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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pr 25. 2016

어느 노철학자가 눈물로 쓴 사모곡

사모곡 / 윤병태 지음

어느 노철학자가 눈물로 쓴 사모곡


사모곡, 영혼이 있다면 우리 다시 한 번 더 / 윤병태 지음


수컷들은 어쩔 수 없다. 그 품에서 자라 다시 그 품으로 돌아가기 만을 바란다. 그곳이 천국이고 극락이다. 잠시 다른 품에 안겨보기도 하지만 이내 돌아선다. 그 품을 찾아 평생 방황하고 꿈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찾는다. 다시 안기는 순간을 기다리며 우주적 고독을 견뎌낸다.


그냥 무심하게 읽으면 된다. 특별히 어느 시가 좋다 할 수 없다. 시마다 각기 다른 언어로 포장되었지만 결국 다 어머니고 어머니의 품이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바람이고 욕망이다. 시인은 말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이에 대한 단순 명료한 답은 형이상학적 또는 철학적 논증을 요구하지 않는 ‘어머니’라는 말 하나면 족하다. - 서문에서  


근대 서양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오랜 공부의 끝이 ‘어머니’다. 어머니의 의미를 내면화하고 자기화하는 순간에 수컷으로서, 인간으로서, 철학자로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발견한다. 잊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그때 시가 나오고 공부가 완성된다.


그렇게 가시려고요?

그렇게 가신다고요?

아니 안 돼요

어찌 그리 훌쩍 가시려나요

그렇게 가시면 안 돼요

( 시, 그렇게 가시려고요?,  일부)


이별할 때, 다시 그 품에 갈 수 없을 때 비로소 눈물이 나고 애통하기 시작한다. 발버둥 치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승의 시간들, 떨어져 가는 체온,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을 때 비로소 부재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1405동 6층 오른쪽 막다른 구석 집

내가 단 자물쇠

내가 붙인 장식 그대로인데

거기 살던 작은 노인 어디 갔는가

(시, 1405동 608호엔 더 이상 노파는 살지 않는다, 일부)


공허하다. 단지  여러 흔적 들 만 남아있다. 이제 나는 돌아갈 품이 없다. 그 품이 있던 공간만 있다. 몇 벌의 옷, 낡은 신발들, 부엌에 남아 있는 그릇과 수저들 그리고 누워계시던 이부자리. 다 그대로인데 어디 가셨는가. 그 품은 어디 갔는가


어머니의 영혼이 아니라

어머니의 환영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머니 육신을 부활로 돌려다오

(시, 육신의 부활로 돌려다오, 일부)


돌려달라고, 내가 보내지 않았으니 돌려달라고 외친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영혼이 아니라 육체를 돌려달라고 외친다. 내가 필요한 것은 그 품이다. 젖가슴이다. 쭈글쭈글한 젖가슴이다.  위로는 영혼이 아니라 육체로부터 받는다.


장대비로 밤새

소리 내 창문 두드리며

유리창 타고 빗물 하염없이 흐르거든

자장가 부르며 네 모습 쳐다보던 어미가

미련 때문에

그리움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렇게 온 줄 알아라

(시, 그리움 때문에, 일부)


반복되는 외침에도 어머니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외침과 부재의 반복이 거듭되다가 멈춘 그 찰나에 어머니는 도처에 있고 비로소 나는 어머니를 찾으러 떠난다. 기다리지 않고 우주적 시간으로 떠난다. 사랑과 그리움을 갖고 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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