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매일 연재 칼럼 > 스마트세상
‘쉽지 않은 주제인데 왜 굳이 하느냐?’, ‘학교에서 잘할 수 있는 순수 연구가 낫지 않겠느냐?’
미래도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내 소개 뒤에는 이런 우려 섞인 코멘트를 듣곤 한다. 일리 있는 말씀이다. 실제로 일이 잘 안 풀릴 때 등장하는 내 머릿속 악마도 늘 같은 말로 나를 약 올리곤 하니까. 그런데 스마트시티 연구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하게 만드는 세 가지 매력이 있다.
첫 번째는 ‘공익’을 최대 가치로 여기는 정부, 지자체 사람들과 일하는 기회이다. 기업에서는 실무자도, 임원도, 경영진도 ‘우리 회사의 이윤 극대화’를 궁극의 목표로 일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홍익인간’을 외친 단군의 자손이라 그런지, 마음 한편에 뭔가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다. 사람들의 니즈(Needs)에서 출발하는 프로세스 초기의 내부 기획 회의에서는 공익성 아이디어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그것들 중 일부는 단계별 리뷰 과정에 ‘유네스코(UNESCO) 직원이냐’는 질문을 받고 좌초되기도 하고, 일부는 ‘상품성’과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원래의 의도와 사뭇 달라지기도 한다. 단군에서 세종대왕으로 이어져온 사람 중심 정신이 담긴 아이디어들을 변질 없이 논할 수 있는 자리가 반갑다.
두 번째는 스마트시티를 통해 세상을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산업을 키워내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일에 동참한다는 뿌듯함이다. 첨단 기술의 손길이 아직 채 미치지 못한 삶의 현장 곳곳을 찾아내고, 성장 정체를 맞은 경제와 그 안에서 자칫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그런 현실을 앞에 두고 내 갈길 가는 마음은 지옥이었다. 세상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바꿔가는 그 커다란 소용돌이 어디쯤에서 나도 같이 뛰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짜릿하다.
세 번째는 도시재생사업 등을 계기로, 공청회나 주민협의체 등을 통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우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지역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긴 점이다.
마침 며칠 전에도 포항의 도시재생사업 선정 관련 주민 공청회에 지정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지정토론자라고는 하나 내 할 말은 10분이 채 안되게 마쳤고, 오히려 방청석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끄덕거리며 받아 적느라 바빴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가 되면 좋겠다는 젊은 주부의 울먹거림이 묻은 목소리, 오랜 역사의 북부시장을 경쟁력 있는 시장으로 만들어 달라는 상인의 절절한 당부, 대중교통과 숙박 시설이 좋아져서 서울 사는 친구들한테 놀러오기 불편하단 소리 좀 덜 듣고 싶다는 어느 주민의 바램, 아침마다 조깅 나가시는 송도 근처 송림 숲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며 사람들이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게 안타깝다는 어르신... 교육, 경제, 관광, 환경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전문가 뺨치는 도시 속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이었다. 옛 포항항 주변을 경제와 첨단 해양 산업의 중심으로 되살려 보자는 무미건조할 뻔한 도시재생사업의 목표는 겨우 두 시간 남짓한 공청회 한번에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아이디어가 되어 내 연구노트 속을 빼곡히 채웠고, 이후에도 그분들의 관심과 기대의 살집이 붙어 더욱 풍성해질 것을 확신하게 했다.
학계와 기업 경험을 합쳐 사용자 경험 분야에 종사한지 25년이 넘어가지만, 사랑받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일, 그 중에도 맨 첫 단계, 즉,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가 뭔지를 정확히 짚어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강의에서 나는 그 비법을 동정이나 연민(Sympathy)과 공감(Empathy)의 차이로 설명하곤 한다.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겉핥기만 하거나, 동정하듯 강 건너에 멀찍이 선 채로는 절대 답을 찾을 수 없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제대로 공감해야만 그 답이 보상처럼 주어진다. 내 연구 의지를 꺾으려 회의적인 멘트를 날려대는 머릿속 악마를 쫓아낼 때면 나는 묻는다. 정답을 찾을 기회가 저절로 생기는 호사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등록일 2018.10.23 21:18 게재일 201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