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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Apr 28. 2020

100세의 2차대전 참전용사,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다

장르 인사이드 #POP

제목 그대로입니다. 1920년생. 만으로 100세, 우리 나이로 101세의 노인이 부른 노래가 영국 오피셜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심지어 과거에 녹음한 것도 아니고 2020년에 녹음한 곡이며, 그의 직업 또한 가수가 아닌 은퇴한 퇴역 군인인데 말이지요. 1위에 오른 노래는 리버풀 FC의 팬이라면 매우 익숙할 'You'll Never Walk Alone'입니다. 영국 음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사진 출처: Tom Moore 트위터 캡처


이 또한 코로나 사태와 연관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유럽권 국가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국가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야 워낙 피해가 잘 알려졌고, 영국 또한 전세계 다섯 번째로 높은 누적 확진자 수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죠. 현재 영국은 일간 확진자가 매일 약 5천명 가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치명률 또한 13%에 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크게 많지도 않은, 6700만 정도의 인구 수준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캡틴 탐"으로 알려진 세계 2차 대전의 참전용사이자 퇴역군인 Tom Moore는 자신의 100세 생일인 4월 30일을 앞두고 "좀 더 의미 있는 행사로 생일을 기념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길이 25미터 가량의 자신의 집 앞마당을 하루 10바퀴씩 보행보조기로 돌면서 열흘 간 1000파운드(한화 약 152만 원)를 모금할 계획을 세웠지요.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 계획을 밝히고, 모금된 금액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NHS(National Health Service: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의 공공 의료 서비스)에 모금하겠다는 트윗을 작성했습니다. 그로부터 그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집 앞마당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이 영국 네티즌들 사이로 퍼지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거 100바퀴를 완주했을 때는 이미 1200만 파운드라는, 그가 애초 계획하던 모금액을 아득히 뛰어넘는 한화 약 183억 원 정도의 돈이 모금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며 추가적인 모금까지 일어났고, 결국 4월 26일까지 2900만 파운드, 한화 약 442억 원 정도의 돈이 모였다고 하네요. 그는 이 돈을 전액 영국 NHS에 기부하며 단숨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국의 배우이자 가수 Michael Ball이 BBC Breakfast에서 Tom Moore의 육성과 NHS Voices of Care 합창단의 노래가 삽입된 버전의 'You'll Never Walk Alone'을 라이브로 선보이고, 24시간 후 바로 음원으로 공개하며 이 흐름에 또 한 번 불을 지핀 것입니다. 곡은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올랐고, UK 오피셜 차트에서는 이 곡을 '역대 가장 크게 유행된 노래"로 집계했습니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역대 최고령 아티스트의 넘버원 싱글이라는 진기록 또한 더해주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 기록을 갖고 있던 것은 Tom Jones로, 2009년 'Islands In The Stream'으로 1위를 차지했을 때 68세였다고 하네요. 이제 Moore가 단숨에 100세로 올려놓았으니, 이후부터는 좀처럼 깨지지 않을 분야로 보입니다.

그의 1위를 도와준 엑스맨도 있었습니다. 바로 최근 가장 핫한 뮤지션인 The Weeknd인데요. 1위 자리를 놓고 경쟁자 입장에 있는 그가, 오히려 자신의 노래가 1위에 오를 듯한 낌새가 보이자 사람들에게 Moore의 음악을 다운로드 해줄 것을 당부하며 "Moore를 1위로 만들자"는 제안을 한 것이죠. 사람들도 이에 화답했습니다. Moore 역시 "맙소사. 당신 아량이 참 넓군요"라는 트위터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요.

이 곡의 후렴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고 또 걸어요 / 마음 속 희망과 함께 /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Walk on, walk on / With hope in your heart / And you'll never walk alone / You'll never walk alone) 뭔가 묘하게 이번 사건과 연결이 되어 들리지 않나요? Moore가 사람들에게 하는 메시지, 또 사람들이 Moore에게 하는 메시지가 결국은 서로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일련의 타임라인을 통해 보면,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제목의 이 노래가 영국에서 1위를 한 것은 참전용사이자 또 한 번 나라를 구한 노신사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감사이자, 그의 뜻과 함께 하겠다는 지지자들의 따뜻한 성명일 것입니다. 배경을 알고 들으면 이토록 감동적인 노래, 연말 각종 매체에서 꼽을 "올해의 사건"이 아닐까요? "역대 최고령 아티스트의 영국차트 넘버원 싱글"이라는 바래지 않을 기록도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고요.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지만 이런 미담들 덕분에, 그리고 모두가 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하고 있다는 공감대 덕분에 이번 코로나 사태가 그리 절망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매번 사건 사고만 보이는 인터넷 세상에서 인류애를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지요. 모처럼 감동적이었던 영국 음악계, 그리고 모처럼 동화 속 세상 같던 인터넷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Michael Ball, Captain Tom Moore, The NHS Voices of Care Choir - You'll Never Walk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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