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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계적 글쓰기 Oct 02. 2020

최고의 순간은 늘 이십대가 아니다

청춘이 아파야했던 시대는 갔다

“여자 나이 스물 다섯이면 꺾인 거지”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선배가 있었다. 공대라서 여성은 몇 없고, 남자들만 가득했던 술자리였다. 문제의 발언은 더 이어졌다. “남자는 서른까진 괜찮아. 서른도 한창이지 뭐.”     


우리학과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MBC <복면가왕>에서 연예인 패널이 여가수에게 “꺾였다”고 표현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고, 한 아이돌 가수는 스물다섯살의 누나에게 ‘꺾이는 나이’라고 놀렸던 일화를 공개했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꺾였다 - 최고점을 찍고 하향세를 그리는 그래프에 비유해, 최고 좋은 시기를 지났음을 말할 때 쓰는 표현


꺾였다는 표현이 영 못마땅한 이유는 전성기라는 표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나이는 스물다섯이 가장 좋고 그 뒤부터는 점차 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더 심각해지니 여성이 20대 중반이 되면 '연애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다'는 뜻으로 '상폐녀'라는 단어마저 거론되는 현실이 만들어진 것이다.      


20대는 가장 화려해야 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전성기라는 프레임 안에서 20대는 흔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정의된다. 하지만 신체능력과 큰 연관이 있는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20대는 전성기라 말할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겨우 사회에 나와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무슨 빛날만한 성과가 만들어질 것이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저 사람들은 외모의 가치에 따라 20대를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흐름에서 보면 혼기 역시 이제 낡은 단어라 말할만 하다. 과거 대학 진학률이 낮고, 경제활동을 이십대 초반부터 시작했던 시대를 겪은 세대에게서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결혼을 위한 커트라인이었다. 그래서 늘 서른 중간의 남성이 결혼을 안 하면 노총각이라 놀렸고, 서른쯤의 여성에게는 혼기가 찼다며 결혼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남성의 경우 졸업을 하면 스물일곱, 취업이 그렇게 힘든 세상이니 1년을 준비해 겨우 취업하면 스물여덟이다. 적은 연봉을 모아 전셋집을 하나 구하기까지도 3~4년이 걸린다. 2010년을 기점으로 서른 중반에 결혼하는 비율이 늘어난 이유도 사회적인 영향 때문이다. 2020년인 지금은 사정이 다를까. 결국 결혼하기에 적당한 혼기라는 건 정해져있지 않은 셈이다.      


쉰 두 살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을 보며, 이십대를 전성기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스물 다섯 살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서른에 결혼하는 사람보다 서른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무언가가 반드시 꺾이는 나이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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