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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Mar 05. 2016

전 남친들이 결혼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30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난 겨울은 너무 추웠다. 축농증에 기관지염까지 있어서 차가운 바람이 끔찍하기도 했지만 마음에도 한차례의 어마어마한 한파가 지나갔다.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촉촉한 봄비를 바라보며 옛날 이야기인듯 쿨하게(?)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잠을 못잘 정도였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5년전 만났던 남자애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감정이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생각도 없고 미련이 남은것도 아니었지만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옛 사랑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던 기억들에 '기간 만료 폐기' 라고 쓰인 빨간 도장들이 쾅쾅 찍어지는 기분이었다. 가뜩이나 결혼할 상대가 없어  심난한 마음으로 쓰라린 한파가 정신없이 몰아닥치는 그때,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행했던 수많은 정신승리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치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연락을 하며 나의 멘탈을 붕괴시키기 위해 짜기라도 한듯, 1년전 헤어진 그 남자도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가장 최근까지 나와 만나던 사람이었기에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 나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다 펑펑 울며 주저 앉아 버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서럽게 울었다. 정신승리를 하고 싶어서 그 남자의 단점과 나빴던 점을 떠올리려고 애쓰다가, 내가 그 남자를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것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기간 만료 폐기' 도장을 찍어 파쇄기에 넣어버리기에는 예쁜 기억과 감정들이 너무 많았지만 나는 한차례의 울음으로 기꺼이 파쇄기에 그것들을 넣는 작업을 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엉뚱하게도 그때서야 나는 내가 이십대를 떠나왔으며, 삼십대를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낭만적인 연애를 하고 헤어져도 그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다시 만날 수도 있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이십대는 이제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하고, 이뤄지지 못한 로맨스들도 쾅쾅 도장이 찍혀 폐기처분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른이 된 건 작년이었지만, 스무살에도 그랬던 것처럼 떠나온 날들을 잊지 못하고 기웃거리느라 새로운 날들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맞았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떠나보냄을 당하면서 그렇게 두렵고 설레고 타협하고 버텨내고 방황하던 이십대를 보내고 참 애매한 나이인 삼십대를 맞는 거였다.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하는 기대를 가차없이 거절하며 세상은 나를 삼십대월드에 강제로 밀어넣었다. 나는 엉엉 울면서 익숙하고 안락한 이십대의 세상에서 쫒겨나 난생 처음 보는 삼십대의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서른 하나를 맞았다. 강제로 마음정리를 당하며 지난 날들을 비우고 다시 시작하는 진짜 삼십대를. 일과 결혼과 육아와 내집 마련, 그리고 자산구축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받아든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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