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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Aug 05. 2016

이런 사상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


좋은 책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는 저자의 진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구성의 치밀함이다. 이런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운이 정말 좋아야 한다. 특히 점점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있는 독서가들에게 좋은 책을 만날 기회란 자주 있지 않다. 맛이 없거나 영양가가 없는 책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읽는 내내 계속 엑스타시에 빠져 있었다. 진수성찬을 매일매일 먹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저자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 헤겔, 칸트, 루소, 홉스, 프로이트, 베버, 프루동, 포이어바흐, 리카도, 아담 스미스, 레비-스트로스, 폴라니, 브로델, 사미르 아민, 월러스틴, 네그리와 하트 라는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이용해서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음식을 만들었다. 이 음식은 가라타니 고진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각각의 재료들을 충분히 연구/분석하고 그 진액만을 뽑아 간결하게 만들었다. 쓸데없는 데코레이션도 없다. 모든 문장이 간결, 명료하다. 주장도 분명하다. 애써 돌려 치지 않고 마르크스처럼 현학적이지도 않다. 풀코스 정식이 아니라 좋은 사케 한잔과 신선한 연어샐러드를 먹는 느낌이다.  


저자는 참 좋은 사람이다. 사회과학적 치밀함 속에서도 그의 휴머니즘은 계속 빛나고 있다.


“ 자본은 자기증식을 할 수 없을 때, 자본이기를 멈춘다. 따라서 언젠가 이윤율이 일반적으로 저하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는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전 사회적인 위기를 분명히 초래할 것이다. 그때 비 자본제 경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탈자본주의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 “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기획되고 집필되었다. 그리고 그 대안을, 현실적인 방식으로 제안한다. 그 제안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해서 [세계사의 구조]를 고진의 시각으로 재구성했다. 마르크스적 세계 해석이 가져온/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양하고 마르크스를 수용하면서 그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생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하면서 자본, 네이션, 국가의 관계 속에서 시대별 사회구성체를 분석하고 그것들의 사회경제적 맥락과 한계를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들을 조용하게 그러나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고진은 이미 적지 않은 나이지만 계속 그의 건필을 요구하고 싶다. 이런 사상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일본의 지적 전통과 인프라가 가져온 탁월한 결과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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