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정말 잘 만든 게임이 출시된다. 심지어 짧은 기간 안에 만들었다는 설명까지 들으면 헛 하고 숨을 들이켜게 된다. 그러면 제작자는 신이 나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개발자를 갈아 넣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표현이 농담처럼 등장한다. 편집자들 갈아 넣어 만든 영상. 디자이너를 갈아 넣어 만든 포스터. 아마 돈, 시간, 노력, 정성, 더 나아가 영혼까지 몽땅 다 털어넣었다는 비유적 표현일 거다. 하지만 표현의 저 밑바닥 속에선 ‘언제든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부치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착취의 태도가 느껴질 때가 있어 울적한 기분이 든다.
섣부른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표현들은 직장 안에서 종종 발견된다. 일이 많아? “사람 쓰면 되지”. 행사에 손이 모자르거나 어떤 전문 인력이 필요할 때 “사람을 쓴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사람이 도구가 아님에도 마치 도구와 동일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20년 전쯤, ‘손님은 왕이다’라는 카피가 유행을 탔던 적이 있었다. 대기업부터 작은 가게까지 차별화된 서비스가 곧 경쟁력이 되어, 서비스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귀한 접대를 무기로 고객이 직원에게 갑집을 하는 일도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호의와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사람 쓰면 되지”라는 표현이나 “갈아넣었어”와 같은 표현들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는 역시나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좋은 퀄리티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혹은 사람도 혹사시킬 수 있음이 당연해질까 두렵다. 늘 좋은 성과에는 ‘갈아넣은 누군가의 체력’이 동반되었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면, 분명 결과를 위해 과도한 업무를 강요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거봐. 더 열심히 하니까 되잖아.” 가장 무서운 건 모든 결과가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 촬영 당시 모든 스텝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쓰고 주 52시간 촬영을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좋은 퀄리티는 적정한 노동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신뢰를 알려준 사례다. 사람을 갈아넣어야만 만들어지는 일은 처음부터 기획과 계획이 잘못된 것이다. 어려운 난제를 해결한 열쇠의 비밀이 ‘갈아넣었음’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