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인사이드 #재즈
인간의 부조리한 욕망은 병든 지구를 만들었고 그 병이 인간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 2020년입니다. 그래도 병든 지구는 힘든 몸을 이끌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궤도를 돌아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 추석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제 "비대면", "언택트"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대면"과 "콘택트"를 정상으로 놓고 여기에 "비(非)"와 "언(un)"을 붙여 부르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온라인"이라 칭하고 예외적인 경우를 "오프"라고 부르는 세상이 이미 눈앞에 온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올해의 추석은 "온라인 추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추석 때보다도 5일간의 휴일을 개인적인 휴식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글ㅣ황덕호 (음악평론가, KBS클래식FM Jazz수첩 진행)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을 깊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올 추석 연휴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특히 재즈팬 여러분들에게 마음먹고 "정주행" 할 수 있는 재즈 세트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소개란 말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여러 해 전에 발매된 음반들이고 명반으로 잘 알려진 음반들이기 때문입니다.
연주가 탁월하다는 점 말고도 여기 고른 세 종의 세트들은 몇 가지 기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째, 모두가 단기간 내에,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연주된 실황녹음들입니다. 그래서 상이한 앨범을 담은 세트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정주행"으로 쭉 들으시면 됩니다. 둘째, 이 세트에는 비교적 근자에 세상을 떠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정주행" 감상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최고의 재즈를 전했던 사람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전체 음악은 CD 기준으로 16장의 분량입니다. 하루에 3~4장씩 들으시면 전체 음악을 다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16장을 다 들으시기에 이번 연휴가 부족한 분이라면 이 중 한 세트만을 골라 하루에 한 장씩 들어보시는 것도 알찬 방법일 것 같습니다. 분량이야 어찌 되었든 이번 연휴는 음악에 푹 빠졌다가 나오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옛말은 음악감상에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정주행" 출발입니다.
Keith Jarrett Trio [At Blue Note: The Complete Recordings] (1994)
이 앨범은 Keith Jarrett Trio가 1994년 6월 3일부터 6월 5일까지 3일간 뉴욕의 대표적인 클럽 블루노트에서 가졌던 실황을 담은 앨범입니다. 당시 이 트리오는 하룻밤에 두 번 무대에 올랐는데 각기 한 번의 무대는 CD 한 장을 채웠고 그렇게 해서 이 블루노트 클럽 실황녹음 전집은 전체 CD 6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Keith Jarrett은 재즈 연주자이고 그래서 당연히 많은 실황녹음을 발매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재즈클럽에서의 실황앨범은 거의 없습니다. 수십 종이 되는 그의 실황녹음 가운데서 클럽에서의 녹음은 1968년 "Shelly Manne의 맨홀"에서의 녹음과 '92년 "디어헤드 인"에서 녹음이 제가 기억하는 단 두 번의 클럽 녹음이었습니다. Jarrett의 실황앨범은 대부분 콘서트홀 혹은 페스티벌 무대에서 진행된 것인데 그것은 피아노의 잔향이 보다 섬세하게 오래 남는 공간을 선호하는 Jarrett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확실히 이 블루노트 클럽에서의 녹음도 다른 Jarrett의 녹음과 비교한다면 피아노 소리가 둥글고 어두운 느낌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3일 공연에서 Keith Jarrett Trio의 연주는 단연 최고였습니다. Jarrett(피아노), Gary Peacock(베이스), Jack DeJohnette(드럼) 각각의 기량도 최고이지만, 당시까지 11년 동안 맞춰진(1983년 결성) 이들의 호흡은 상호작용을 통한 즉흥연주가 저 오래된 스탠더드 넘버들을 최고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Jarrett의 말대로 이 작품들을 즉흥연주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지만, 그 여정의 "과정"을 만드는 것은 즉흥 연주자들이며 그 과정은 여기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Keith Jarrett Trio가 최고의 "과정"을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역시 연주자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입니다. 즉흥연주를 추구하는 재즈에서 한 사람의 연주는 함께 연주하는 동료에게 순간적이면서도 중요한 자극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성된 재즈밴드에서 한 사람의 멤버는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멤버가 바뀌면 당연히 음악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Keith Jarrett Trio도 역사 속의 팀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즈팬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이 트리오에서 30년 넘게 활동해 온 베이시스트 Gary Peacock(1935~2020)이 지난 9월 4일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Bill Evans, Paul Bley Trio를 거치면서 트리오 안에서 대화하듯 연주하는 인터플레이 방식을 개척했고 그 기법을 Keith Jarrett Trio를 통해 완성한, 재즈 베이스의 혁신자였습니다. 