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금요광장] 칼럼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과거 얘기지만, X세대의 중학생 시절에는 한 학년 전체가 영화관에 가는 '문화 교실' 날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문화 활동이나 TV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던 때라 그런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그날이 소풍만큼이나 기다려지곤 했었다. 고등학생 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인기 드라마를 어머니가 녹화해 두신 것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돌려보고, 다음 날 점심시간,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배우 성대모사까지 해가며 재연해 주곤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불과 삼십여 년의 시간 동안 인류의 미디어 생활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빠르게 변모하였다. 이제는 우리 집 TV 채널이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데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원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고, 스마트폰만으로 버스, 지하철 어디서나 미디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추천해 주는 인공지능 기술은 미디어 서비스의 필수 요건이 되었고, 가상현실 같은 실감형 상호작용 기술은 수동적인 감상을 넘어 몰입형, 체험형 미디어로의 진화를 재촉하고 있다. 거기에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방송이나 VR-Chat의 '상황극'과 같은 참여형 미디어가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이제 개인은 미디어의 소비자로서뿐 아니라, 주인공이나 제작·유통 주체가 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이 제시하는 미래 미디어 변화의 방향도 주목할 만하다. 첫째는 원스톱 소비이다. 소비자는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시간에 요구할 뿐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가 쇼핑, 여행 등 다른 생활 영역과도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둘째는 미디어의 개인화로, 개별 소비자 또는 틈새 커뮤니티에 맞춘 개인화된 콘텐츠와 전달 방식을 원한다. 셋째는 메타버스 기술로 대표되는 실감·몰입감의 실현과 현실과 가상 세계의 융합이다. 특히 인공지능과 결합한 증강현실 기술의 활용은 가상 환경을 현실과 결합하여 미디어 속 경험을 실제 세계와 혼합하는 상호작용을 실현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미디어 생활은 어떤 모습일지 우리에게 생생한 미래 소식을 전해 주는 미래 특파원 김미래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는 지금 부산 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는 영화의 전당 야외무대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부산 국제영화제가 메타버스 공간에서도 동시 진행됩니다. 이곳에 직접 오시지 못하시는 분들도 VR헤드셋을 이용하여 현장에서와 똑같이 참여할 수 있고, 현장에서 혼합현실 안경을 착용하고 계신다면 해당 위치의 가상 관람객과도 인사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100여 개의 메타버스 상영관에서는 올 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1천여 편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으며, 각 상영관에는 해당 작품의 출연자는 물론 제작진이나 관계자들의 인공지능 아바타가 매시간 무대인사를 하며 전 세계에서 찾아온 1억명이 넘는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상영관에 입장하시면 개인의 미디어 취향을 분석하여 작품을 추천받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직접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보거나, 출연 배우의 인공지능 아바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소품을 사고 촬영지로의 여행을 예약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