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허용한 ‘번호판 폭탄 돌리기’가 문제의 원인
최근 타다를 둘러싸고 다양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결론이 “차량공유 기업이 번호판을 사줘라”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스타트업의 차량공유 시장 진입을 막는 별로 좋지 않은 아이디어입니다. 1000대는 있어야 서울에서 그나마 10분 내 도착하는 서비스의 시도가 가능한데 초기 번호판 구매로만 700억~1000억이 들어갑니다.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규모죠. 결국 일부 대기업을 위한 진입장벽만 만들어 주는 꼴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정부가 앞장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모든 문제의 시작은 1960년대 택시면허를 양도 양수할 수 있게 만든 정부의 비정상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의사 면허, 변호사 면허 등 거의 모든 면허는 매매가 불법입니다. 정부의 선심성 정책으로 처음 면허 받은 사람들은 이익 봤지만 그 후 돈을 주고 면허를 산 사람들부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습니다. 개인택시 시작하려면 최대 1억원을 내고 번호판을 사야 했고 그 번호판 값이 퇴직금 역할을 하게 됐으니 각종 차량공유 기업의 등장으로 인한 번호판 가격 하락은 극렬한 시위가 일어나는 동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은 폰지사기의 구조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 끝은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모든 피해를 뒤집어 쓰는 것입니다. 애초에 면허를 사고 파는 제도가 없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사님들도 차량공유 서비스 회사로 소속을 옮기면 그만인 문제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수많은 기사님이 우버 기사로 전직했습니다. 우버 수수료는 기존 회사에 내야 했던 사납금보다 적을 뿐 아니라 일하는 시간도 자유롭습니다. 우버로 전직한 택시 기사의 수익도 대폭 늘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은 택시 번호판 권리금 때문에 모빌리티 관련 모든 논의가 공회전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애초에 정부가 잘못 했으니 일단 정부가 책임의 상당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모빌리티 기업들이 매출의 일정 비율을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고통 받는 분들을 도울 기금으로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법적 강제 근거가 없지만 자율규약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 진입의 단계에서 번호판을 사야 하는 선불 방식이 아니라 시장의 파이를 가져간 만큼 내는 후불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혁신이 작은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로부터 나옵니다. 처음부터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방식으로 진입규제를 만들어 놓는다면 또 다른 택시 카르텔 만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앞으로 새로운 기술에 의해 전통산업 종사자가 밀려나는 일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그리고 폭넓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런 진통을 반복해야 할까요? 이제 언 발에 오줌누기식 미봉책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빠른 기술 변동의 충격파가 개인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완충하는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단은 정부, 택시업계, 라이드쉐어링 업체 뿐 아니라 소비자를 포함하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모빌리티 산업에서의 연착륙 방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만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그 비용을 전가하면 안됩니다. 로봇세 논의가 대표적인데 그런 방식은 징벌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애초에 사회 구성원들은 혁신 시도 자체를 줄이게 됩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것은 개인 입장에서 혁신 시도의 비용이 그로 인한 편익보다 큰 경제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기업에 벌금을 내게 할 것이 아니라 돈 많이 버는 기업에 공정한 세금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은 다시 변화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안전망에 투자돼야 합니다. 혁신 기업이 돈 많이 벌어 세금도 많이 낸다면 결국 선순환의 시스템이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