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뮤직 트렌드
제목을 잘못 본 게 아닙니다. 미국의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Brad Paisley가 2월 24일 발표한 곡의 제목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습니다. 'Same Here (Feat. President Volodymyr Zelenskyy)'
Brad Paisley 'Same Here (Feat. President Volodymyr Zelenskyy)'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재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러시아 군대와의 전쟁을 지휘하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관련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래를 녹음할 만한 여유가 있지는 않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예상할 수 있듯, 젤렌스키 대통령은 직접 노래를 불러서 피처링에 이름을 올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계기로 인해 곡의 주인공 Brad Paisley와 통화를 했고, 이 통화 녹음을 노래에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을 뿐이죠.
1월 25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주택 복구에 관심을 가져줄 유명인들을 최대한 많이 섭외해야 한다'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올리며 그 첫 주자가 Brad Paisley임을 명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문화예술계에 SOS를 요청했고, Brad Paisley가 이에 화답하며 본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곡은 Brad Paisley의 노래로 진행되지만, 후반부가 되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통화 녹음이 등장합니다. Paisley는 젤렌스키에게 "나/우리도 그래(Same Here)"라는 말을 우크라이나 말로 어떻게 부르는지를 묻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딱 싸모(Так само)'라는 우크라이나어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다음 메시지는 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해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아이들, 자유, 우리의 깃발, 우리의 군인들, 우리 국민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보물이지요. 그리고 친구들도요.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우리 삶을 지켜줄 우리 군대가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위해, 우리 부모들을 위해 싸우고 있어요. Так само(=Same Here). 그런 가치관에서 우리 두 나라는 차이가 없어요. 사실은 많은 것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막간에 이야기하자면, 국가 지도자의 목소리가 피처링으로 곡에 남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두 체제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지도자가 내레이션에 함께 참여한 트랙도 있기 때문이죠.
냉전 이후의 희망이 함께해서였을까요?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하고 두 체재의 수장이 참여한 동화음악, '피터와 늑대'는 제 46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어린이 낭송음반 부문 최우수 음반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Same Here (Feat. President Volodymyr Zelenskyy)'가 발표된 2023년 2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일주일 안으로 끝난다던 전쟁이 1년이 넘게 계속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있는 지금, 이 곡의 피처링 아티스트, 가사, 그리고 발매일이 나타내는 지향점은 분명합니다. 평화, 그리고 그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 지원이지요.
프로젝트곡답게, 이 곡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전액 Paisley가 홍보대사로 있는 자선 단체, 'UNITED24'에 전달되어 파괴된 우크라이나 건물들을 재건하고 복원하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하지만 변수도 있습니다. 최근의 미국의 정치외교적 난국 탓에 (=오하이오의 열차 탈선 사고보다 우크라이나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연방정부에 대한 비판이 있는 탓에) 이 곡을 비판하는 입장 역시 양립하고 있는 까닭이지요. 때문에 이 곡은 라디오에서도 쉽게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여 우크라이나와 Brad Paisley 입장에서는 난항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1년이 넘게 계속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튀르키예-시리아에서 예기치 않게 터진 재난으로 국제사회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이는 요즈음입니다. 여기에 쉽지 않은 국제 정세까지 겹친 형국이지만, 폭풍 속의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희망을 찾고, 처절하게 활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