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가 나타났다. 전자현미경 없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들이 자기보다 몇 천 만 배 더 큰 인간들을 상대로 맹위를 떨친다. 첨단의 21세기에 아직 치료제는커녕 정확한 감염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 스스로 이동 능력조차 없는 그들은 인류가 만든 교통수단에 무임승차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팬대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다.
2016년 국민 안전체감도 조사 결과, 자연재해, 교통사고, 시설물 붕괴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신종전염병이 체감위험도 1위를 차지했었다. 사스(SARS), 신종플루, 메르스(MERS) 등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2~3년에 한번 꼴로 창궐한 직후였으니, 신종전염병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 건 당연했다. 뼈아팠던 메르스의 교훈 이후 의료계는 병원 내 2차 감염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응급의료체계와 병문안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2019년에는 위험도 1위가 환경오염으로 바뀌고 전염병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게 여겨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 관심이 미세먼지로 옮아간 사이, 바이러스는 조용히 변이를 거듭해 더 독하고 강해져서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바이러스 패닉이 시작되고 보니, 지난번 소를 잃었을 때 쏠렸던 범국민적 관심에 비해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너무 기본적인 정비에만 그친 것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역학조사를 개인 기억이나 설문조사, 의료기록, 신용카드 결제 이력 등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데이터에 의존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지만, 공공 안전에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망은 마련해 뒀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 상업 목적의 스마트 디바이스 데이터가 유사시에 제대로 활용만 되었더라도 지역사회를 지키는 안전망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의료진과 관련기관으로 개인의 건강/의료 기록, 여행/방문이력 등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즉시 일괄 제공하거나, 접촉자의 수와 소재 파악 등 역학조사 전 과정에 스마트 기술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개인의 사생활보호를 공공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로 보고, 개인 데이터를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함께 마련할시간적 여유도 있었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공격은 호흡기를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 하에서의 막연한 공포심과 그로 인한 폐쇄적 태도를 유발하여, 마치 생태계를 파괴한 인류에 대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정치와 경제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일부 확진 환자가 자유롭게 지역사회 활동을 했다고 하면 불안감이 더 커지니 나라 문을 닫아걸자는 여론으로까지 번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혹시 나도?’하고 막연히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과민하다 탓할 수만은 없다. 미세먼지 앱처럼 오늘 내가 다닐 경로는 안전할 거라는 ‘좋음’ 표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었다면 사람들 마음이 좀 놓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