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오디오와 오버홀

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by Melon

미국드라마 "NCSI"를 보면 Donald Mallard라는 부검의가 나옵니다. 영국 출신이라는 캐릭터답게 영국 품종인 웰시코기를 여러 마리 키우고, 모건이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운전하죠. 영국을 상징하던 롤스로이스는 BMW 그룹으로, 벤틀리는 폭스바겐 그룹으로 인수된 이 시점에서 순수 영국 자동차 브랜드는 애스턴 마틴과 맥라렌, 그리고 모건만 남은 상황인데 나이 많은 영국인 부검의가 애스턴 마틴이나 맥라렌을 탄다는 설정보다는 아무래도 모건의 자동차를 탄다는 설정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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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타라는 자동차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쌍용자동차 최초의 승용차로 고전적인 디자인 때문에 애호가들 사이에선 큰 인기를 끌었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출시 당시 최고급 승용차였던 뉴그랜저의 최고 등급 모델에 모든 옵션을 넣어도 칼리스타보다 쌌습니다. 필자 주) 우리나라에선 78대만을 판매하고 단종된 비운의 모델입니다. 위에서 말한 Donald Mallard가 운전하는 모건의 자동차 대부분이 칼리스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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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모건의 자동차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자동차의 프레임은 전통 방식의 물푸레나무로 만듭니다. 74년 만에 새로운 프레임을 쓰기 시작하면서 2020년 모델부터 물푸레나무와 알루미늄으로 섀시를 만들지만 그래도 그들의 기본 프레임은 나무입니다. 여기에 최신의 BMW 엔진과 ZF 트랜스미션을 얹어서 자동차를 만들죠. 그러다 보니 내장재 대부분이 나무와 가죽이고, 스티어링 휠 역시 나무로 만들어서 관리를 잘못하면 벌레가 나무의 스티어링 휠을 파고 들어가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드라마 속에서 Donald Mallard 박사가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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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빈티지 스타일의 자동차나 정말 빈티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우선 경제적인 이유로, 돈이 없어서 빈티지 차를 타는 건 아닙니다. 자동차는 오래될수록 가격이 낮아지다가 어느 시점이 지난 이후부터는 오히려 더 비싸지고 관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집니다. 제가 얼마 전에 1970년대에 출시된 자동차를 사려다가 포기한 이유도 그 차를 믿고 맡길 카센터를 못 찾아서였죠. 제가 생각한 이유로는 전통(heritage)에 대한 존경과 존중(respect)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는 오디오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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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오디오의 가격은 오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192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웨스턴 일렉트릭의 오디오야 그 시절에도 가격이 비싸서 극장에서 구입을 하는 게 아니라 임대를 하고 썼던 제품이었고 지금도 웨스턴 일렉트릭으로만 시스템을 꾸미면 오디오 한 조의 가격이 강북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을 뛰어넘습니다. 194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진 탄노이 스피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새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탄노이이지만 그 시절의 탄노이 유닛과 오리지널 인클로저의 가격을 합치면(예전의 탄노이는 유닛과 인클로저를 따로 판매했었습니다. 필자 주) 웬만한 수입차 가격보다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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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이때의 앰프는 출력이 10W도 채 되지 않았으며, 스피커의 재생 주파수 한계는 채 10㎑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의 스피커에 비해 배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지요. 게다가 그마저도 중역대에 몰려 사람의 목소리나 독주 악기의 연주는 들을 만 하지만 악기의 수가 조금만 많아져도 소리는 번잡해집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스피커의 성능은 조금 괜찮은 PC용 스피커보다도 못한 수준이고, 앰프의 성능은 동호회 회원의 자작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오디오파일의 꿈의 오디오이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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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연식의 자동차라도 보존 상태에 따라 중고차 가격이 천차만별이듯이 같은 모델의 빈티지 오디오라도 보존 상태에 따라 가격은 배 이상이 차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제품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요. 자동차의 경우 오버홀이 잘 되어 있을수록 중고 가격이 비싸지만 오디오는 정반대로 오리지널 부품으로만 유지되었느냐, 아니면 부품이 바뀌었느냐에 따라 중고 가치가 달라집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리지널 부품으로만 유지되었을 때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디오는 전자제품이라는 겁니다. 모든 전자부품은 수명이 있고, 그중에서도 오디오의 핵심 부품인 커패시터는 20년이상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앰프는 D 클래스 증폭방식의 파워앰프가 아니라면 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수명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죠. 하지만 오래된 제품일수록, 비싼 제품일수록 성능이야 어찌되었건 오리지널 부품이 달려있는 제품이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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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말하길 탄노이 스피커는 멍청한 소리를 듣는 스피커라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탄노이 스피커, 그중에서도 오래된 유닛인 탄노이 모니터 블랙이나 탄노이 모니터 실버 유닛이 생각 외로 앰프를 가려서 어울리는 앰프를 조합하기 힘든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그런 스피커에 연결하는 앰프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스피커가 비싼 만큼 앰프도 비싸고 오래된 앰프를 연결하지만 앰프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좋지 않은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거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떤 바보가 멍청한 소리를 듣기 위해 1억 원짜리 스피커를 삽니까?


며칠 전, 오래된 앰프를 오버홀 한 지인의 집에 갔다가 탄노이 실버 유닛 스피커의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요. 그 집의 빈티지 앰프는 마란츠 1 프리앰프와 마란츠 2 파워앰프였습니다. 마란츠 2 파워앰프야 워낙 인기 있던 모델이라 마란츠에서 다시 새제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했지만 마란츠 1 프리앰프는 오디오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평생에 몇 번 보지 못할 희귀한 앰프인데요.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진행한 오버홀을 마치고 난 마란츠 앰프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들려주는 앰프로 변했고, 그 앰프에 연결된 탄노이 스피커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빈티지 스피커의 소리가 아닌, 요즘의 스피커 소리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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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단 오디오뿐만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말한 조합에 들었던 앨범은 [Chet Baker Sings]라는 앨범이었는데요. 1950년대에 녹음된 이 앨범은 Chet Baker의 젊은 시절 목소리가 녹음된 명반이지만 그 조악한 음질 때문에 손이 가지 않던 앨범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현재 멜론에서 FLAC서비스가 불가능합니다. 편집자 주)


Chet Baker [Chet Baker Sings]


하지만 요즘 다시 출시되고 있는 리마스터링 버전을 들어보니 제가 전에 듣던 앨범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앨범에 따라서, 장르에 따라서 리마스터링된 앨범은 너무 게인이 올라가서 듣다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드는 앨범도 있지만 이런 앨범처럼 잡음 때문에 듣기가 괴로웠던 앨범이 잡음이 제거된 깨끗한 목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니 음향 기술의 발전에 새삼 놀라게 됐습니다.


물론 저 마란츠 1, 2 앰프는 시장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을 겁니다. 그렇기에 빈티지 기기는 꼭 오버홀을 하라고 말씀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저 앰프의 주인도 팔 생각 없이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생각으로 오버홀을 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요즘 시대의 소리에 익숙해있다면 우리가 듣는 장비도, 그 음원도 요즘 시대에 맞게 만드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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