즉흥연주는 하나의 과정이고 어쩌면 인생 자체도 목표가 없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85년의 인생은 아마도 성공적이며 아름다운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이러한 연주는 그 누구를 통해서 만들어졌던 적이 없으며, 그곳에 Gary Peacock이 없었더라면 이런 음악을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Wynton Marsalis는 7중주단으로 개편된 자신의 밴드를 1992년부터 앨범을 통해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략 그 무렵 해외의 재즈잡지를 통해 Wynton이 뉴욕의 클럽 '빌리지 뱅가드'에 아주 적은 출연료를 받고 자진해서 무대에 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재즈의 전통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Wynton이었기 때문에 올해 기준으로 개관한 지 85년 된 유서 깊은 재즈클럽 뱅가드를 Wynton이 아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인 '99년 Wynton의 뱅가드의 실황을 담은 CD 7장의 박스세트가 발매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그는 자신의 7중주단을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소개하기 이전부터 뱅가드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7장의 박스세트는 1990년부터 '94년까지 이들의 연주를 담고 있는데 4년의 세월을 걸쳐 녹음했던 만큼 세트 안에서 멤버들의 변동이 다소 있습니다. Wynton Marsalis(트럼펫), Wessell Anderson(알토 색소폰), Wycliffe Gordon(트롬본), Herlin Riley(드럼)는 4년간 자리를 지켰고 대신에 테너 색소폰(여기에 소프라노 색스와 클라리넷을 병행한) 주자는 Todd Williams('90~'91) 혹은 Victor Goines('93~'94), 피아노에는 Marcus Roberts('90~'91) 혹은 Eric Reed('93~'94), 베이스에는 Reginald Veal('90~'93), 혹은 Ben Wolfe('94)가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피아노 트리오 리듬섹션에 4관 편성이 탑재된 7중주 밴드입니다. 자, 그럼 두 번째 "정주행" 시작하겠습니다.
Wynton Marsalis Septet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90~'94)
현재는 미국을 대표하는 재즈 기관인 "재즈 앳 링컨센터"을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았고 설립 이후로 현재까지 음악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Wynton은 1980년대 초 재즈계에 등장한 이래로 늘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재즈에서 퓨전과 아방가르드를 배제하자는 그의 강력한 주장은 Miles Davis를 비롯한 거장들을 겨냥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동시에 그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재즈 연주자들 혹은 평론가들은 그의 연주가 너무 학구적이고 심지어 덜 창의적이라는 비판을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그 비판의 일선에는 Keith Jarrett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자면 Wynton에 대한 당시의 비판들은 타당한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재즈의 진정한 가치를 부각한 것은 커다란 공로지만 재즈와 비(非)재즈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때때로 자가당착에 빠졌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는 빈틈없이 완벽한 독주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밴드를 너무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이것은 Keith Jarrett Trio의 상호작용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7중주단의 스튜디오 앨범은 그런 단점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한 마디로 전달해야 할 음악적 내용이 너무 많고 그것을 제한된 시간의 스튜디오 앨범을 통해 전달하자니 음악은 종종 과부하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러한 단점은 특히 이 라이브 앨범을 들었을 때 확연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클럽 라이브에서 이들의 연주는 시간적 제약에 쫓기지 않고 멤버들이 마음껏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내면서 스튜디오 연주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이들의 진미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여러 논란이 있었고 스튜디오 앨범에서 연주상의 단점도 발견되었지만 7중주단 시기에 Wynton은 가장 왕성한 창작 에너지를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진가를 담은 뱅가드 실황앨범은 당연히 Wynton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ynton Marsalis(1961년생) 스스로가 고백했듯이 그가 성장하던 1970년대는 R&B가, 특히 그 시절엔 펑크(funk)로 불리던 음악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그 속에서 성장한 Wynton이 본인으로서는 경험하지도 못했던 "재즈의 순수시대"를 복원시키려고 했던 것은 한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재즈 평론가 Stanley Crouch입니다.
1978년, 그의 나이 열일곱 때 뉴욕에서 홀로 생활을 시작한 Wynton은 그곳에서 Crouch를 만나 재즈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정립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상업주의가 흑인음악을 오로지 강한 백비트에 현란한 춤을 추는 음악으로 한정시킴으로서 흑인과 흑인음악을 아무런 생각이 없는 노예제 시절로 되돌리고 있다는 것이 Crouch의 주장이었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블루스와 재즈가 오히려 흑인과 그들 음악의 앞길을 제시해 준다는 그의 생각은 Wynton 행보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 것입니다.
