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on Feb 03. 2020

Billie Eilish가 휩쓴 2020 그래미

장르 인사이드 #POP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래미어워드입니다만, 이번 그래미는 조금 더 시끄럽게 시작한 것 같습니다. 주최사인 Recording Academy가 그래미 개최 일주일을 앞두고 최초의 여성 CEO인 Deborah Dugan을 5개월 만에 휴직처리 했는데, Dugan이 조직의 성추행 문제와 그래미의 불공정성을 주장하고, 또 Recording Academy를 고소하며 불미스런 이슈를 먼저 알린 것이죠.

 사실이라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만, 그동안의 역사와 전통 때문에라도, 또 변화에의 노력 때문에라도 그래미어워드는 여전히 막강한 권위를 자랑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시상식입니다. Billie Eilish가 본상을 다 싹쓸이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는 2020그래미! 수상 결과는 다 알고 계실 테니, 여기서는 이번 시상식의 주요 포인트 면면을 살펴봅니다.



노력하는 그래미 vs 그래도 보수적인 그래미

매번 비판 받아온 그래미의 고질적 문제점. 바로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에게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념처럼 굳어져왔던 이 흐름이 작년 그래미부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가 본상 부문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 수상하며 일대 파란을 몰고 왔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여성 아티스트이자 최연소 아티스트, Billie Eilish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갔습니다. 물론 "본상 4개 부문을 한 아티스트에게 몰아주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비판요소 역시 있겠습니다만, 그 4개 수상이 모두 "여성"에게, 그리고 최연소 아티스트에게 돌아갔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그래미가 보여준 보수성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수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는 보수적인 시상식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래미 특단의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우선 작년부터 투표인단을 새로 구성했습니다. 이전까지 시상 투표자가 백인, 그 중에서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에 26%를 구성하던 여성 회원을 49%까지 올리고,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회원도 종전 24%에서 51%로 상당부분 확대한 것이죠.


또한 전통적으로 5팀을 선정하던 본상부문 후보작을, 2019년부터는 8팀의 후보를 선정하며 그 규모를 넓히고 있는데요. 2020 그래미 역시 리스트를 한 눈에 담으면 인종간, 성별간 후보를 최대한 배분하려는 주최측의 노력이 보입니다. 작년에 이어, 이번 그래미 역시 주최측의 노력이 엿보인 한 해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스페인 출신의 플라멩코 가수 Rosalia가 역대 최초로 비영어곡인 'Malamente' 공연을 그래미에서 선보였다는 것은 "그래미가 더 이상 보수적인 시상식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선언적인 공연으로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Rosalia는 스페인 전통 장르인 플라멩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평단으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팬들의 최대 관심사인 방탄소년단이 모든 필드에서 후보 누락됐다는 사실은 아직 선도적이지는 못한 그래미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롤링스톤"지는 "그래미가 너무 뒤쳐져있다"고 비판했으며, "포브스"지 역시 "문화적 사각지대를 또 한 번 드러냈다"고 날선 비판을 가한 바 있지요.


이번에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래미 또한 시대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벌써부터 2021 그래미어워드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퍼포먼스에서의 다양성, 그리고 방탄소년단

후보 선정 및 수상 결과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퍼포먼스가 다채로웠고 포용성이 있었으며, 시의적이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메리칸 하드록의 전설 Aerosmith, 마찬가지로 올드스쿨 힙합의 전설인 Run-D.M.C.가 'Walk This Way'를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흑백문화의 조화" 퍼포먼스를 함께 보여준 것, 컨트리 음악계의 구와 신을 대변하는 Tanya Tucker와 Brandi Carlile이 같은 무대를 꾸민 것,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Nipsey Hussle를 기리며 수많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추모무대를 만든 것 등, 역시나 다채로운 무대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그래미에서 대다수 한국 팬들 초미의 관심은, "그래서 방탄소년단 언제 나오는데"였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그래미 큐시트를 찾는 애타는 움직임들이 상당히 많았는데요. 예고대로, 또 팬들의 예상대로 Lil Nas X와의 합동공연에 섰으며, "Seoul Town Road" 열창으로 멋진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물론 단독 퍼포머가 아니어서, 또 다소 짧게 지나가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그들의 무대에는 " 역사상 첫 한국 가수의 그래미 퍼포먼스"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의 성장세와 팬덤의 반응이라면, 곧 메인 퍼포머로 무대에 오를 날도 오지 않을까요?



급작스런 추모무대

그래미 시상식 바로 전날, 급작스런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NBA LA레이커스 영구결번의 주인공, Kobe Bryant가 헬기추락으로 인해 어이없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래미와 출연진들은 Kobe Bryant의 사망 소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국 NBA계의 전설적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상식이 진행되는 스테이플스 센터가 바로 LA 레이커스의 홈구장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겠지만, 그래미는 "제대로" 추모의 메시지를 설파했습니다. 시상식의 사회를 맡은 Alicia Keys는 시상식의 시작을 추도문으로 시작했으며, Lizzo 역시 'Cuz I Love You' 퍼포먼스를 보이기 전 Kobe Bryant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를 더했습니다. 


애초에 Nipsey Hussle을 위한 트리뷰트로 기획되었을 공연 역시 Kobe Bryant를 향한 추모의 메시지를 더하며 의미를 확장했습니다. 급박한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그래미어워드는 "역시 그래미"라는 탄성이 나오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단일 아티스트의 본상 4관왕 싹쓸이

2020 그래미의 주인공은 단연 Billie Eilish였습니다. 앞서도 말했듯, 주요 네 개 부문(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의 상을 모두 싹쓸이했기 때문입니다.


네 개의 본상 부문 수상을 모두 수상하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특히 다른 세 부문이야 능력이 된다면 받을 수 있겠지만, "올해의 신인상"의 경우는 신인급 아티스트에게만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에 때를 놓친다면 도저히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역사상 Billie Eilish 이전에 4개의 본상 부문을 모두 수상한 사례는 1981년 그래미어워드에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Christopher Cross의 데뷔앨범 [Christopher Cross]입니다. 그래미 본상 전부문 수상의 예를 들 때마다 오직 이 앨범만이 유일한 예시로 입에 오르내렸지만, 앞으로는 매년 Billie Eilish의 앨범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계기로 Billie의 주가도 엄청나게 상승할 것으로 보이네요. 소포모어 징크스만 없었으면



Outro

어쩌면 네 개의 본상 부문을 단일 아티스트가 휩쓴 이번 수상 결과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보수적이었던 과거와 비교한다면 지금의 그래미가 꽤나 유연한 시상식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보다 공정한 사회를 외친, 그동안의 사회적 분위기들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음악계 역시 사람들의 깊은 관심이 있어야 보다 건강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 - 어쩌면 2020년의 그래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아닐까요?




그래미 어워드 주요 부문 수상곡 듣기>
매거진의 이전글 스크린으로 찾아온 록 스타, Liam Gallagh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