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본질은 정부보증 아닌 가치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공동체 네트워크
지난주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을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투기 대상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경제학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암호화폐의 가치와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절하 했다. 평소 좋아하는 유 작가이지만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글을 쓴다. 특히 블록체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첫번째 애플리케이션인 암호화폐에 대해 변론하겠다.
정부와 제도권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과 미국 주류에서 가르치는 경제학 이론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이 부분에서는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은 신고전학파 정통을 따르는 시카고 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이 외생적 화폐론을 절대시 하며 내생적 화폐론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류 경제학을 배운 한국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생적 화폐론에 따르면 화폐는 필요에 따라 시장 외부에서 시장 내부로 주입하는 것이다. (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것이며 발권력을 통해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는 화폐의 공급이 수요를 조절한다는 논리다. 반면 내생적 화폐론은 수요가 화폐의 공급을 창출한다고 보는 논리이다. 일반적으로 은행 대출에 따른 신용창조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지급준비율이 정해져 있어 한계는 있지만 통화량의 결정은 본질적으로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는 화폐의 본질이 입고다니는 옷에 불과하며 어쩌면 그 옷을 뚫고 나와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업을 할 때 제 1원칙은 수요자를 만족시키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화폐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택시 시스템이 불편해서 우버, 콜버스가 생겼다. 전자는 공급자 위주의 서비스고 후자는 수요자 위주의 서비스다.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고 정부 규제를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는 것을 막고 있는 택시마저도 처음에는 시장의 수요로부터 탄생했다. 내가 내생적 화폐론을 믿는 이유다. 주류 경제학이 외생적 화폐 이론에 치우쳐 발전한 것은 수리모델을 적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수리모델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물론 그 예측은 대부분 빗나가지만 말이다.)
대학생이던 6년 전 경제학설사 수업 시간이었다. 일상에서 쓰이는 내생적 화폐가 있는지 궁금했던 나는 교수님께 예를 들어 달라고 질문했다. 교수님께서는 싸이월드 도토리와 티머니를 말씀하셨다. 나는 그 두가지가 사실상 본원통화에 기반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수님은 다른 예를 들지 못하셨다. 현존하는 내생적 화폐를 찾지 못한 나는 기자가 된 2013년 취재를 하다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내생적 화폐 이론을 증명할 현존체를 발견한 것. 뒷골이 찌릿했다. 그 자리에서 흥분한 상태로 사수 선배에게 이게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기자를 그만두기 전까지 신문사 내부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암호화폐 기사를 주구장창 썼던 계기다.
과거에 조개껍데기나 현물화폐가 통용됐던 것은 화폐가 외생적으로 주입된 것이 아닌 시장의 수요에 따라 내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화폐의 본질은 누군가의 보증이 아니라 그것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며 그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다. 믿음은 연역적(정부 보증)으로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귀납적으로 생긴다. 돈의 가치는 우리가 어렸을 때 슈퍼에서 100원을 내고 사탕을 사먹으면서부터 익혔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믿게 된 것이다.
암호화폐는 이제 시작이며 수많은 방해와 악재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지키고 있다. 암호화폐의 비전과 블록체인 기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의 네트워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초기 성장단계여서 가치의 등락이 크지만 법화와 대등할 정도로 저변이 넓어진다면 가치의 등락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