에서는 영웅이어야 하다니.


그날은 화요일이었다. 화요일에는 방과 후에 댄스 강사가 와서 한 시간씩 수업을 해주었다. 강사 선생님은 성격이 화통하고 시원시원했다.

"C군이 오늘 화를 많이 안 내네요."

강사 선생님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몇 주 전에 반항기가 심했던 C군을 봤던 터라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C군의 모습이 꽤 새로웠던 모양이었다.

"그럼요. 이제 C군은 화를 얼마나 잘 참는데요."

저는 C군 귀에 칭찬이 확실히 꽂히도록 큰소리로 과장해서 말했다.

"아이고, 내가 C군에게 좀 배워야겠네. 화를 어떻게 참는지."

눈치 빠른 강사 선생님은 내 너스레에 장단을 잘 맞춰 다.

"C군아, 댄스 선생님께 화를 어떻게 참는 건지 알려드려."

저는 짐짓 C군에게 물었다. 사실 화를 참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 떠본 것이었다. C군은 진지한 표정으로 강사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면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긴 한숨을 내쉬듯 숨을 길게 내뱉었다. 잠깐의 고요가 교실 안을 스치듯 지나갔다.

"숨을 쉬라고?"

댄스 선생님의 말에 C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C군은 잘 알고 있었다. 화가 나고 감정이 격해졌을 때 심호흡을 하면 마음이 조금 진정되고 평온함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가 내가 가르쳐준 것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화가 날 때는 숨을 크게 쉬어야지? 그럼 체육관에서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하지?"
"화가 풀릴 때까지 체육관 계단에 앉아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모범 답안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가끔 참지 못해서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체육관을 뛰쳐나가지만 C군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도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자신을 조절하는 방법도 중요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살 꼬마도 자기 마음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는데, 교사라는 사람이 교실 하나 못 지킬까. 아이가 어렵게 자기 마음을 지키는데, 나도 어렵게 내 교실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 내가 목숨 걸고 지켜야겠다. 누가 총을 들고 교실에 들어와도 내 몸으로 막아내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내가 가르친 것을 기억하고 신뢰해주는 귀여운 아이들을 위해, 나를 졸지에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내 교실의 소중한 소영웅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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