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지금이야 무적 신분의 야구선수가 되었지만 강정호가 미국에 진출하기 전까지 그의 별명은 "평화왕"이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유격수가 좋아도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의 계보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성적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죠. "누가 잘하네. 아니네, 우리 팀 유격수가 더 잘하네." 등등의 온라인 키배를 원천봉쇄한 인물, 그게 강정호입니다.
글ㅣ한지훈(오디오 칼럼리스트)
클래식 음악에서도 이런 떡밥은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곡가가 구스타프 말러인데요. 많은 교향곡을 남기기도 했고, 모든 교향곡이 역사에 남을 뛰어난 교향곡이기에 많은 지휘자에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은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고, 그렇기에 너도 나도 말러의 교향곡을 지휘했으며, 그런 이유로 말러의 교향곡은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 많은 떡밥을 투척했죠.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도 온라인 상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작품이 교향곡 제2번입니다. "클라우스 테슈테트가 최고네. 아니네, 교향곡 2번은 사이먼 래틀이라네. 너희들이 하이팅크의 2번을 들어봤냐? 아바도의 2번을 듣기 전까지는 말러 2번을 들었다고 말하지 말거라." 등등 지금까지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을 향한 이런 논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왜?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지구 어느 곳에서는 말러의 교향곡을 녹음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을 콕 집어 이야기했지만 비단 말러의 그것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교향곡은 늘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교향곡 사이에서도 평화왕 같은 앨범은 존재하는데요.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이 그것이죠. 평경장이 화투를 거의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려서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몰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클라이버가 '운명'이 되고, '운명'이 클라이버가 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클래식 애호가는 없을 텐데요. 하지만 며칠 전 발매된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평화의 영역이었던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파문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입니다.
테오도르 쿠렌치스. 일단 비주얼부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알게 모르게 엄숙함을 강요하는 클래식 음악계에 그는 탕아 내지는 이단아 같은 존재인데요. 영상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그는 포디엄 위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 바닥에 서서 지휘하며(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워낙 커서 그의 존재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것조차도 가만히 서서 지휘를 하는 게 아니라 여러 파트를 돌아다니며 흔들리는 그의 지휘봉에 수많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지휘자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 모습에 가깝습니다.
이런 파격의 연속에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빈사 상태의 클래식 음악계에 유일한 인공호흡기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실력. 그는 말러의 교향곡 제2번만큼이나 많은 논란의 중심이었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을 평정하며 평화의 시대를 가져왔고,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는 1, 2, 4, 5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방에 속했던 제6번을 도산대로 한복판으로 가져온 인물입니다.
쿠렌치스 지휘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열정, 아니 솔직하게 말한다면 열정보다는 광기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차이콥스키나 말러의 제6번 교향곡은 과하다는 평이 있던 게 사실입니다. 그의 지휘봉은 다른 지휘자들의 그것보다 크고, 빠르며, 격정적으로 춤을 추며 그런 지휘봉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손가락 또한 지휘봉과 템포를 맞춰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호불호를 떠나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스포츠카처럼 경쾌하고 힘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 힘이 과해서이지 그의 경쾌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죠.
개인적인 느낌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차이콥스키는 쿠렌치스에게 어울리는 작곡가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좀 더 격정적인 베토벤이나 브루크너가 훨씬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었습니다.
Teodor Currentzis [Beethoven :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앨범의 첫 느낌은 "정말 많이 노련해졌구나!"였습니다. 1악장에서 존재감을 밝힌 뒤, 2악장에서 숨 고르기를 한 후, 긴장을 고조시켜 4악장에서 터뜨리는 그의 지휘에 탄복을 금할 수 없었는데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다이내믹함이나 파워는 여전하지만 템포의 완급조절이나 강약의 조절은 이제 "잘한다"를 넘어 원숙함을 느끼게 될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까요?
타이밍이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들리게 하는, 그래서 교향곡을 들을 때 경쾌한 느낌이 들게 하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쉬운 치트키가 있습니다. 바로 튜닝을 440㎐보다 조금 높게 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면 같은 속도로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소리가 좀 더 경쾌하게 들립니다. 유명한 지휘자 중에도 이런 식으로 녹음을 하는 지휘자가 몇 명 있고요. "그건 사기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기가 아니라 테크닉입니다.
하지만 쿠렌치스의 레코딩은 정말 완벽한 440㎐ 정튜닝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휘에 다른 지휘자는 따라올 수 없는 경쾌함과 타이밍이 있는 건 오직 그의 열정 내지는 광기 때문이고, 그의 지휘봉을 따라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앨범을 클라이버의 앨범과 비벼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이외에도 관악 파트의 연주 때문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은 관악 파트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앨범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관악 파트의 연주와 녹음이 중요합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녹음이 평화왕이 된 것도 빈 필의 연주와 트럼펫과 트롬본, 튜바의 명확하게 구분될 정도로 잘 된 녹음 덕분인데요. 베를린 필이나 빈 필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이유나 그 중에서도 빈 필이 베토벤이나 브루크너의 지존의 자리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만큼 관악 파트는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쿠렌치스는 무지카 에테르나라는 무명의 교향악단을 빈 필이 부럽지 않은 교향악단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인 키릴 페트렌코가 무지카 에테르나에 온다고 이런 앨범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 간만에 장르에 상관없이 눈이 번쩍 뜨이는 앨범을 찾았습니다. 앞으로 이 앨범의 평가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이 앨범은 클라이버의 운명에 비빌만한 유일한 앨범입니다.
이 앨범만큼은 꼭 고음질 음원으로 가능한 가장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존재의 이유를 모를 것 같은 비싼 이어폰이나 헤드폰, 오디오 시스템은 바로 이런 음원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