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가 생겨나는 세 가지 규칙
1. MZ 세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신조어를 많이 접하고 또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신조어는 매일 생겨나진 않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십 개가 생겨나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대체 이런 신조어들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조금 파본 결과(?), 역시 신조어도 만들어지는 규칙이 있었다. 신조어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2. 첫 번째는 실제 생활에서 만들어지는 줄임말이다. 일상적으로 많이 쓰는 말이 줄임말이 되는데, 대표적으로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버정(버스정류장) 등은 실제 십대들이 자주 쓰는 용어에서 만들어졌다. 메신저를 통해서 대화하다 보니 점차 줄임말이 필요해지고, 그러니 자주 쓰는 위치, 아이템, 인물 등이 줄임말로 신조어가 되는 식이다. 얼죽아, 만반잘부, 갑분싸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주 쓰는 언어가 신조어가 되고, 이를 미디어가 알린다. [요즘 얘들이 쓰는 단어 '버카충'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같은 제목들이 그것이다.
얼죽아 :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반잘부 :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갑분싸 :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가끔은 뉴스 제목이나 카피가 줄임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만들어냈다고 줄임말을 억지로 쓸 수는 없다. 해당 표현을 어떻게든 쓸 상황이 많아야만 유행어가 된다. 즉, 줄임말 형태의 신조어를 잘 보면 요즘 해당 세대가 어떤 아이템을 소비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지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3. 두 번째는 두 단어의 합성어가 신조어가 되는 경우다. 특정 분야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배린이, 후자의 경우는 편리미엄, 학세권이 대표적이다. 줄임말은 미디어에서 제목으로 쓰기에 부담스럽지만, 합성어는 사회 현상이나 특정 분야를 반영하고 있기에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띄워주는 편이다. 특히 합성어 형태의 신조어는 비슷한 신조어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도 있다. 예를 들어 배린이라는 신조어 외에도, 부린이, 방린이, 코린이 등이 만들어지는 식이다. 편리미엄이 뜨고, 뷰리미엄과 같은 단어가 나오는가 하면, 맥세권, 스세권, 슬세권 등 비슷한 신조어가 많이 보이는 것도 이런 특징 때문이다.
배린이 : 배틀그라운드+어린이의 합성어로, 게임 '배틀그라운드' 초보 유저를 뜻함
부린이 : 부동산+어린이. 부동산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
방린이 : 방탄소년단의 어린 팬을 일컫는 말, 혹은 방탈출 카페 초보를 뜻하기도 함
코린이 : 코인+어린이. 가상화폐 투자에 늦게 뛰어든 사람들
편리미엄 : 편리함+프리미엄의 합성어로, 편리함을 소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의미함
뷰리미엄 : view+프리미엄. 조망을 갖춘 고급 부동산
맥세권 : 맥도널드+역세권. 맥도널드 배달이 가능한 주거 환경
스세권 : 스타벅스를 걸어서 갈 수 있는 주거 위치
슬세권 : 슬리퍼를 신고 다니기 가능한 곳
합성어 형태의 신조어는 대부분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분야와 연결이 돼 있다. 핵심 비즈니즈를 기반으로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그러니 합성어 형태의 신조어를 잘 살핀다면 어떤 비즈니스가 뜨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도 하다.
4. 가장 따라잡기 어려운 신조어는 커뮤니티를 통해서 만들어진 표현들이다. 이런 신조어는 보통 커뮤니티나 뉴스 댓글에서 먼저 빵 터지고, 해당 캡처 화면이 트위터, 커뮤니티를 돌며 화제가 되는 식이다. "내 동년배들 다 OOO한다" 같은 신조어가 대표적이다. (머쓱타드, 도덕책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신조어는 해당 커뮤니티나 트위터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어떤 뜻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한다. 레게노 같은 에피소드로 만들어진 신조어라면 그저 이해만 하면 되지만, 최최차차 같은 신조어는 뜻보다는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차은우가 평상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레게노 : 레전드라는 뜻. 한 스트리머가 LEGEND를 LEGENO로 잘못 읽은 데서 유래됨.
최최차차 : 최애는 최애고, 차은우는 차은우다. (최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차은우는 그와 별개로 확실히 잘생겼음을 뜻함)
머쓱타드 : 머쓱+머스타드를 합친 말로, 머쓱한 상황을 귀엽게 표현하는 방식
도덕책 : 당신은 도덕책! 형태로 쓰이며, "당신은 도대체!"의 감탄사로 쓰인다.
커뮤니티나 댓글을 통해 만들어진 신조어는 지금 어떤 콘텐츠가 인기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가 된다. 가령 레게노처럼 한 스트리머의 말실수로 유명해진 신조어라면, 그 스트리머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레게노를 만들어낸 '우왁굳'의 경우 알잘딱깔센을 비롯 신조어만 수십 개에 이른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라는 건 다시 말해 그 신조어와 관련 있는 콘텐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합성 형태의 신조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신조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정 세대들 사이에서 자주 쓰거나 혹은 진짜 웃겨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신조어의 뜻을 외우느라 바쁘다. 하지만 더 눈여겨봐야 하는 건 신조어들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는 가다. 신조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세대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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