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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의 힙합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트랩. 수 없는 아티스트 중에서도 21 Savage는 거리의 삶을 중독적인 보이스 톤의 랩으로 담아내며 2010년대를 대표하는 트래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의 단짝인 Metro Boomin은 본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공간감 있고 퇴폐적인 무드의 사운드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들은 2016년 합작 EP [Savage Mode]를 통해 힙합 신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고, 두 음악가는 자신의 이름을 신에 아로새기며 스타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4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둘은 후속 앨범인 [SAVAGE MODE II]를 들고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과연 4년 만에 발표된 이들의 작품에는 어떤 트랙들이 수록되어 있을까?
21 Savage, Metro Boomin [SAVAGE MODE II]
글ㅣ힙합엘이
Runnin
Morgan Freeman이 내레이션을 맡아 화제가 된 인트로를 지나면 앨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Runnin'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트랙의 도입부부터 범상치가 않다. Metro Boomin은 Diana Ross의 'I Thought It Took a Little Time'을 샘플링해 로우파이 사운드로 곡을 시작한 뒤 트랩 리듬을 위에 얹어 낸다. 보컬 샘플과 트랩 비트는 근사하게 어우러져 시종일관 곡의 텐션 감을 자아낸다.
트랙에서 21 Savage는 2016년 [Savage Mode]를 발매할 당시를 회상하면서 특유의 낮은 목소리 톤으로 벌스를 전개해 나간다. 또한, 곡의 후반부에서 트랩 뮤지션들을 여럿 배출한 애틀랜타의 지역인 Zone 6를 샤라웃하기도 한다. 곡의 후반부에서는 Morgan Freeman의 내레이션이 다시 흘러나오면서 앨범에 극적인 효과를 한층 고조시킨다.
Mr. Right Now
21 Savage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이전 시대의 알앤비를 따라 부른 영상을 올리며 본인의 가창력과 남다른 알앤비 사랑을 드러낸 바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자택에서 인스타 라이브를 활용해 알앤비 공연을 선보였을 정도다.
이런 21 Savage의 알앤비 사랑은 'Mr. Right Now'에서 드러난다. 그는 인트로에서 TLC의 노래를 언급하고, 벌스에서는 Sade를, 그리고 아웃트로에서는 Keith Sweat까지 언급하며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한다. 곡의 피처링으로는 21 Savage와 마찬가지로 알앤비 러버 Drake가 참여했다. Drake는 21 Savage처럼 자신의 매력을 뮤지션에 비유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뜬금없게 SZA와의 썸을 탔던 그때 그 시절을 가사로 언급하기도 한다.
Rich Ni**a Shit
지난 트랙과 자연스럽게 이어 나오는 'Rich Nigga Shit'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점이 많은 트랙이다. 우선 트랙은 Metro Boomin하면 떠오르는 어두운 무드의 프로덕션과 달리 미묘한 신시사이저 소리로 인해 달달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21 Savage는 알앤비 러버답게 프로덕션의 분위기에 맞게 목소리에 오토튠을 걸어 멜로디컬한 벌스를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피처링으로 참여한 Young Thug은 21 Savage의 벌스를 이어받아 맛나게 발음을 뭉그러뜨린 채 꿈틀거리는 플로우로 싱잉 랩을 구사한다. 덕분에 곡은 [Savage Mode] 시절과 비교해 두 뮤지션의 넓어진 음악 스펙트럼과 트랩 사운드의 진화를 한 눈에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Many Men
[SAVAGE MODE II]는 알고 보면 선배 뮤지션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를 엿볼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우선 앨범 커버는 얼핏 보면 촌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No Limit Records를 비롯해 남부 힙합의 주요 앨범 아트워크를 제작했던 Pen & Pixel Graphics가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2003년 회사를 닫았지만, 듀오는 이번 작품을 위해 이들을 불러 앨범 커버를 작업했다고 한다.
또한, 'Many Men'은 50 Cent의 동명 트랙을 샘플링해 만든 곡이다. 21 Savage는 어두운 무드의 프로덕션에서 거리에서의 삶과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전히 중독성 가득한 추임새를 들을 수 있는 건 덤. 이 밖에도 가사에서는 알앤비 사랑을 비롯해 21 Savage의 뜬금없는 유머 포인트를 확인할 수 있다.
Snitches & Rats
21 Savage는 이번 앨범을 한 편의 영화 같은 작품이라 일컬었다. 실제로 앨범은 트랙과 트랙 간의 사운드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건 물론, Morgan Freeman의 목소리를 수록곡 곳곳에 심어 앨범을 하나로 엮어낸다. 특히 Morgan Freeman의 근엄한 목소리는 'Snitches & Rats'에서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그는 밀고자를 뜻하는 "Snitch"와 그보다 더 심한 배신자를 경멸적으로 칭하는 "Rat"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특히 "Snitch"는 사람이지만, "Rat"은 그냥 쥐에 불과한 거란 그의 내레이션은 힙합 팬들의 마음속에 한 인물을 떠올리게 했지만, 정작 21 Savage는 특정 누군가를 저격한 곡이 아니라 해명했다. 어찌 되었건 21 Savage는 곡에서 자신의 사촌이자 오랜 협업 파트너인 Young Nudy와 함께 배신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언급한다.
Brand New Draco
21 Savage와 Metro Boomin은 각자의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음악가들과 협업해 다채로운 색을 뽐냈지만, 한편으로는 [Savage Mode]만큼의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21 Savage의 직관적인 가사와 차분하고도 조용한 보이스톤의 랩은 808 사운드를 토대로 한 Metro Boomin의 미니멀한 프로덕션과 완벽한 합을 이뤘기 때문이다.
선 공개되어 힙합 팬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던 'Brand New Draco'는 이런 둘의 찰떡궁합을 엿볼 수 있는 트랙이다. 21 Savage는 Metro Boomin 특유의 퇴폐적이고도 어두운 프로덕션 속에서 추임새를 이어 나가며 중독적인 랩을 선보인다. [Savage Mode] 시절의 음악을 기대한 이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 보는 트랙.
Said N Done
Metro Boomin은 원래 어두운 무드의 미니멀한 사운드를 꾸준히 밀어붙였던 프로듀서였지만, 이제는 Drake를 비롯해 James Blake, The Weeknd와 협업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갔다. 21 Savage 역시 마찬가지. 덕분에 [SAVAGE MODE II]는 4년의 세월을 보내며 쌓아 온 Metro Boomin과 21 Savage의 음악적 내공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Said N Done'이 그렇다. Metro Boomin은 Stephanie Mills의 'Touch Me Now'를 샘플링해 트랙에 소울풀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이런 프로덕션 속에서 21 Savage 거리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한다. 이 밖에도 곡의 아웃트로에는 Morgan Freeman의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앨범의 막을 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