Crouch는 Wynton Marsalis 앨범을 위해 수십 편의 라이너노트(해설문)를 썼고 여러 지면을 통해서도 재즈에 숨겨져 있는 인종적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침으로써 많은 논쟁거리를 제시했던 평론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뱅가드 실황의 라이너노트 역시 지난 9월 16일 세상을 떠난 Stanley Crouch(1945~2020)의 정성스러운 글이었습니다. 그의 글대로 설사 그날 밤 우린 뱅가드 클럽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린 지금 그날의 기록을 손에 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음악을 "정주행"한다면 우린 이 시대 가장 탁월했던 한 재즈밴드의 밤을 함께 공유할 것입니다.
평생 수많은 앨범을 쉴 새 없이 발표했던 Lee Konitz에게도 돌이켜 보면, 인생의 부침이 있었습니다. 이미 1949년 전설의 Miles Davis 9중주단으로부터 모습을 보인 그였음에도, 그 뒤로 20년 동안 그의 음반은 늘 재즈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고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60년대가 끝나면서 전기 사운드와 록, 소울 비트가 재즈를 뒤덮었고 그는 어느덧 재즈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작품을 녹음하지 않을 Konitz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독립 레이블을 통해 쉼 없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이전과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그 작품의 빈도만큼 내용이 충실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앨범 역시 자신의 수많은 즉흥연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여겨질 정도로 그의 앨범은 계속 남발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의 일흔 번째 생일을 이미 두 달 정도 지난 1997년 12월 21일, 그는 베이시스트 Charlie Haden 그리고 그가 추천한 젊은 피아니스트 Brad Mehldau와 L.A.에 위치한 클럽 "재즈 베이커리"에 함께 서게 됩니다. Konitz는 이전에도 Charlie Haden과 함께 연주, 녹음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Mehldau를 만난 것은 그날 무대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 70살의 Konitz는 또 한 편의 즉흥연주를 그렇게 녹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Konitz의 팬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그날 녹음된 곡들은 이 노장이 이미 여러 차례 녹음한 바 있는 스탠더드 넘버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드럼이 빠진 특이하고도 느슨한 편성, 처음 만난 Brad Mehldau, 그리고 현장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Lee Konitz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이 곡들을 연주합니다. 특히 'Cherokee'에서 Mehldau의 피아노 솔로가 반음계를 타고 기이하게 진행되자 Konitz는 그 가운데로 주선율을 슬며시 불면서 중심을 잡아줍니다. 그리고 Mehldau의 솔로가 속도를 올리자 Haden 역시 기어를 올려 정확한 스윙으로 솔로에 힘을 보탭니다. 하지만 자신의 솔로 순서가 오자 그는 다시 속도를 늦추고 그의 스타일대로 "프리하게" 곡을 해체시킵니다. 이땐 Mehldau도, Konitz도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솔로가 끝나면 Konitz는 "자, 이런 것도 해보자고"란 식으로 트레이드 솔로를 제안합니다.
이러한 연주는 농익은 Keith Jarrett Trio나 너무나도 잘 조직된 Wynton Marsalis Septet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연주입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무성의한 연주로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이러한 연주는 멤버에 따라서, 특히 내성적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려 줄 수 있는 훌륭한 기량의 연주자들이라면 의외로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어 냅니다. 그다음 날까지('97년 12월 22일) 한적한 '재즈 베이커리'에서 계속된 이들의 녹음은 그래서 묘한 긴장감을 담은 앨범입니다. 이날의 연주를 녹음했던 블루노트 레코드는 두 장의 앨범을 통해 Lee Konitz의 건재와 복귀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립니다.
2000년대 들어서 고령의 Lee Konitz는 더 왕성한 활동을 보입니다. 특히 정규밴드라고는 할 수 없지만 Mehldau, Haden 여기에 Konitz와 Haden을 연결했던 베테랑 드러머 Paul Motian이 가세해서 완성된 사중주단은 팬들의 관심 속에 2009년 12월 뉴욕의 명소 '버드랜드'에서 실황앨범을 녹음합니다. 이들은 이제 이전보다 상대의 음악에 대해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관습적으로 음악을 끌고 가거나 일방적으로 음악을 몰고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늘 상대의 음악에 귀 기울이면서 즉흥적인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특히 이제 82세가 된 Konitz의 알토 음색이 여전히 윤기 있는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오랜 그의 팬들에게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올해 93세의 그는(1927~2020) 우리를 덮친 코로나의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4월 15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2009년도의 녹음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11년 전 녹음이라는 사실이 믿겨 지지를 않습니다. 특히 Paul Motian(2011년), Charlie Haden(2014년) 그리고 Lee Konitz까지 그 사이에 모두 고인이 되었다는 점은 갑자기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음악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데 말입니다. 음악의 "정주행"을 통해 그 속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인물들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집중하며 오랜시간 듣는 음악은 우리의 시공을 넘어서는 특별한 체험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