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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Sep 29. 2020

분위기를 못 맞춰 죄송합니다

눈치 챙겨?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개그맨 정형돈은 <무한도전> 출연 초기 ‘재미없는 애’였다. 개그맨인데 못 웃긴다는 역설적인 캐릭터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나 그를 힘들게 했던 건 ‘재미없는 캐릭터’라서 어떤 멘트를 해도 차갑게 식어버리는 촬영 분위기였다. 정형돈은 그 압박 때문에 오히혀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비단 개그맨만은 아니다. ‘갑분싸’라는 신조어를 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함을 알 수 있다. 뜻을 헤아려보면 비하의 의미가 큰 것도 아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순간을 의미하는 표현이고, 또 ‘갑분핫(갑자기 분위기 핫해짐)’ ‘갑분띠(갑자기 분위기 띠용)’처럼 다양한 상황을 재밌게 표현하는 비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갑분싸’를 사람에 대고 말할 때만 제외하면 말이다.      


갑분싸 -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의 줄임말     


단톡방에서 ‘갑분싸’라는 말을 듣고 난 뒤부터는 채팅하기가 무서워졌다는 대학생의 고백도 있다. 한국 사회는 마치 분위기를 깨면 안된다는 법이 있는 것마냥, 분위기가 깨지면 그 원인 제공자를 지목해 무안을 주곤 한다. 어쩌면 ‘갑분싸’는 인싸를 추앙하고, 아싸를 비웃는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무의식의 발현이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분위기를 잘 띄우는 사람을 우리는 ‘분위기메이커’라 부른다. 분위기를 잘 띄우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분위기를 잘 못 맞추는 사람도 있을 거다. 모두가 똑같은 능력일리도 없고, 모두가 똑같아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역량도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 조금 다른 것일 뿐, 갑분싸라고 놀림받으며 단톡방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할 잘못까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펭수의 유행어 "눈치 챙겨"


‘눈새’ ‘넌씨눈’ 등과 같이 눈치없는 사람을 몰아세우는 표현 역시 경계해야 할 지점에 있다. 펭수의 “눈치 챙겨”가 유행어가 된 것에는 눈치없는 사람이 많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눈치라는 게 노력하면 짠 하고 생겨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눈치 없는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그 자체의 행위로 잘못을 가려야 하지만, 눈치가 없음으로 인해 욕설이 섞인 비하 표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다.      


회사 사람에게 모르는 거 물어보는 게 그렇게 짜증낼 일인가? 모르면 모른다 걍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작작 좀 물어보라고 혼자 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임? 회사 동기가 얘뿐인데, 원래 회사 사람끼리 서로 모르는 거 물어보고 도와주고 이러지 않음?     


몇 해 전 질문이 너무 많은 직장인의 고민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오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르켜 ‘물음표살인마’라 불렀다. 도무지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물음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이유다. 그의 몰아치는 질문을 견뎌낸 동료에게 ‘직장 동료의 당연한 권리’라 주장하는 건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살인마라는 말까지 붙여가며 놀리는 건, 질문이 많은 또다른 누군가를 내모는 일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완벽치 않다. 그래서 누군가는 가끔씩 선을 넘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눈치가 없다, 정도를 모른다고 놀리는 건, 다른 이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다. TMI와 TMT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건, 부족함을 조금 더 포용할 줄 아는 세상에 대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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