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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y 11. 2020

Joey Alexander: 신동에서 재즈 뮤지션으로

장르 인사이드 #재즈

재즈 피아니스트 Joey Alexander가 올해 초 앨범 [Warna]를 발표했습니다. 그의 다섯 번째 앨범입니다. Bard Mehldau Trio의 Larry Grenadier(베이스), Terence Blanchard 밴드 출신으로 현재 최고의 연주자로 손꼽히는 Kendrick Scott(드럼), 여기에 객원 타악기 주자 Luisito Quintero가 참여했습니다. 처음으로 듣게 될 세 곡은 모두 Joey Alexander의 작곡입니다. 


Joey Alexander – Warna

Joey Alexander – Lonely Streets

Joey Alexander – Downtime


글ㅣ황덕호(음악평론가)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이 앨범 [Warna]는 Joey의 다섯 번째 앨범입니다. 그런데 Joey는 2003년 6월 25일생. 그러니까 그는 아직 열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인 만 16세의 소년입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세계 일급의 연주자들과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방금 들었던 그 연주들을 아무런 정보 없이 들었다면 16세 소년의 피아노 연주라고 상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Joey Alexander는, 우리에게는 관광지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의 발리섬, 그곳의 중심도시인 덴파사르에서 태어났습니다. 재즈 팬이자 아마추어 연주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Joey가 여섯 살 때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Louis Armstrong, Thelonious Monk, Bill Evans의 앨범들을 듣곤 했는데, 다음 날 Joey는 어제 아버지 곁에서 들었던 재즈 음반들을 소형 건반으로 비슷하게 음을 찾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을 아버지가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는 Joey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재즈를 들려주었고 Joey는 앞의 세 명의 재즈 거장들은 물론이고 Clifford Brown, Miles Davis, John Coltrane, Horace Silver, Lee Morgan, McCoy Tyner, Herbie Hancock, Wynton Marsalis, Harry Connick Jr., Brad Mehldau 등 별처럼 빛나는 명연주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오로지 독학으로 재즈를 연마한 Joey는 여덟 살 때부터 덴파사르와 자카르타의 프로 재즈 연주자들의 잼세션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2012년에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친선 재즈 대사로 Herbie Hancock이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이미 그곳에서 신동으로 알려진 Joey는 거장과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계기로 소년은 재즈 음악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듬해 열 살의 Joey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열리는 "마스터-잼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됩니다. 이 축제는 일종의 경연대회로 잼세션 연주를 통해 매해 우승자를 가리는 행사로 2013년에도 17개국에서 43명의 성인 재즈 연주자들이 참가해 경합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우승은 참가자 중 유일한 소년이었던 Joey Alexander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 광경을 유튜브로 지켜본 Jazz at Lincoln Center의 예술감독이자 재즈계의 리더인 Wynton Marsalis는 Joey 가족에게 즉각 연락해서 뉴욕에 와서 Joey를 성장시킬 것을 권유합니다. 결국에 Joey와 그의 가족은 2014년에 뉴욕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뉴욕의 독립 레이블 모테마 뮤직과 계약을 맺고 그의 첫 앨범 [My Favorite Things]를 녹음합니다. 


Joey Alexander [My Favorite Things]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음악에는 수많은 신동이 있었습니다. 신동의 대명사였던 W. A. Mozart가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Yehudi Menuhin, Anne-Sophie Mutter, 장영주(Sarah Chang), Stevie Wonder, Michael Jackson 등 신동들은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에 열거한 인물들은 어릴 때부터 대중들의 눈에 그 능력이 노출되었던 것일 뿐, 뛰어난 음악인들은 거의 모두가 어린 시절에 신동의 능력을 주변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다가 성인이 되어서 사람들 앞에 비로소 나타난 사람들이라고 말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스포츠가 그렇듯이 음악은 다분히 타고난 재능을 요구하는 분야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재즈에서는 그간 특출 난 신동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5년 전 Joey Alexander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번뜩 든 생각은 "왜 지금까지 재즈에는 걸출한 신동 연주자가 없었을까?"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즈 음악인들은 어린 시절에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지 않았을 뿐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였던 인물들이었습니다. Herbie Hancock, Keith Jarrett 등도 열 살을 전후해서 이미 공식 무대에서 연주했던 신동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이 연주했던 것은 재즈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Herbie Hancock은 열 한 살 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Mozart 피아노 협주곡 26번 K. 537을 연주했고 Keith Jarrett은 일곱 살 때 J. S. Bach, Mozart, Beethoven, Saint-Saen의 피아노 작품들로 독주회를 가졌는데, 다시 말해 이들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종종 나타나는 음악 신동의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즈는 다릅니다. 그 이유는 즉흥연주 때문입니다. 악보를 읽거나 혹은 그 내용을 머릿속에 모두 넣어서 성인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완벽한 기교로 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순간에 음악을 "만들어서" 연주하는 것이 재즈이기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이 글이 재즈가 클래식 음악보다 더 어렵고 고차원적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란 점입니다. 클래식 연주는 정확성과 엄밀성을 요구하고 반면에 재즈는 창의성과 순발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재즈가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신동은 주어진 음악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신기의 기교로 연주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연주와 노래, 춤, 연기를 보여주는 신동들은 있지만 소설을 쓴다든지, 즉흥적으로 긴 연설을 한다든지, 더 소박한 보기를 들자면 어른과 함께, 어른의 수준에 맞춰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나눌 수 있는 신동은 볼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능력은 오랜 사회화의 과정, 삶의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즈의 즉흥연주도 바로 그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재즈에서 신동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Joey Alexander [Countdown]


