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Dec 28. 2016

에로스는 늘 종말이고 늘 시작된다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저 

 


 한병철이 궁금했다. 언제 한 번 읽고 싶었다. “피로사회”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인용될 때마다 그가 생각났다. 울리히 벡의 ‘위험 사회’ 정도는 안될 것 같지만 그래도 읽어 볼 만하다고 느껴졌다. 최소한 유행 따라가는 트렌디한 내용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 정도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매경  서평을 보고 “에로스의 종말’을 사서 읽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 기사의 제목이다. 


 "페북에 갇힌 현대인… 진정한 사랑은 없어"


 페이스북에 갇혔다? 페이스북을 안 하면 진정한 사랑이 가능한가? 다소 심술 맞은 생각이 들었다. SNS에 관한 저자의 사고가 궁금했다. 혹시 올드한 사람은 아닌가, 알고 싶어 언더라인 처가며 열심히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아니 읽으면서 계속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책 부피가 얇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선 이 책은 한국 독자를 위해 쓴 책이 아니다. 독일 문화권에 있는 교양인을 위해 쓴 독일식 잠언이다. 내용에 나와있는 여러 인용들은 한국 독자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책 내용이 한국 독자인 나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독일인이 된 저자다. 당연히 독일어로 생각하고 독일어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저자의 저서가 나에게 설득력이 있으려면 보편적 관점을 유지해야 된다. 찾을 수가 없었다. 독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에로스에 대한 오래된 잠언이다. 


모든 삶의 영역이 긍정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사랑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는 소비의 공식에 따라 길들여진다. P 51 


정보로 충만한 고선명 영상은 아무것도 불확정적인 상태로 놓아두지 않는다. 하지만 환상은 불확정적 공간 속에 거주한다. 정보와 환상은 서로에 대해 대립적인 힘이다. P 76 


그러한 과학 (실증 과학) 은 서사적이기보다 가산적이고, 해석학적이기보다 폭로적이다. 여기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적 긴장이 없다. P 92 


 인용한 몇 문장을 보면 전체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의 전도사인 저자는이 시대 들어와서  에로스가 종말을 맞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성실하게 여기저기서 근거를 찾아다가 짜깁기를 하고 있다. 구약의 이사야가 독일에서 재림했다. 불의한 시대, 구원이 필요한 시대, 에로스가 다시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앞 날 모르지만 한병철 책은 더 이상 안 봐도 될 것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에로스는 늘 종말이었고 시작이었다. 한병철의 에로스는 종말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에로스는 계속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늘 우리 주변에 있어왔다. 물론 저자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유고 나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푸코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취한다. – 중략 – 푸코는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구호를 자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로 해석한다. P30 


뜻밖의 문장이라 여기저기 관련 글들을 찾아봤다. 저자가 푸코를 오독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성실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푸코가 이런 태도를 취하게 된 시대적 맥락이 있다. 길게 서술할 내용이 아니라서 생략하겠지만 최소 그 근거를 설명하고 푸코를 인용해야 했다. 근데 예언자들은 원래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

매거진의 이전글 과학도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