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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Sep 15. 2020

칭찬이라고? 기분이 나쁜데

우스운 것은 그들의 발음이 아니라, 우리의 행태다

2013년 2월, KBS <인간극장>은 콩고 난민 가족을 다룬 『굿모닝, 미스터 욤비』를 방영했다.  당시 47세의 욤비 토나씨는 아내인 넬리(36세)씨와 네 자녀와 함께 한국에 살고 있었다. 욤비씨의 가정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항상 밝게 웃으며 한국 생활에 만족해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가 지하철 자리가 비어있어도 앉지 않고 서서 출근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하철에 타서 자리에 앉으면 옆에 사람이 안 앉아요. 양 옆자리에 안 앉아서 제가 세 자리나 차지해요. 그래서 서서 가는 게 오히려 편해요.”     

 

멋쩍게 웃는 욤비씨의 표정 때문에 낯이 뜨거웠졌다. 지하철 자리에서만 그랬을까? 그는 일상에서 인종에 대한 편견, 차별과 싸우고 있었다. 정착한 지 12년째였던 그는 한국문화만큼 차별에도 익숙해져있는 상태였다.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을 가르켜 우리는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흑인’으로 불러왔다. 나아가 춤이나 노래, 스포층 등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한 그들을 보며 ‘흑형’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규정하는 것은 금기가 된지 오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특히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은 ‘모두 춤을 잘 춘다’ ‘모두 노래를 잘한다’와 같은 프레임은 표현을 넘어 편견에 이르게까지 한다.      


흑형 - 흑인 형의 줄임말로 노래, 춤, 운동 등 여러 분야에 다재다능한 흑인들을 동경의 의미로 부르는 표현     


‘콩고왕자’로 유명해진 욤비 씨의 아들, 조나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KBS <해피투게더4>에 출연해서, ‘흑형’이라는 표현이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이 지나갈 때면 한국인들이 “흑형 지나간다”라고 수근댄다는 것이다. 아무리 칭찬하기 위한 단어라고 할지라도, 누구도 반기지 않는 단어임을 주변에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이 방송 직후 일부 커뮤니티에선 토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우리는 황인, 백인, 흑인은 구분하기 위한 의미로 쓰는 거다. 외국에서처럼 비하의 의미로 쓰는 게 아니다.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 ‘흑인’ 대신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번역하면 되냐고 묻기까지 했다. 적당한 번역 표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 여행 중인 우리를 가르켜 유럽인 어린아이가 ‘yellow’라 불렀다면 어떨까. 우리의 사용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표현을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특정 표현과 얽힌 아픈 기억들이 떠오른다면, 그래서 의미가 어쨌든 간에 당사자는 그 표현을 들을 때마다 불편함이 생긴다면, 그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살색’이라는 표현이 평등권에 침해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약 20년 전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뉴스 기사에서 ‘살색 드레스’ ‘살색 양말’ 등의 키워드가 검색되는 건 여전히 우리는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외국인에 대한 낡은 표현은 더 있다. 바로 프로스포츠 종목에서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된 표현이라 어디부터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1997년 KBL 프로농구에서 처음 외국인 선수가 들어서면서 모든 미디어가 외국인 선수를 가르켜 외국인 용병이라는 명칭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용병’이라는 단어에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쟁에 참전한다는 ‘용병(傭兵)’의 뜻이 담겨져 있다. 오직 돈을 버는 게 목적이라는 부정적인 뜻이 강한 비하 표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언론이 현재까지도 경각심 없이 외국인 용병이라 표현한다. 이런 낡은 단어가 없어지려면 모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언론이나 미디어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들은 뉴스를 통해 접한 단어들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말이다.       


용병 - 국내 리그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선수를 부르는 말.      


우리가 여전히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조롱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단어는 더 있다. ‘외쿡사람’ 역시 그 중 하나다. 아래는 jTBC <비정상회담>, tvN<문제적 남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타일러 라쉬가 2017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타일러 라쉬의 트위터 중



그의 지적은 정확했다. 과거 개정 전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우리는 ㄱ(기역)을 K로 적었다. 자연스레 외국인들은 한국을 한쿡, 김치를 킴치로 읽었고, 우리는 ㄱ 발음이 자연스럽지 못한 외국인들을 흉내냈던 것이다. 물론 외쿡인이라는 표현을 두고 우리는 이렇게 변명할 지도 모른다. “외국인을 친근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비하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비하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다고 해서, 차별의 언어가 아닌 것은 아니다.      


외쿡사람 - 외국인이라는 뜻이지만, 발음이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의 특징을 담은 표현     


인종차별은 글로벌 어디에서도 가장 금기시되고, 지탄받는 행위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차별을 해오기보단 당해왔다는 심리적 태도인지 몰라도, 때때로 아무렇지 않게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외쿡사람’은 그런 차별에 대해 예민하게 보지 않았던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예다. 거꾸로 우리가 미국에서 영어 발음이 어색한 것을 두고 미국인이 놀린다면 어땠을까? 아마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예가 있었다. 미국 유명 토크쇼 <엘렌쇼>의 진행자 엘렌은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상을 수상하자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답장이 통역을 거치며 늦어지자 “내 누드 사진을 보냈는데 답을 들을 수 없었다”라고 표현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어실력이 완벽하지 못해 통역사를 거쳐야 한다고 놀린 셈이다. 결국 엘렌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전형적인 영어중심주의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문제들은 발음 혹은 행동가 익숙하지 않음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부족함’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시작된다. 외국인들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교육과정을 거쳤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언어나 행동을 흉내내는 것을 멈춰야 하는 이유다. 서양권 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발음을 종종 “~스므니다”로 표현해놓고 웃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정작 우스운 것은 그들의 발음이 아니라, 우리의 이런 행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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