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목욕하다 떠오른 단상 (뭄바이 / 2014.07.03)
1. 대학 시절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인간 생명의 가치가 과연 무한한가'에 대한 의문을 단순히 수요공급 곡선으로 풀어보려 했다. 지구 상의 유한한 산소의 공급을 생각했을 때 수요자인 인간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가정을 도입할 경우 산소의 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결국 산소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면서 인간 생명의 가격 또한 연계적으로 도출된다. 가치를 가격으로 판단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굳이 이런 상상을 하지 않아도 현실에서 인간의 생명은 그리 값지지 못하다. 인신매매를 봐도 그렇고 청부살인을 봐도 그렇다.
2. 노동가치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교환가치(가격)와 투하노동가치가 불일치하는 것을 관찰하고 곤혹스러워 했다. 결국 가치는 가격과 동일시 될 수 없다. 비단 사람마다 다른 주관적인 가치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주관적인 가치판단도 시장에서 특정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로 계량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가치 판단을 하게 만드는 제도적 제한성에 문제가 있다. 바로 재산권이 보호되고 있는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양적 차이다.
3. 당시 미시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찾아갔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주류 경제학파인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내게 일러주셨다. 바로 경제주체들의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당장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암환자는 병원치료에 대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지불의사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지불능력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마음같아서는 수백억원을 내고서라도 살고 싶지만 단돈 1000만원이 없어 퇴원을 결정하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술값에 불과한 그 돈 때문에! 바로 이 지점에서 공리주의와 시장주의의 괴리가 일어난다.
4.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 공리주의 철학에 기반한 신고전학파의 효시 - 한계효용학파. 영국의 제본스, 오스트리아의 멩거, 프랑스의 왈라스가 저마다 한계효용에 기반한 경제 모델을 제시했다. 특히 왈라스의 수리모델은 스위스의 로잔느학파를 거쳐 일반균형이론으로 정립됐다. 문제는 일반균형이 완성된다 하더래도 지불능력과 지불의사 사이의 간극 때문에 공리주의의 목표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차선책으로서 시장주의가 그나마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사회 구성원의 지불의사와 지불능력의 간극이 넓어질수록 힘을 잃는다. 거시적으로는 빈부격차의 심화가 이에 해당하며 미시적으로는 명품 선호현상이 문제가 된다.
5. 위와 비슷하나 또 다른 문제로 화폐 자체의 한계효용 체감의 문제가 있다. 화폐 한단위를 추가로 갖게 될 때 느끼는 효용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땡전 한푼 없는 거지에게 만원은 대단히 큰 돈이고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쾌감도 크다. 반면 1조원대 거부에게 만원은 있으나마나 한 돈이다. 하지만 신고전학파에서는 화폐의 한계효용에 대해 눈감아 버린다. 화폐는 중립적인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1원은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이론의 정립성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다. 신고전학파 경제모델의 근간을 흔드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서양 속담에 '눈은 배보다 크다'라는 속담이 있다. 먹고싶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물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쾌락은 한정돼 있다는 뜻이다. 돈이 너무 많아 어차피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바에야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낫지 않은가. 부자의 작은 희생이 가난한 자의 큰 행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적어도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위와 같은 이유로 정당화된다.
6.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다시 한번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누가 어떠한 권리로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말인가.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에 내던져져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혹자는 모두에게 같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유전자가 같은 클론들이 동일한 좌표상에 겹겹이 서있지 않는한 말이다.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갈 것이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부자의 돈을 세금이라는 명목과 합법적인 물리력으로 가져가는 주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생명을 인간 스스로 빼앗는 사형제도와 비슷한 종류의 철학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 관료들의 부패와 행정조직의 비효율성, 재분배를 명분으로 가져간 세금을 소수의 결정권자들이 제멋대로 집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가 반대할 것이다.
7. 나는 적어도 사회제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짜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리주의자다. 그리고 이 글은 공리주의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에 다가가기 위해 쓰여지고 있다. 공리주의의 단점들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이 많겠으나 여기서는 일일이 논의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 시장주의가 공리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 왔지만 금융자본주의와 고도의 기술사회에서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자본주의의 한계를, 올초 페이스북이 20조원을 들여 인수한 왓츠앱은 초기술사회에 들어선 자본주의의 기형성을 보여준다. 불과 50명의 직원이 몇년만에 20조원을 만들어낸 사건. 누구에게는 영웅신화가 될 수 있겠으나 우리가 극단적인 빈부격차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빈부격차가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행복도는 낮아진다.
8.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부의 재분배는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거치는 재분배는 반발을 불러온다. 많은 시장주의자들은 또다른 철학적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루소 등의 계몽주의 철학에서 나온 자연적 재산권 개념도 한몫 한다. 자기가 번 것은 자기 것이라는 믿음. 시장주의는 재산권을 신성불가침의 가치로 격상시켰다. 재산을 침해하는 것은 자유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 재산이 '자유'라는 강력한 가치와 융합하면서 시장주의는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또 그만큼 강력해졌다.
9. 그렇다면 이 재분배를 인간이 아닌 자연이 대신해준다면 어떨까? 인간은 비가 오고 눈이 온다고 해서 시위를 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재분배 과정도 인간이 중간과정에 개입할 수 없는 자연적인 제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정부가 계좌추적까지 해가며 추징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말이다. 소득을 신고할 필요도 없으며 시스템은 소득과 자산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적절한 재분배 기여금을 떼어다 분배한다. 비트코인과 같은 알고리즘 시스템을 계량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모든 화폐는 전자화돼 있으며 부의 재분배는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공동체가 택한 알고리즘 안에서 계절 바뀌듯 실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10. 비트코인은 단순한 가상화폐가 아니다. 오히려 계약관계를 다루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담길 개방형 플랫폼이다. 비트코인에 특정 인증서를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집문서 땅문서 주식 채권 등 수많은 증서를 전자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의 비트코인 시스템은 세금을 회피하고 자중손실을 최소화하는 중립적인 화폐로서의 길을 추구한다. 문제는 부의 재분배를 경시하는 화폐 시스템이 얼마나 지속가능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재분배를 통해 발생하는 자중손실과 재분배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 전체의 잠재적 효용손실의 크기를 비교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나는 부의 재분배가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이 각국 정부들과 마찰을 빚는 원인의 일부도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11. 나의 제안은 블록체인 등 비트코인의 기술적 장점 몇가지를 취사선택한 뒤 그 위에 자동화된 재분배 시스템을 얹는 것이다. 새로운 가상화폐 알고리즘을 짜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춘다. 화폐를 발행하고 통제하는 중앙은행도, 세금을 걷어 재분배하는 정부의 기능도 더이상 필요치 않도록 말이다. 물론 이같은 가상화폐 시스템은 비트코인처럼 세금없는 시스템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방안은 법적-제도적 합의다. 부의 재분배 기능이 들어있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적 합의 과정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특정 공동체의 보증을 얻는다면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다. 중기적으로 비트코인의 최대 문제는 화폐가치를 보증해줄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공유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법정화폐에 적응한 현대인은 이 낯선 존재에 대해 쉽사리 믿음을 갖지 못한다. 비트코인의 아들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는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