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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May 25. 2020

온라인에서 연대하다: 코로나 이후의 재즈

장르 인사이드 #재즈

13~14세기 유럽의 페스트 이후 인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코로나 19는 자본주의 시대 이후 인간 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불가피한 시련을 겪고 있으며 그중에서 인명의 피해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재즈계 역시 그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난번 "2020년 4월의 재즈"(4월 13일 게재)에서 전해드린 Ellis Marsalis와 Bucky Pizzarelli의 타계 하루 전인 3월 31일, 트럼펫 주자 Wallace Roney(60세)는 코로나 19로 세상을 떠났으며, 보름 뒤인 4월 15일 전설적인 색소포니스트 Lee Konitz(93세)와 베이스 연주자 Henry Grimes(85세)가 모두 코로나 19 감염으로 세상과 이별해야 했습니다.


글ㅣ황덕호 (음악평론가)


고인이 된 이 세 사람은 모두 재즈 역사에서 또렷이 자기의 소리를 새긴 명인들이었습니다. Wallace Roney는 Miles Davis의 스타일을 가장 온전하게 계승한 연주자였고 Lee Konitz는 Charlie Parker 이후 정통파의 스타일을 가장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알토 연주자였으며 Henry Grimes는 비밥과 프리재즈를 넘나들었고 오랜 은퇴 이후 재즈계에 복귀해 많은 찬사를 받았던 베이스의 명인이었습니다.


세 분의 연주를 듣겠습니다. Lee Konitz가 연주한 'The Nearness of You'에서 베이스 연주는 Henry Grimes입니다.


Wallace Roney - Why Should There Be Stars

Lee Konitz Quartet - The Nearness Of You


재즈 명인들의 연이은 타계와 더불어 주요 재즈 공연이 취소되었고 재즈클럽과 공연장들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국내의 주요 재즈클럽들도 폐쇄와 재개관을 수시로 반복해야 했고 미국의 대표적인 재즈 정기공연 프로그램인 뉴욕의 'Jazz at Lincoln Center'와 샌프란시스코의 'SF Jazz'도 모든 공연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전통의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재즈 페스티벌들도 올해는 열리지 못할 전망이며 그 상황은 유럽의 재즈 페스티벌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자 음악인들은 이를 대신해서 재즈 음악인들은 신속하게 온라인에 모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컬리스트인 Thana Alexa와 색소포니스트 Owen Broder는 온라인 사이트 LiveFromOurLivingRooms.com을 만들었는데 이 사이트는 이름 그대로 출연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거실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송출하는 플랫폼으로, 이 사이트는 지난 4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아티스트들의 거실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에는 Chick Corea, Christian McBride, John Patitucci, Antonio Sanchez, Thana Alexa 등 일급 재즈 연주자들이 참여해 독주 내지는 가능한 소편성의 연주를 거실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들으실 음악들은 이 아티스트들이 기존에 남긴 독주 혹은 듀오 연주입니다. Antonio Sanchez의 'New Life'에서 보컬은 Thana Alexa입니다. 


Chick Corea - Sometime Ago

Christian McBride - Tango Improvisation #1 (With Chick Corea)

John Patitucci - Afro Blue

Antonio Sanchez  - New Life


매해 뉴욕에서 열리는 "뉴욕 기타 축제"는 올해 봄 할렘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올해 주제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할렘 거리에서 블루스를 통해 복음을 전하던 시각 장애인 Gary Davis 목사에게 헌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축제는 오로지 온라인을 통해서만 중계되었는데(5월 4~15일), 이 축제에는 음악의 장르를 제한 두지 않는 대표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Bill Frisell의 독주가 있었습니다.

매해 열렸던 "재즈 앳 링컨센터 갈라 콘서트" 역시 올해엔 온라인을 통해서만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갈라 콘서트의 주제는 "우리들의 문화를 위한 전 세계 음악회"로 변경되어 지난 4월 15일 12개국의 재즈 음악인들이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온라인을 통해 차례로 연주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날의 연주에는 미국의 Cecil McLorin Salvant와 Sullivan Fortner의 듀오, 피아니스트 Chucho Valdes의 피아노 독주 등이 연주되었습니다.


