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요즘 밤마다 인터넷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꽤 많은 분이 들으셨지만 지금은 청취자 스무 명 남짓한 그들만의 방송이죠. 왜 그들만의 방송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선곡에 있었습니다.
글ㅣ한지훈(오디오 칼럼니스트)
저는 방송에서 Pentangle, Fairport Convention, Nick Drake 류의 포크 음악이나 Magna Carta, PFM, Latte e Miele, The Strawbs 류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주로 틀고 있는데요. 이런 장르의 음악이 제가 학창시절에 가장 많이 듣던, 제게 가장 친숙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발라드와 트로트,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같이 차트에 오르던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절에서조차 밤 12시가 훨씬 넘은 심야 라디오 시간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었으니 지금 이런 음악은 그 시절에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사람이나 듣게 되는 음악이 된 셈이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10대 또는 20대 초반까지 듣던 음악이 그 사람이 평생 듣는 음악이 됩니다. 그렇기에 그 시절에 들었던 음악이 가장 좋고 편하다고 생각되기 마련이고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고, 그러다 보니 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서도 그런 음악을 트는 것이겠죠. 또한 이런 이유로 많은 음악 평론가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기가 듣던 음악에 후한 점수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동익 씨의 새 앨범 리뷰는 그 어떤 앨범보다 어렵습니다. 제가 어떤날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동아기획이 등장하기 전까지 1980년대의 가요는 감정의 과잉 시대였습니다. 이는 가사나 코드진행은 물론 연주와 녹음도 그런 식으로 진행했는데요. 1980년대의 가요를 들어보면 기승전결이 분명한 곡의 구성은 물론이고 믹싱/마스터링 과정에서도 리버브의 사용이 많았습니다. 리버브를 많이 쓰면 잔향이 길게 남기 때문에 멜로디의 여운이 길게 남고 그런 이유로 멜로디의 감정이 오래 남게 되죠. 여기에 마이너 스케일의 코드 진행은 슬프고 아련한 느낌을 갖게 하고요.
이런 시기에 등장한 어떤날은 기존의 포크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계인이었습니다. 어둡고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의 아픔, 즉 사회의 이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존의 마이너 스케일 코드 진행과는 다른 밝은 톤으로, 리버브와 딜레이, 코러스로 대표되는 1980년대의 톤과는 다른, 최대한 이펙터의 효과를 억제하는 자연스러운 사운드로 그 시대의 젊은이를 노래했습니다.
이들을 외계인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이 이외에도 이들의 연주력과 편곡 능력에 있었는데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이지만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 칭해도 과장이 아닌 이병우의 기타 실력과 조동익의 편곡 능력은 그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말 그대로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듯한 앨범을 선물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금은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어떤날의 두 앨범이지만 그 앨범이 출시되었던 그 시절에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끈 앨범은 아니었습니다. 국수라면 라면과 칼국수밖에 없던 시절에 날치알 크림소스 파스타 같은 그들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었죠. 한 마디로 표현하면 너무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었달까요?
그렇게 단 두 장의 앨범만으로 별다른 활동 없이 어떤날은 해체되고 이병우는 "장화, 홍련", "왕의 남자", "괴물", "마더", "국제시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영화음악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영화의 영화음악으로, 그리고 조동익은 김광석을 비롯해서 이승환, 안치환, 장필순 등의 앨범 프로듀싱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음악과 함께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이들의 가치는 기존의 우리나라 대중음악과 김현철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뉴웨이브의 가교 역할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김현철이 어떤날의 공연을 보고 조동익의 집에 놀러가면서 "우리노래전시회" 3집 앨범에 곡을 발표하게 된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죠.
이렇듯 대중음악 발전의 자양분이 되었지만 이병우는 영화음악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한데 비해 조동익은 함춘호, 손진태, 김현철과 함께 한 프로젝트 그룹 야샤의 앨범 한 장과 1994년도에 발표된 그의 솔로앨범 [동경] 외에는 조동익 개인 앨범 작업이 없었죠. 야샤의 앨범조차도 옴니버스 앨범에 가까운 앨범이었고요.
