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주 국립박물관을 제외하고는 거의 황리단길에서 먹고 걷고 보기만 했던 나는, 처음엔 그저 그랬던 황리단길에 맛집이 많다는걸 알게되며 평가가 달라졌다. 경주와 왕릉을 테마로 하거나,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특색있는 음식을 파는 맛집들이 많았다. 그 중, 예전에 한옥마을에서 먹고 다시 먹어볼 기회가 없었던 오징어튀김을 발견하고 14,000원이라는 비싼 값에도 얼른 결제를 하고 기다렸다.
'맛이 없어도 괜찮아, 그냥 먹어보는거야.'
추억의 맛을 기다리며, 실망할까 미리 혼자 중얼거렸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오징어튀김을 받아 들었을때, 비주얼이 워낙 별로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입 베어 문 순간,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렇지! 바로 이맛이다. 7년 전 전주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가게 안내문을 읽어보니 '오짱'이라는 브랜드의 오징어 튀김은 전주 한옥마을과 이곳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한번 더 사먹을 정도였다. 비싸긴 하지만 또 먹고 싶다. 언제든 다시 14,000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2.
무거운 짐을 들고 숙소에 체크인하니, 아주 새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큼지막한 방에 한면을 가득 채울기세로 넓따란 TV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은은하게 조명을 켜고는 목욕하고 누워서 유튜브를 틀었다. 20대때 들었던 노래를 듣기도 하고, 최근 노래중에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도 했다.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행온 술렁이는 마음에, 노래까지 감성적으로 들으니 귀이개로 조심스럽게 고막 가까이 귀를 파듯, 마음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무장해제 된채로, 잠들기 전까지 계속 노래를 들으며 심장이 아프도록 감성에 취했다. 감성에 취하는건, 뭐 사랑에 빠지는 만큼은 아니지만 술 못지 않게 다음달 숙취에 시달린다. 뭐든 취하면 그 만큼의 댓가가 따르는 모양이다.
3.
황리단길이 마음에 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수플레 케이크를 다루는 곳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수플레 케이크를 파는 곳이 없으므로, 나는 경주에 머무르는 3일동안 수플레 케이크를 두번이나 먹었다. 혈당이 오르던 말던, 가격이 비싸던 말던 그런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최소한 한달정도는 못먹을지도 몰랐다. 수플레 케이크는 금방 만들어 지지 않아서 꽤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런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한번은 생크림과 메이플 시럽을 듬뿍 찍어서, 또 한번은 딸기 수플레 케이크로 먹었다. 둘다 만족스러웠다.
3.
나는 여행을 가면 보통 우울해지곤 하는데, 아마 낯선곳에서 낯선 나를 발견하는게 어색해서 인것 같다. 실은 경주 여행 첫날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했다. 날씨 때문인가 싶었지만, 꼭 그런것도 아닌것 같았다. 낯선 사람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나는 경주와 낯을 가리며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토록 바라던 마지막날, 나는 무거운 짐을 주워들고 차를 얻어탈 요량으로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시간은 더 걸릴것 같아 기다리면서 뭐라도 먹으려는 마음을 먹은 그때, 차를 마시던 카페 바로 앞에 파란리본이 많이 붙여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보였다. 검색해보니 평이 꽤 좋아서 고민하다가 들어갔다.
내부 풍경이 꽤나 잘 정돈된 음식점이었다. 점심시간이 아니었기에 자리는 넉넉했다. 여행가면 먹고 싶은것을 다 먹어보자는 주의라 파스타 하나와 샐러드 하나를 주문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아서 일까? 내 예상보다 훨씬 맛있어서 깜짝 놀라며 하나하나 포크로 콕콕 찍어 먹었다. 소금맛이 느껴지는 감칠맛이었는데, 그 소금맛이 기분좋은 소금맛이라 좋았다. 근 몇년간 먹어본, 아니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에 가장 맛있었다. 샐러드도 적당히 잘 구워진 닭에 발린 소금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샐러드에 버무려진 소스도 간이 딱 맞았다. 더할것도, 뺄것도 없는 마음에 쏙드는 레스토랑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제야 경주에게 마음의 빗장을 풀고, 화해하기로(싸운적 없음)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