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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Jul 04. 2022

글래스톤베리, '로 대 웨이드' 판례 성토의 장이 되다

해외 뮤직 트렌드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었습니다. '국가가 여성의 성적 결정권을 간섭할 수 없다'는 판결로 낙태권을 보장한 지 49년 만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 각 주의 자체적 판단하에 낙태권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게 됐는데요. 미국의 50개 주 중 절반 이상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적인 낙태만을 허용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지속 중입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절망에 빠졌던 그 시기에, 영국에서는 글래스톤베리가 열렸습니다. 3년 만에 개최한 오프라인 페스티벌이니만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참이었죠. 이에 본인의 무대에서 분노를 표한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큰 화제를 낳았는데요. 오늘은 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Olivia Rodrigo

데뷔 앨범 [SOUR]로 단숨에 하이틴 스타 계열에 오른 Olivia Rodrigo. 첫 글래스톤베리에서 Z세대다운(?) 패기 있는 무대를 보여줘 화제입니다. Olivia Rodrigo는 팝스타 Lily Allen과 함께 무대에 올라 Lily의 곡 'F**k You'를 선보였습니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녀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여성들을 생각하니 겁이 난다는 말을 덧붙였는데요.
 
뒤이어 이번 사건의 주축이 된 대법관 5명을 호명하며, 이번 무대를 그들에게 바친다고 밝혔습니다. 유쾌한 얼굴로 욕설을 퍼붓는 두 아티스트의 'F**k You' 무대는 단숨에 260만 뷰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무대 이후, Olivia Rodrigo의 팬들은 합법적 임신중단기관인 미국가족계획연맹을 위한 기금 모집을 시작하며 그녀의 뜻에 동참했습니다. 19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소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Olivia Rodrigo와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에게 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Lilly Allen – F**k You

Olivia Rodrigo – good 4 u


Kendrick Lamar

이번 글래스톤베리의 헤드라이너 중 한 명이었던 Kendrick Lamar. 가시 면류관을 쓰고 등장한 그의 무대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퍼포먼스였습니다. 'Savior' 무대를 하던 중, 면류관에서 피가 흘러 그의 의상까지 흠뻑 젖는 연출을 선보였는데요. 예수를 연상케 하는 가시 면류관, 이를 머리에 쓴 흑인 Kendrick Lamar, 흑인 댄서들의 무빙. 이 연출적 요소들만 하더라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죠. (자유로운 해석을 위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무대 중 피범벅이 된 채로 래핑을 하던 Kendrick Lamar는 엔딩에서 'Godspeed for women's rights, They judge you, they judge Christ' (여성 권리에 신의 축복이 있길)를 반복적으로 외치다 마이크를 던지고 퇴장했습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부당함을 드러낸 것인데요. 래퍼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본래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Kendrick Lamar였기에 이번 글래스톤베리에서의 무대가 큰 울림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endrick Lamar - Savior


Billie Eilish

Billie Eilish는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힌 날, 본인의 무대에서 '오늘은 미국의 여성들에게 아주 절망적인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Your Power'를 불렀는데요. 이 음악은 성착취를 당하는 미성년자를 다룬 음악으로, 'Try not to abuse your power' (너의 권력을 남용하지 마)라고 읊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극적인 미디어 시장에 노출되었던 Billie Eilish 본인에 대한 자전적인 곡이기도 하죠.
 
Billie는 현재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성 착취에 대해 비판하고자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본인의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자기 결정권을 박탈하는 현실과 잘 맞물리는 이 곡. Billie Eilish가 왜 이 곡을 무대에서 불렀어야 했는지, 그 의도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Billie Eilish – Your Power


Phoebe Bridgers

인디신의 강자인 Phoebe Bridgers 또한 글래스톤베리 무대에서 'F**k The Supreme Court'를 외쳤습니다. Phoebe Bridgers는 음악산업 내의 학대, 폭력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로도 유명한데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된 날, 자신의 SNS에 본인의 낙태 경험에 대해 밝혀 큰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내게 낙태약을 준 미국가족계획연맹에 방문하는 것은 매우 쉬웠으며, 누구나 다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혀, 많은 이의 공감을 사기도 했습니다.


Phoebe Bridgers – Punisher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늘 전면에 내세웠던 미국이기에 이번 판결이 미국을 1970년대로 후퇴하게 했다는 의견이 압도적입니다. 이번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앞으로 어떤 미국을 만들어낼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고요. 낙태권을 두고 끊임없는 갈등이 빚어지는 가운데, 본인의 무대에서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들이 행보가 인상 깊습니다. 본인의 영향력을 행사해 누군가의 슬픔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아티스트들이야말로, 진정 예술의 가치를 인지하는 자들은 아닐지, 조심스레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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