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네가 못태어난 건 할머니 때문이란다.”
현재 출산률이 박살난 이유 중 하나는 2030 세대가 유리 자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어떤 세대보다 본인이 특별하다고 믿었던 세대.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보니 그게 아니란 걸 뼈져리게 느낀다. 그들이 소중히 지키려는 자존감은 유리처럼 박살났다.
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나는 존재만으로 소중한 사람인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팩트로 후드려 팬다. 이상과 현실의 갭 사이에서 끊임 없이 좌절한다. SNS는 이 갭을 확대재생산 한다.
본인 스스로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야 다른 사람을 챙길 여유가 생긴다. 특히 남자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결혼도 출산도 생각하게 된다. 내 한몸 건사 못한다 생각하면 결혼은 먼나라 얘기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그 남자의 현실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중위 소득 정도는 벌어들인다. 문제는 너무 낮은 자존감이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한참 못미치니 자존감이 떨어진다. 한국 사회의 비교 문화가 SNS를 만나면서 보통 사람의 준거점을 너무 높여놨다.
이들을 키운 부모도 문제다. 애를 적게 낳다보니 자식 한명을 너무 특별한 사람처럼 키웠다. 평범한 아이를 특별하다고 가스라이팅 한 결과는 오히려 자존감 바닥 세대를 만들었다. 여기서 시작된 2030의 피해의식은 수저론으로 이어지고, 아이의 행복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도그마로 확장됐다.
자존감은 경험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지, 누가 주입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입된 이상에 현실이 미치지 못할 때 자기혐오만 강화된다. 출산 얘기만 꺼내면 다들 하나같이 ”아이가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답하는 이유다. 행복은 아이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고, 모두가 최고로 키우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