이렇게 대중들에게 잊힌 존재가 된 조동익은 그의 음악적 동반자이자 아내이기도 한 장필순의 새 앨범 [soony re:work]를 프로듀싱하면서 기지개를 켰고, 무려 26년 만에 그의 솔로 2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경 음악으로 쓰일 것 같은 첫 번째 트랙 '바람의 노래'에서부터 당혹감을 멈출 수 없었는데요.
그의 이번 앨범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Led Zeppelin의 명곡인 'Dazed And Confused'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는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상징 같은 존재인 조동진의 동생이자 새로운 포크의 시대를 연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앰비언트 음악을 하다니요? 이건 마이클 조던이 농구공을 버리고 야구 글러브를 낀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입니다.
물론 그가 프로듀싱한 장필순의 새 앨범도 앰비언트와 로우파이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앨범이긴 했지만 이번 앨범은 마치 Brian Eno나 Pink Floyd처럼 정적인 앰비언트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운드로 채워져 있습니다. 누구의 앨범인지 모르고 듣는다면 "Brian Eno가 새 앨범을 발표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마이클 조던과 다른 점이라면 마이클 조던은 농구에서는 황제였지만 야구에서는 더블 A 리그의 2할 타자였는데 비해 조동익은 데뷔와 함께 실버 슬러거 상을 받을 정도의 앨범을 만들었다는 차이 정도랄까요?
타이틀곡인 '푸른베개'에서 그는 이 앨범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마치 빗소리를 표현한 듯한 화이트 노이즈와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는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를 샘플링한 듯한 피아노 음색, 그리고 첼로와 자일러폰의 음색이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물론 이런 연주곡만 수록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장필순이 피처링한 '내가 내게 선사하는 꽃'과 '그 겨울 얼어붙은 멜로디로' 같은 트랙은 장필순의 목소리에 루프(Loop) 이펙터를 걸어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시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푸른베개' 작곡가로서의 조동익이 아닌, 프로듀서로서의 조동익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트랙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앨범에는 매우 다양한 이펙터가 사용되었습니다. 앰비언트라는 장르 자체가 자연의 소리를 왜곡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장르이니 이펙터를 많이 쓰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얼마나 과하지 않게 잘 쓰느냐가 이펙터 사용의 포인트인데요. 만약 이펙터가 10까지 필요하다면 이 앨범은 9.9도 10.1도 아닌 정확한 10 만큼의 이펙터를 사용했습니다. 그가 한 때 세상을 호령했던 프로듀서 이전에, 수많은 명곡을 만든 작곡가 이전에 한 때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기타리스트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트랙이죠. 그리고 그런 기타리스트로서의 능력을 프로듀서로 유감없이 발휘한 트랙이고요.
이런 앰비언트라는 장르의 음악은 잘 만들면 역사에 남을 명반이 되지만 잘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평타 치기가 어려운 장르이죠. 그리고 어설프게 만들면 대단히 유치하게 들리기 때문에 앰비언트 장르의 앨범에는 명반이라고 칭할 만한 앨범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Brian Eno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앨범은 앰비언트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떤날의 앨범보다도 더 정적이고 메시지가 많게 느껴집니다. 앰비언트의 형식을 빌린 조동익 류의 포크 앨범 같은 느낌이랄까요? 조동익은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필요 이상으로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이 앨범의 또 다른 가치는 음질에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앨범은 클래식 앨범조차 컴프레서를 과도하게 설정해서 하이파이 오디오로 듣다 보면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녹음실의 먼지 앉는 소리까지 들려줄 것 같은 초고가 하이엔드 오디오로 들어도 그 뛰어난 음질에 감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가요 앨범 중에서 다이아몬드 유닛이 장착된 스피커로 들어도 음질로 만족할 수 있는 앨범, 정말 오랜만입니다.
1945년생인 Eric Clapton은 아직도 새 앨범을 발표하고 라이브 공연을 합니다. 1948년 생인 Ozzy Osbourne은 2019년 가장 힙한 뮤지션 중의 한 명이 Post Malone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했고, 올해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어떤날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1960년 생인 조동익은 아직 뒷방 노인네가 되기엔 너무 젊고,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의 왕성한 활동을 기대합니다. 이 앨범이 그 시작이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