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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Sep 12. 2020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지마는

결정장애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불편하다 

안녕하세요. 평소 대학내일 소식을 자주 접하는 페친입니다. 제가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결정장애’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로서 말씀을 드리자면, 결정을 잘 못하는 것을 가르켜 결정장애라고 쓰셨는데, 이 표현이 장애 자체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가 있다는 점을 아시나요? 장애는 그저 불편한 것이지, 비정상은 아닙니다. 장애인이란 사회적 혹은 신체적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며, 정의된 장애 유형은 15가지입니다. 그 안에 결정장애라는 말은 당연히 없지요. 장애인들에게 장애라는 표현이 갖는 무게에 대해 생각 해 보면 '장애'라는 단어의 사용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구독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시는 결정장애라는 말이 신조어로 굉장히 이곳저곳에서 쓰이던 때다. 피자냐 치킨이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도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튀어나왔고, 실제로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가르켜 결정장애라 표현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미디어와 SNS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신조어라 ‘왜 우리 페이지에만 이런 항의를 할까?’라는 억울함이 들기도 했다. 당연히 장애인을 비하할 의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장애 -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단어나 표현이 가지는 무게에 대해 잊는다. 신조어는 대부분 계획이나 의도 없이 만들어진다. 결정장애 역시 장애인을 기분을 생각해가며 만든 단어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과를 하고, 글을 수정했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그리고 사용 표현에 대해 오랫동안 경각심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에 대한 오해는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여전히 ‘장애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장애인은 우리의 친구입니다’라는 의미로 장애우가 올바른 표현이라는 가짜 뉴스가 떠돈 결과다. 이 표현이 잘못됐다는 콘텐츠가 정기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장애우’라는 표현은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만큼 우리의 관심도 적다는 증거인 셈이다.      


국어사전은 장애의 뜻을 총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 의미는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 또는 그런 일. 두 번째 의미는 명사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 ‘명사 통신 유선 통신이나 무선 통신에서 유효 신호의 전송을 방해하는 잡음이나 혼신 따위의 물리적 현상’이 그것이다.      


결정장애는 이 사전적 정의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오히려 장애인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는 두 번째 의미와 가깝고, 그렇다고 보면 결국 결정장애는 장애라는 단어의 활용을 우리가 가볍게 생각한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메시지를 받은 뒤로 난 결정장애라는 말을 다신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금 부끄러워지는 건 ‘결정장애’라고 쉽게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던 누군가의 지적 덕분에 잘못됨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내 지적으로 남을 변화시키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쇼미더머니> 중 가사 실수 장면 


비슷한 표현은 더 있다. ‘가사를 절다’라는 말로, 방송 <쇼미더머니> 이후로 힙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표현이다. 중요한 경연에서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버벅이는 상황을 빗댄 표현인데, 래퍼들이 절었다고 말하는 걸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면서 표현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힙합 씬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라고 오해한 탓이다.      


가사를 절다 - 힙합 가수가 가사를 까먹거나 박자를 놓친 상황을 일컫는 말      


뉴스에서도 가사 절다의 뜻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절다의 사전적 정의는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쳐서 걸을 때에 몸을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다’이며, 결국 ‘가사 절다’는 가사 실수를 마치 다리를 저는 것으로 비유한 것에 불과하다. 가사 실수를 절다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장애인를 비하하는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괴물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라는 시선”이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은 보호받아야할 ‘착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신체가 불편하기 때문에 사회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장애인을 늘 불쌍한 존재로 대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을 실수나 신체적 조건이 낮다라고 바라보는 것은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경계선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표현들에 그들을 이미 낮다고 바라보는 편견이 깔려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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