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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ug 06. 2016

호모가 되지 못한 사피언스에게 보내는 경고

<사피언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대부분 미래예측 서적들의 일반적 운명처럼 이 책 역시 조만간 세인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질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렇다고 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출간 후 나타났던 그 폭발적 열기를 감안하면 이미 잊혔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그리 오래갈만한 책이 아니었다. 책의 내용에 비하면 과도한 대접을 받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팽배한 시대에 멀리 이스라엘에서 지성으로 무장한 세련된 샤먼이 나타나 깔끔하게 분석하고 그럴듯하게 내린 처방전에 여러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 효과는 점집을 나서기 전 이미 약발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효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효험은 원하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법이다.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은 돈 많이 드는 푸닥거리는 못해도 저렴한 부적이라도 하나 있어야 그나마 맘이 놓인다. 부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발 하라리의 신전으로 안내하는 한국 지식인들의 유혹이 너무 그럴듯해 보였다. 그에게 가면 미래에 대한 솔루션 하나 정도는 최소 얻을 수 있다는 안내 멘트에 여러 사람들이 호응했고 그 긴 잠언집을 구매했고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사람들에게는 분명 효험이 있었다. 위로를 받았다. 이 긴 책을 다 읽었다는 그 자위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대부분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사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글 솜씨 좋은 박학한 역사학자답게 수 천년 역사를 이야기식으로 잘 정리했다. 에피소드도 적절히 배치해서 읽기도 편하다. 세계사 개론 교과서로 사용해도 좋을 책이다.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 정리한 다음 저자는 나름 결론을 내린다. 이긴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시 호모로 돌아가는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호모 사피엔스’에서 중요한 것은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다. 사피엔스가 저지른 그 많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이게 하라리의 주장이다. 


하라리의 주장을 요약한 한 문장이 책에 나와 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P 124”. 이 문장 하나로 하라리는 자신의 생각을 짧고 강렬하게 드러낸다. 수많은 문장 중 언더라인 치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이다. 하라리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모든 말이 이 문장 하나에 녹아있다. 짧게 설명하면 이렇다. 농업혁명 이후 사회, 계급, 국가, 화폐가 형성되고 운용되기 시작됐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지배, 자연환경 파괴, 욕망 충족을 위한 끝없는 소비가 계속 이어졌다.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은 그 욕망 충족을 위한 도구로 등장했고 우리를 파괴로 이끄는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미래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게 되었다. 지금처럼 시간이 흐르면 미래는 아마겟돈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출판사 선전문구와 달리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구약성서 예언서들의 전통에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현대판 예언서다. 이 책에서 미래는 데코레이션으로만 존재한다. 이미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께 또는 생태질서에 또는 서로서로에게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회복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계속해서 범죄 모의만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또 다른 ‘사피엔스’가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를멸종시킬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회개하고 다시 초대 교회로, 농경사회 이전으로, 최초 생태계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라리의 입을 통해 야훼가 말씀하고 계신다. 


앞날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적이 아니라 불안한 이유에 대한 분명한 원인 분석이다. 하라리는 수백 장에 걸쳐 그 불안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원인 분석과 그에 따른 합리적, 사회적 처방보다는 감정적, 개인적 치료를 원한다. 안타깝지만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도무지 출구가 안 보이는 우리 사회의 현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우리의 의지 일부분은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호모다. 우리 모두 호모로 돌아가야 한다. 하라리가 예언서 마지막 장에서 통곡하고 있다. 


“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p 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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