Reverend Gary Davis - Twelve Gates To The City (Remastered)

Bill Frisell - Ron Carter

Cecile McLorin Salvant - Left Over

Chucho Valdes - My Foolish Heart


유네스코에서 주관하는 국제 재즈의 날(매해 4월 30일) 역시 올해에는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서만 그 행사를 치러야 했습니다. 원래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있을 예정이었던 올해의 행사는 작년 2019년 콘서트의 장면들과 올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재즈 음악인들이 각자 자신들의 장소에서 보낸 화면들로 구성하여 미국 PBS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 중계되었습니다. 


음악인들이 올해 현장에서 보낸 화면들은 대부분 독주 혹은 독창이었는데, 여기에는 기타리스트 John McLaughlin, 베이시스트 Marcus Miller, 보컬리스트 Jane Monheit와 나윤선 등이 이 중계에 참여했습니다. Marcus Miller의 인사말대로 원래 음악이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서로 연대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현재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모두 평상시와는 다르게 홀로 화면에 등장해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한편으로 그러한 음악들은 이전에는 자주 들을 수 없는 독주와 독창들이었습니다.


John McLaughlin - My Foolish Heart

Marcus Miller - MR. PASTORIUS

Jane Monheit - Over the Rainbow

나윤선 - My Favorite Things


이제 음악과 인간은 새로운 환경 속에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한 접촉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고 그 비중은 점점 더 높아지다가 결국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변수를 통해 급격하게 의존하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 진행되어 오던 일에 가속도가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해오던 것을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할 시점에 온 것입니다.

그와 유사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윤과 관련된 자본주의 전체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이윤보다는 공익의 관점이 우선시 되었던 온라인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자본주의가 온통 의존해 오던 주가는 이전처럼 예측 가능한 것일까요? 코로나 19가 환경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면 오늘날까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던 여러 산업의 전망은 어떨까요? 그 속에서 인간은 늘 이윤 창출의 존재로 규정되고 그 기준으로 평가 받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속에서 예술은 어떤 위치에 놓일까요.

그래서 이제 음악인들, 특히 재즈 음악인들 사이의 연대와 결속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 재즈 재단(Jazz Foundation of America)은 코로나 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재즈 음악인들을 돕기 위해 지난 5월 14일 "#The New Gig"이란 제목의 온라인 자선 음악회를 열었고(여기에는 Dee Dee Bridgewater, Stanley Jordan, Angelique Kidjo, Milton Nascimento 등이 참여했습니다), Louis Armstrong 교육 재단과 아프로-라틴 재즈 연합(회장 Arturo O'Farrill)도 예술가들을 위한 기금지원금을 조성하기 위해 온라인 모금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윈터 재즈 페스티벌의 설립자 Brice Rosenbloom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Gail Boyd 그리고 공연 이벤트사인 앱솔루트 라이브의 대표인 Danny Melnick는 새로운 단체인 재즈 연합(Jazz Coalition)을 발족하고 재즈 음악인들을 위한 약 7만 달러(한화 약 8,400만원)의 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재즈연합은 대표적인 재즈 음악인들에게 코로나 극복의 메시지를 담은 새로운 작품을 위촉했는데 이 작품들의 수익금 역시  재즈 음악인들의 긴급 생활자금으로 전액 지원될 예정입니다. 현재 작품을 의뢰받아 작업 중인 연주자들은 Joshua Redman, Terri Lyne Carrington, Joe Lovano, Dianne Reeves, Nicole Mitchell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대표적인 재즈 독립 음반사인 맥애버뉴(Mack Avenue)는 지난 5월 3일부터 나흘 동안 그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의 음반 전체를 판매했는데 이 기간동안 판매된 수익금은 해당 아티스트에게 전액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재즈계가 단결하여 상생의 올바른 길을 찾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불어 닥친 혹한기가 되면 사람들은 일단 모여야 합니다. 서로 모여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서로 온기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만약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이 불가능하다면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서로 소통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해왔던 것이며 이미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입니다. 재즈가 아무리 비인기 음악이며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여있다고 하지만 이 음악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재즈 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문제를 위해 사람들이 나서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국내 재즈 음악인들을 위한 이러한 움직임들이 곧 일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Arturo O`Farrill - Vieques

Joshua Redman Quartet - Come What May

Dee Dee Bridgewater - Dear Ella (Album Version)

Stanley Jordan - All Blues

Louis Armstrong - When You'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s With You) (Without 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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