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영화 중에는 자주 보는 영화는 아니지만 처음 봤을 때와 5년쯤 지나서 두 번째 볼 때, 그리고 다시 10년쯤 지나서 세 번째 볼 때의 느낌이 각각 다른 영화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화양연화"나 "우묵배미의 사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같은 영화가 그런 영화이죠.
음악도 그런 앨범이나 뮤지션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소개해드렸던 조동익이나 어떤날, 산울림, 신촌 블루스, 따로 또 같이, 김현철, 박선주, 조규찬, 김광진 등의 앨범이 그런 앨범이죠. 물론 지금 언급한 뮤지션들은 데뷔를 할 때부터 "무서운 신인" 내지는 "놀라운 신예", "떠오르는 샛별", "천재의 등장" 등의 수식어와 함께 등장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글ㅣ한지훈(오디오 칼럼니스트)
제가 어릴 때에는 뭘 몰라서 내지는 겉멋이 들어서 무시했던 뮤지션이지만 시간이 지나서 들어보면 정말 대단한 음악을 했던 뮤지션이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Bon Jovi죠. Bon Jovi는 고등학교 스쿨밴드가 카피하는/카피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밴드였습니다. 악보 상으로는 어려울 것이 전혀 없죠. 기타는 LOUDNESS의 'Like Hell'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태핑은커녕 속주라고 할 만한 부분도 거의 없고, 보컬은 애국가만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음역이면 Bon Jovi 노래 중에서 어려운 노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전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음악을 듣고, 그렇게 많은 뮤지션을 만나고, 공연을 봤지만 아직까지 Bon Jovi의 곡을 제대로 카피하는 밴드는 Bon Jovi 외에는 단 한 팀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백발이 된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듣던 Bon Jovi는 아직도 현역이고, 심지어 2019년 세계 공연 수익은 BTS 다음으로 7위를 차지했습니다. Ariana Grande보다도 높은 순위죠. 바로 이런 점이 제가 생각하는 진짜 가수인데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대중음악은 대중이 좋아해야 대중음악이고, 대중가수는 대중이 좋아해야 대중가수이다. 대중성을 떠난 대중가수는 없다."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가수가 바로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모습이 보이는 우리나라 대중가수의 상징, 김완선입니다.
김완선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음악 평론가분들께서 많이 이야기해 주셨으니 저는 조금 다른 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바로 앨범의 프로듀싱입니다. 보통 앨범의 프로듀싱이라 이야기하면 녹음실에서의 사운드 메이킹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 그 이야기 역시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에는 앨범의 방향이나 가수의 콘셉트, 안무, 의상, 심지어는 인터뷰의 방향과 사생활 관리까지도 프로듀싱의 영역이죠.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김완선은 그의 이모인 한백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쎄요, 사람에게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김완선은 그런 표현이 어울리게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데뷔 전 몇 년 간 이모 집에서 숙식을 하며 매일 춤 연습과 노래 연습으로 하루를 보냈고, 심지어는 3년간 부모님 집에도 가지 못했을 정도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하죠. 그렇게 노래와 춤을 연습하며 인순이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무대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고, 섹시 컨셉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녀가 데뷔하던 시기는 노출은커녕 가사나 창법도 심사를 받던 시기였습니다. 그녀보다도 데뷔가 1년 늦은 유재하가 "가창력 미달"이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 처분을 받던 시절이었죠. 그런 시절에 김완선은 눈빛과 춤만으로 6개월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한 적이 있을 정도니 그녀의 춤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되시겠죠.
이렇듯 음악 외적인 부분은 오랜 매니저 생활로 연예계의 생리를 잘 아는 그녀의 이모가 맡았고, 그녀의 음악에 관한 부분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프로듀싱을 했습니다. 이는 프로듀서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박강호(1집), 산울림 출신의 김창훈(2집), 우리나라 포크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김현식, 김수철 등을 발굴한 프로듀서이기도 한 이장희(3집), 변진섭, 조관우 등을 발굴한 하광훈(4집), 윤상과 함께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이끈 기수인 손무현(5집) 등이 그녀의 앨범 북클릿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이외에도 2집 앨범은 '충격'이 들어간 버전과 '리듬 속에 그 춤을'이 들어간 버전, 두 가지 앨범이 존재하죠. 역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리듬 속에 그 춤을'은 우리나라 록의 역사 그 자체인 신중현 선생이 곡을 쓰고 그의 장남이 연주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고요.
나이를 먹으면 생기는 버릇 중의 하나가 자신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과거를 미화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 맥주를 한 잔 하다가 김완선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야, 예전에 김완선 노래 너무 못한다고 그랬잖아? 근데 요즘 애들에 비하니 완전 디바더라, 디바." 딱 한 마디로 분위기를 정리했죠. "네가 요즘 애들 누구를 아는데? 요즘 애들 노래하는 거 직접 본 적 있어? 우리 때보다 훨씬 잘해."
물론 김완선은 예나 지금이나 이선희의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소찬휘처럼 높은 음역대의 노래를 부르진 못합니다. 하지만 성량이 크다고, 고음이 올라간다고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닙니다. 그 논리라면 Leonard Cohen이나 Sting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보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고, Eric Clapton은 저보다도 기타를 못 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김완선은 유독 가창력과 거리가 먼 이미지가 강했는데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김완선의 노래를 불러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녀의 노래, 특히 4집 정도까지의 노래는 생각보다 따라 부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노래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죠. 이는 앨범을 프로듀싱하고 작곡한 사람들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요. 그들은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작업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즉 어떻게 곡을 써도 가수가 그 곡을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만 상대했던 사람들이죠.
바로 이 부분에서 4집까지의 노래와 5집의 노래에 차이가 있는데요. 김완선 5집은 김완선이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완선 5집은 4집 앨범 활동 때의 백밴드인 실루엣에서 기타를 쳤던 손무현이 프로듀싱한 앨범입니다. 즉 김완선의 음역과 목소리의 장단점을 같은 무대에 서서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이 프로듀싱을 했기에 그녀의 장점만을 부각시킬 수 있었던 거죠.
또 다른 이유로는 그녀의 노래는 그녀의 음색에 맞는 장르가 아니라는 데에 있는데요. 많은 분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비음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녀 목소리 스타일의 비음은 정통 댄스보다는 발라드나 테크노 계열의 일렉트로니카에 더 잘 어울리죠. 왜냐하면 그런 류의 비음이 토크박스나 오토튠 류의 보코더 이펙터와 연결되면 상당히 묘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의 소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 중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곡이라면 Cher의 'Believe' 정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김완선의 데뷔가 10년 정도만 늦춰졌다면,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에 맞는 옷을 입고 테크노 계열의 일렉트로니카 시절에 데뷔를 했다면 지금쯤에는 거의 이미자 선생이나 패티김 선생 못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잘 만들어진 창작물 - 그게 영화든 음악이든 – 이 잘 만들어진 작품인지 아닌지 확인해보는 아주 간단한 방법 중의 하나가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영화를 다시 보거나 음악을 다시 듣거나 하는 겁니다. 그 영화나 음악이 인기가 있었을 때에는 세상 최고의 작품처럼 느껴지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고 들으면 "내가 이렇게 촌스러운 노래(영화)를 좋아했던 거야?" 하면서 놀라곤 하죠.
얼마 전에 운전을 하다가 카오디오 하드디스크 속에 잠자고 있던 '리듬 속에 그 춤을'을 듣고는 차를 세웠습니다. '이게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 하는 생각에서요. 작년에 리메이크 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김완선은 김완선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김완선은 김완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