그래서 Joey Alexander가 열한 살, 열세 살에 녹음한 두 앨범 [My Favorite Things]와 [Countdown]은 신기를 넘어 불가사의한 음악입니다. 음악에 대한 이해, 그것을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능력도 놀랍지만 이 소년이 Larry Grenadier, Ulysses Owens Jr.(드럼), Chris Potter(색소폰)과 같은 최고 경력의 재즈 음악인들과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경이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0대 초반의 어린 손에서 이와 같은 강한 어택(attack)을 구사하는 솔로가 흘러나오는 것도 경이롭지만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연주자들이 즉흥 솔로를 할 때 이에 화답하며 적절한 "컴핑"(반주)을 넣어주는 Joey의 솜씨입니다. 그는 어른들의 세계를, 재즈를, 최소한 음악적으로, 더 나아가서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열 살을 갓 넘긴 어린이게게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래서,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종교를 갖고 있거나, 내세를 믿는 사람은 아닌데, 이 시절 Joey의 연주를 들을 때면 혹시 이전의 어떤 재즈 명인의 영혼이 다시 Joey를 통해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주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Joey Alexander [JOEY.MONK.LIVE!]


그는 열네 살이었던 지난 2017년, 두 장의 앨범 [Joey, Monk, Live!]와 [Eclipse]를 녹음하고 넉 장의 앨범을 통해 독립음반사인 모테마 뮤직과의 계약을 마치고 메이저 음반사인 버브 레코드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어느덧 그는 이제 만으로 열일곱 살을 앞둔 소위 '하이틴'이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그의 피아노 기량은 더욱 성숙해졌고 함께한 연주자들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은 더욱 섬세해진 것을 느끼게 됩니다. Joe Henderson의 작품 'Inner Urge'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이제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젊은 시절의 Herbie Hancock을 자꾸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우였으면 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돕니다. "왜 신동 출신 중에는 성인이 되어서 오히려 어린 시절의 연주에 못 미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슬럼프에 빠져서 결국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가."

이 점에 있어서 저는 두 가지 대답을 생각해 봤습니다. 먼저, 신동들은 어린 시절 이미 수많은 갈채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어린 시절 자신은 연주하기 전, 무대에 걸어 나오기만 해도 이미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의 박수는 한 예술가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신동에게 보내는 것이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장영주의 회고 대로 청중들은 그 연주에 감동해서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정상급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 박수는 신동이 성장해 가면서 점차 사라집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것은 음악이지 어린 나이가 아닌 것입니다.

신동들이 겪는 또 한 가지의 고통이 있다면,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음악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섰다는 점일 것입니다. 신동은 그 고지에 올라섰다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이 들 수도 있으며 또는 그 과정 자체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겨운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그들은 어른이 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점점 잃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음악에는 정상이 없습니다. 음악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그것은 한 인간이 인생을 통해 경험하는 수많은 다양한 일들과 동일합니다. 그들은 온통 음악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음악은 늘 새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부디 Joey Alexander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최근 5년 동안 자신이 경험했던 환호와 갈채를 잊고, 동시에 세상의 온갖 일들을 경험하며, 계속해서 세상에 대해, 음악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한 천재의 호기심과 열정을 평범한 우리들은 계속 느끼고 싶은 것입니다. Joey의 최신 음반 [Warna]가 반가운 것은 Joey Alexander가 우리가 바라는 그대로 성장하고 있음을 음악을 통해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Joey의 훌륭한 성장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냅니다.


Joey Alexander [War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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