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여전히 번뜩이는 뮤지션

흥미진진한 Hi Fi 이야기

by Melon

지금은 윷놀이 같은 민속놀이 취급을 받는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 시절, 프로선수들은 연습을 하다가 연습이 지겨워지면 쉬기 위해 유즈맵 세팅 게임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재즈 앨범을 소개하는 책이기에 요즘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늘 어디에선가 재즈가 흐르고 있습니다. 두어 달을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는 드럼의 브러쉬 소리만 들어도 멀미가 날 지경인데요. 그럴 때는 가요 앨범을 듣습니다.


글ㅣ한지훈 (오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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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있어서 김현철만큼 데뷔가 충격적인 가수가 있었을까요? 그의 데뷔 앨범은 약관의 나이에 만든 앨범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완성도였고, 저는 지금까지 김현철의 앨범 중에 데뷔 앨범보다 좋은 앨범을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곡의 완성도나 어레인지, 녹음, 가창, 믹싱/마스터링 등등의 측면에서 보자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데뷔 앨범보다 나은 앨범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데뷔 앨범에 한정해서 본다면 그의 데뷔 앨범의 충격은 들국화나 봄여름가을겨울 이상이었습니다. 사실 들국화야 데뷔 앨범을 그 때 만든 것뿐이지 데뷔 앨범 발표 이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선 슈퍼스타였고, 봄여름가을겨울은 당대 최고의 가수와 함께 했던 팀이었으니 애초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더 꼽자면 윤상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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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라운 데뷔 앨범을 만든 이는 김현철과 윤상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대학교수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정원영의 앨범이 그렇죠. 그의 세련된 곡은 발표 후 27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거나 어색하지 않고, 앨범의 세션은 조동익, 신윤철, 한영애, 김종진, 전태관 등 당대 최고의 뮤직 크루였던 하나뮤직의 멤버가 총출동한 가운데 송홍섭, 이현석, 김원용, 배수연 등 S급 세션맨들이 더해져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부럽지 않은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정원영 [가버린 날들]


물론 제 귀에는 모든 게 완벽한 앨범은 아닙니다. 제게 이 앨범을 어레인지 하라고 한다면 저는 색소폰을 빼고, 그 자리에 ES-335(깁슨의 대표적인 새미 할로우 바디 기타.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기타로 Lee Ritenour, Larry Carlton 등이 메인 기타로 사용하는 모델입니다. 필자 주) 기타를 넣어 좀 더 담백한 앨범을 만들었을 것 같아요. 마스터링도 좀 더 깔끔하게 했을 것 같고요. 한 마디로 Scott Hamilton(Eddie Higgins Quartet의 색소포니스트)보다는 John Abecrombie를 선택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 때는 끈적끈적한 색소폰이 멋스럽게 느껴지던 시절이었고, 지금의 이 말은 취향의 차이, 즉 "다르다"는 이야기이지 "틀리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잘 만들어진 데뷔 앨범을 발표했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그의 데뷔 앨범은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데뷔 앨범이 발표된 시기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대변혁이 이루어졌던 시기, 즉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댄스 음악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마니아들에게 알려진 앨범이 되었죠.


정원영 [Mr. Moonlight]


2년 뒤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에 수록된 '다시 시작해'라는 곡을 통해 그는 "대중 가수"가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뮤직의 멤버였던 낯선사람들과 김장훈, 그리고 당대 최고의 보컬리스트였던 임재범이 앨범에 참여하면서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앨범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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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발표한 3집 앨범 [Young Mi Robinson]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의 틀을 완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경쾌한 애시드 재즈 느낌의 타이틀곡인 '그냥'과 앰비언트 풍의 퓨전 재즈곡인 '영미 Robinson'을 통해 그가 나아가고자 하는 음악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느낌인데요. 발표한지 20년이 넘는 앨범이지만 지금 발표한 앨범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된 선율로 채워진 이 앨범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숨은 보석같은 앨범이죠.


그 후 그의 음악 동료들과 긱스를 결성해서 활동하기도 하고, 그의 제자들과 "정원영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하며, 영화음악 작곡가로도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앨범을 발표하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면서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대학교수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게 느껴졌는데요. 물론 제 주위의 평을 들어보면 그는 대학교수로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재기발랄하면서도 번뜩임이 느껴졌던 그의 초창기 앨범이 생각나면서 더 이상 그의 그런 앨범은 접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커졌던 것도 사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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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위엔 뮤지션에서 대학교수가 된 분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대단히 훌륭하고 음악적 성과가 뛰어나니 교수가 되었겠죠. 그러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보람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때 뮤지션에게 대학교수라는 자리가 매혹적인 자리가 되는 것은 교수라는 사회적 위치나 존경의 시선보다 안정된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아무리 슈퍼스타였다고 하더라도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해서 돈을 모으는 방법을 모르거나 앨범을 몇 백만 장이나 몇 십만 장씩 팔아서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이 계속 채워지지 않는 한 가수라고 생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CD는 판매용이 아니라 홍보용으로 돌리기 위해 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CD는 안 팔리고, 아이돌 그룹 중심이 된 음악 시장에서 그들이 살아남기는 그 나이의 일반인이 살아남기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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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들에게 대학교수라는 자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그렇게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며 자기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하지만 연구 업적 때문에 2~3년에 한 번 형식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는 그런 가수들 정말 많이 봤습니다. 한 때는 드넓은 초원을 호령했지만 지금은 동물원 사파리에서 관람객이 던져주는 간식으로 살이 찐 호랑이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정원영은 이번 앨범을 통해 아직 초원을 질주하는, 눈빛은 매섭고 근육은 탄탄한 호랑이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마치 "나 아직 살아있어!"라고 말하는 듯하죠.


정원영밴드 [HOME]


오래 호흡을 맞춘 제자들과의 앙상블은 말할 것도 없고, 정원영 특유의 시적인 가사와 여전한 그만의 분위기까지, 노쇠했다는 느낌은 전혀 없으면서 더 원숙해졌다는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정원영의 음악을 이 한 장의 앨범에 정리했다는 느낌이랄까요? 그의 요즘 앨범에서 아쉬웠던 녹음이나 녹음 후 과정(믹싱/마스터링)도 한결 나아졌다는 느낌이고요.


70세가 훨씬 넘은 어떤 기타리스트 – 사람들은 그를 "기타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 는 지금도 매일 네 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더 잘 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못 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면서요.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이한 정원영은 우리나라의 가요계 풍토로 본다면 뒷방노인네가 되었어도 벌써 되었을 사람입니다만 아직도 날이 바짝 서있는 앨범을 발표합니다. 그동안의 그의 노력이 보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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