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아 엄마에게 보내는 열 번째 편지
다해야,
지난 편지에 이어 계속 기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지난 편지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오랜 진화의 과정을 거쳐 각자의 표현 방식으로 서로 소통한다고 했지. 기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 이번에는 사회적 사례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서로 알만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같이 본 영화 변호인이 생각났어. 송강호가 주연으로 나오는 그 영화. 거기 이런 대사가 있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학생들을 변호하면서 변호인 송강호와 증인으로 나온 공안 형사 곽도원이 법정에서 주고받는 내용이야.
송강호:(학생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증인의 판단 근거가 뭡니까
곽도원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판단합니다.
송강호 : 국가?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대체 뭔닙까?
곽도원 :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 !!
학생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국가’가 판단한다는 거야. 국가가 판단하면 그걸로 모든 것이 종료된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어. 여기서 국가는 어떤 절대적 존재, 절대 진리, 훼손될 수 없는 신성한 것으로 상정돼. 국가가 결정하면 우리 모두는 복종해야 된다, 는 일종의 선언으로 인정되는 거야. 도대체 국가가 뭐길래 유죄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인지 모르는데 그냥 복종하라는 거야.
그러나 생각해 보자. 국가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근대의 발명품이야. 국가 이전에는 국가가 없었다는 이야기야. 앞으로 국가가 계속 존재할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어. 근대가 시작될 때 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국가를 만든 거야. 사회계약의 결과물이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근대에 등장한 시민/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왕과 갈등하고 때로는 협상하면서 만들어낸 타협의 산물이야. 타협을 통해 합리적 의사 구조체를 만든 거야. 이 구조체는 상시 조직이다 보니 관리자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민/국민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조직/국가의 관리자들을 바꿀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 놨어. 그게 선거야. 선거에 참여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 또는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주권이라고 하는 거고. 그래서 국가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거야.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거지. 국민은 다수라서 대신 일할 관리자를 투표로 결정하고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권한을 주어 일을 시키는 거야.
일을 잘하면 더 하게 하고 못 하면 바꾸는 거지. 그런데 가끔 이상한 인간들이 나타나서 선거제도를 무효화시키거나 왜곡시켜서 자기가 계속 왕 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어. 우리가 흔히 독재자라고 하는 인간들이지. 주로 후진국에서 많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몇 번 있었고. 이 인간들은 일단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 해. 나는 곧 국가다. 내 말은 국가의 명령이다. 거역하면 안 된다. 비판하면 안 된다. 거역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구속시키거나 위협을 가하는 거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거야. 이런 억압적 분위기가 오래되면 사람들 내면에 공포감이 생기고 그 공포심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게 돼요. 끔찍하지.
국가는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야. 이민을 간다는 것은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야. 특이한 몇 나라 빼고는 이민을 불허하는 나라는 없어. 국가보다 한 개인/시민/국민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모든 세계인이 동의하는 거지. 그래서 국민에게서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관리자들이 반복적으로 ‘국가, 국가’ 하면서 떠들면 문제가 있는 거야. 국민의 삶, 국민의 복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거지.
좀 멀리 갔네.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야. 법, 제도, 교육, 직업 모두 다 어떤 시작이 있다는 거야. 발생한 원인이 있어. 원인과 시작이 있으니 당연히 끝도 있고.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없어. 절대적 존재, 절대 진리, 거역할 수 없는 것,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은 무조건 없어. 무조건 무조건 없어. 네가 슬아의 질문에 답할 때 항상 이런 생각을 해. 그래야 슬아의 상상력이 발달하게 돼. 유신독재 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 중 일부는 지금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합리적 비판조차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어. 일제 강점기 때 교육받은 사람은 지금도 조선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무섭지. 오늘 여기까지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