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조개찜과 해물튀전
내가 선택한 곳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가게되는 식당은 대개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내 취향이 반영된 식당이 아닐테니까. 그러다 우연찮게 맛집을 발견하면 그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다음에 또 와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이렇게 또 글을 남긴다.
회사돈으로 먹는 점심이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보통의 관광지에서 느끼는 '바가지'가 없어서일지도. 영덕은 대게를 먹으러 왔다가 어긋난 상술에 불쾌하며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나는 강구항 근처의 대게거리는 가지 않고, 간다고 해도 건어물만 사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왔다. 강구항에서 꽤 먼 식당. 평소에 자주 먹는 해물칼국수와 뭐 그리 다를까 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우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을 예약한 직장동료가 조개찜도 같이 먹는다고 하자 나도 모르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조개찜이라니.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사실 작년말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조개찜을 한번은 먹으리라 결심했던 터였다. 내륙에 사는 나는 집 근처 조개구이집을 눈독들였지만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 먹으리라는 소망(?)이 여기서 이뤄질 줄은 몰랐던 거다.
조개찜 냄비의 뚜껑을 여는 순간, 따끈따끈한 열기와 함께 굴, 가리비, 전복, 백합 등등이 한눈에 보였다. 잘 먹지 못하는 석화를 들고는 안에 든 통통한 굴을 젓가락으로 싹 바른다. 초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니 역시나 맛있다. 통통하게 쪄진 오징어도 가위로 잘라 배붆래서 먹는다. 빈껍데기를 놓는 그릇이 순식간에 채워진다.
튀김도, 전도 아닌 그 중간 정도의 튀전(?)이라는 음식도 나왔다. 중간중간 해산물이 쏙쏙 박혀 있는데 바삭바삭해서 맛있게 먹었다. 배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거의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메인메뉴인 해물칼국수는 우리가 흔히 먹던 칼국수 면 사이사이 해물이 들어간게 아니었다. 이 큰 해물 냄비(안에는 백합과 홍합이 잔뜩 깔려 있다)다 먹고 그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어 끓여먹는 방식이다. 나야 칼국수 자체를 워낙에 좋아하니 상관없지만, 칼국수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사람도 이 냄비를 보면 만족할것 같았다. 양이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도 조개류라 그런지 그럭저럭 다 먹게 됐다. 남은 국물에 끓여먹은 칼국수도 꽤 만족스러웠다. 보통은 칼국수에 조미료를 넣는데 여기는 조미료 맛은 거의 나지 않는것 같았고 바다의 짠맛이 좀 더 강했다. 해산물 자체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있어 시원했다.
먹는 내내 창밖으로는 영덕 바다가 보였다. 영덕 바다는 진한 파랑색이다. 제주바다가 에메랄드빛이 강하고, 서해바다가 옅은 느낌이라면 동해는 정말 강렬한 색감의 파랑이다. 물을 떠서 가져오면 진한 파랑이 물병 안에서 출렁거릴것만 같다. 해풍을 그대로 받고 있는 소나무가 풍경과 잘 어울렸다. 바다로 날아가는 갈매기들,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어선이 여기가 정말 바닷가라는 느낌을 더해주었다.
이날은 영덕 전통시장 개장식이 있었는데, 그래서 이런저런 행사도 많이 했다. 시식해 본것중에 맘에 든 논알콜 맥주. 맛이 깔끔하고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 난다. 가격이 지금 3500원이랬나, 그정도면 사 먹을것 같긴 한데 더 올린다고 들었던것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다. 기회가 되면 또 먹고 싶다. 블루시티라는 슬로건이 딱 맞게 잘 어울렸던 영덕. 시장에서 보이는 해산물도 정말 싱싱해보였다. 다만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들이라 언제까지 이 모습이 유지될지 잘 모르겠다. 인구가 3만 2천정도인데, 적당한것 같으면서도 여기서 더 적어지면 아쉽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