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근대의 본질적 심상
알파고의 여진이 계속 남아 있다. 인공 지능이 이런 속도로 발달한다면 인간의 미래는 암울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외과 수술도 하고 자동차 운전도 하는 인공지능에 이어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인공 지능이 일상화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한다. 계속 이런 주장을 듣다 보면 정말 인간의 미래가 불안해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늘 불안해왔다. 이런 현상은 과학 기술이 계속 발달하고 있는 근대의 본질적 심상이다. 근대는 순환론적인 전근대적 시간관을 버리고 출발했다. 과학 기술의 도움으로 직진으로만 전진하는 미래행 기차에 올라타 질주하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는 어느 정도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내 그 속도감에 취해 두려움보다는 짜릿함에 정신없었다.
그러다가 가끔 불안해질 때가 있다. 미래행 기차가 너무 빨리 달린다고 느낄 때다. 과학 기술이 너무 급속도로 발달해서 예측이 안된다고 느껴질 때다. 예측이 안 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측이 안된다는 것은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근대인의 기본 속성인 합리적 사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 아니다. ‘인간 복제’ 논란도 그 한 사례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을 실험실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미래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껴왔다. 그리고 인공 지능과 인간 복제에 이어 또 다른 두려운 어떤 것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고 이전보다 더 큰 두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다. 계속 그래 왔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지면 그 속도감을 적당히 즐긴다.
미래가 두려운 것은 근대적 속성이다. 신은 죽었고 종말도 사라졌다. 전근대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직진이다. 가끔 미래가 희망적으로 보일 때가 있지만 잠시일 뿐이다. 우리는 늘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다. 그 불안함을 잊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소비 행위다. 특히 그 소비재가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물이고 충분히 제어 가능할 때 근대인은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행복한 꿈을 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