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45년 미래, 어느 천재 프로그래머가 만든 ‘오아시스’라는 가상의 공간. 오아시스 속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고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으며 실패해도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며, 언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이상향’인 오아시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고 기업은 사람들이 그 가상의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 부었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오아시스의 비중이 커진 나머지, 급기야 현실세계와 주객이 전도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이제 오아시스 속으로 출근을 하고, 그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낸다. 운동도, 교육도,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까지도 대부분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에게 암울한 현실 세계에서의 생활은 이제 배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자는 곳 이외의 의미는 없다. 가상 세계 속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도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은 모두 가상 세계 속에 종속되어 버렸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어느 영화 속에 그려진 미래 세상의 이야기다. 그저 보고 즐기는 공상과학 영화 한편으로 여기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스마트시티’ 연구를 하는 내게는 밤잠을 설쳐가며 한 장면씩 되돌려보면서 고민 하게 만드는 진지한 ‘연구’ 거리가 되었다.
스마트시티를 외형적 기술과 사업적 가치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IoT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연결성’과 ‘지능화’의 향연으로 비친다. 기업들은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들을 엄청난 속도로 시장에 쏟아내며 스마트시티로의 변화를 재촉한다. 시장조사 전문기관들은 인터넷에 연결되는 디바이스의 수가 불과 5년 후면 수백 억 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흐름을 부추긴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이 열린다는 점에서는 당연히 반겨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폭발적인 증가와 스마트 기술의 ‘난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특히, 지금까지의 도시 플랫폼은 연결성을 구현하는 데만 급급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
스마트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도식화해보면 인프라, 연결성, 데이터, 보안, 정책, 거버넌스, 그 위에 공공과 민간 부문의 서비스가 토핑처럼 올려져 여러 겹으로 정성껏 구워낸 케익과 같은 모습이 된다. 각각을 누가 담당해야 할지를 연결해 보면 바람직한 스마트시티는 누군가의 독주 체제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지역을 중심으로 시/산/학이 모두 협력하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수백 억 개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북적거릴 미래 세상은 흡사 수백억 조각짜리 퍼즐게임을 방불케 한다. 퍼즐게임 속에서 길을 잃으면 퍼즐 조각을 대조해 가며 참조할 그림이 필요하다. 스마트 디바이스와 스마트 기술들이 제멋대로 난무하지 않고 제자리를 찾게 돕는 큰 그림말이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통, 환경, 안전, 행정 등 도시 생활의 문제와 인류의 지속가능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마트시티의 큰 그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어야 한다. 한편의 공상과학영화가 선몽처럼 우리에게 보여 준 ‘잘못 가버린 미래’의 모습을 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처럼 오아시스에도 기술과 사업에 눈이 멀어 세상을 독식하려는 악당 기업이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온갖 고난을 무릅쓰며 악에 맞서 싸웠다. 주인공의 호소로 사람들이 하나둘 참여했고 결국 모두 하나가 되어 인간성을 지켜냈다. 스마트시티 역시 어떤 경우에도 기술과 사업으로만 치닫는 유혹을 떨치고 인간성을 지켜내는 영웅의 역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