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계절이다. 금세 먹구름이 깔렸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말짱해진다. 해가 나면 땅이 마르기 십상이어서 언제 비가 왔고 언제 해가 났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대개는 호우 주의보급이 아니면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하지만 퇴근길에 날개가 다 자라지도 않은 작은 참새새끼가, 딱딱한 바닥에 혼자 떨어져 있던 그날은 그럴수가 없었다. 우산을 써야할 정도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참새 둥지는 도무지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계속 걸어다니는 길에 그 녀석이 혼자 있었으니까. 어디선가 새끼 새를 봐도 옆에 부모가 챙기고 있으니 건들지 말라는 말을 본적이 있었다. 근처 나무에 어미인지 뭔지모를 참새가 앉아 있었기에 고민이 됐다. 어쩌지, 어째야 하지. 금세 비가 그친다면 두고 가는게 맞는건가? 하지만 그러다 추위로 얼어 죽으면? 지금은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지만 비가 흥건한 잔디쪽으로 가버린다면? 아니 그보다 고양이가 물어갈지도 모르잖아.
아주 예전에 비가 오는 날, 새끼 새들을 가만히 컵라면 통에 올려주고 돌아왔다가 다음에 가보니 모두 없어졌던 기억이 났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새끼들을 버린것 같았다. 그 기억이 떠올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아직 털도 엉성한 참새새끼를 손에 조심히 쥐었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고, 녀석이 잠시 반항했지만 그정도 저항은 쉽게 누를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생각했는지 그 녀석은 조용히 집까지 같이 왔다.
인터넷에 찾아본대로 노른자를 물에 타 주사기로 줘봤지만 먹지 않았다. 억지로 물이나 먹이를 먹이지 말라는 쳇GPT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고, 따뜻하고 어두운 곳에 넣어두었다. 나는 계속 창문 밖의 날씨를 관찰하며 이 녀석을 다시 어미있는 곳으로 갖다 놓아야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뒤져봐도, 쳇GPT에 물어봐도 일단은 데리고 있다가 야생구조보호센터(?)에 보내는게 최선이라고 했다. 나는 이 녀석이 밤사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일단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다행히 녀석은 멀쩡했다. 아침부터 짹짹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창문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줄 알았는데 다시 들어보니 욕실에 곱게 모셔두었던 녀석이었다. 여전히 먹이는 먹지 않기에 바로 야생구조보호센터로 연락했고 담당하시는 분이 바로 달려오셨다. 어쩌면 이 작은 생명을 책임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은, 녀석을 담은 박스를 아저씨에게 건네며 깨끗이 날아가버렸다. 전문가들이니 잘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마음. 그리고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속 부담이 다소나마 덜어졌다. 지금도 살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그날 구해온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체온이 떨어진채 어두운 곳에서 혼자 죽어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마도.
2.
회사 인사이동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는 시간. 모두 좋은 사람들만 우리팀으로 왔다. 사람이 바뀌니 팀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조용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활기찬 분위기가 되니 나도 할말이 많아진다.
3.
여름이라 시원한 음료수를 많이 먹고 있다. 얼음컵은 적은 금액으로 큰 만족을 주는 효자템. 더운 여름엔 이거 하나면 무서울게 없다. 디카페인 커피를 담아 먹어도, 우유를 넣어 마셔도, 비타민C 음료를 담아 마셔도 다 맛있다. 차를 뜨겁게 우려낸 뒤 얼음과 함께 마셔도 시원한 냉차가 된다.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만, 너무 자주 마시면 반드시 탈이 날것 같다.
4.
남편이 내가 사는 곳으로, 4시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주말 부부인 우리는 2주에 한번꼴로 만나지만 이번에는 텀이 길었다. 한달만에 보는 남편은 변한게 없어서, 그래서 좋았다.
이제 겨우 결혼한지 세달째라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육아휴직을 쓰던가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도 아이가 생겼을때 이야기다. 부부는 같이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안일한 마음도 든다. 우리는 일단 올해까지는 이 생활을 유지하기로 했다. 남편은 내년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한다. 조바심 없이, 늘 마음이 안정돼 있다. 그에 비해 내 마음은 흩날리는 깃발처럼 나부낀다.
5.
요즘 일본에 관심이 많다. 일본어를 배우는 탓도 있을 것이다. 우연히 집어든 책이 꽤 마음에 들어서 주말 내내 읽어내려갔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기쁨도 넉넉한 책. 알고보니 이책은 시리즈여서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 '지극히 사적인 네팔'처럼 다른 나라 버전도 나와 있었다. 누가 기획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기획이라 생각해서 다른 책도 읽어볼 요량이다. 다른 나라를 알아가는 즐거움은 꽤 달콤한 지적 유희다. 그래서 여행을하고,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거겠지. 이제 더이상 어린나이가 아닌데 아직도 알고 싶은게 많아서 다행이다. 바라는게 있을때마다 싹싹 핥아서 다 해버려야겠다. 더 나이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