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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20. 2021

체온측정기를 통해 흐르는 개인 정보들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팬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일상 중 하나는 열화상 체온측정기 앞에서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일부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지금은 관습적 제도화가 되어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되고 있다. 사실 거부할 수도 없다.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이 특정 백신의 접종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체온측정기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사무실에 들어갈 수도 없고 식당에 출입할 수도 없고 취미 생활을 할 수도 없다. 팬데믹의 확산 방지와 평범한 일상을 위해서 우리 모두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지침에 잘 따르고 있다.


체온 측정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전에도 체온을 측정하는 일은 가끔 있었다.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체 특정 부위에 체온측정기를 접촉해 체온을 확인했다. 이런 경험과 팬데믹의 영향으로 우리 모두는 열화상 카메라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대처하고 있다. 사실 열화상 카메라라고 해서 우리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체온 측정의 절차도 어렵지 않다. 열화상 카메라 화면 위쪽에 있는 카메라를 잠시 쳐다보면 된다. 몇 초 안에 체온을 알려주고 출입 가능 여부를 판별한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개인들의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 체온측정기에 그런 기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사이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기록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며 특정 서버에 쌓이게 된다. 열화상 카메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일반 체온측정기의 경우에는 굳이 영상화면이 부착될 필요가 없다. 측정된 온도를 진료카드 등에 기록하면 체온측정기의 역할은 끝난다. 이 체온측정기에 영상화면이 부착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비대면 체온 측정 시스템이 필요했고 적외선 센서를 부착한 열화상 카메라가 일상이 되면서 정보 유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열화상 체온측정기가 가져올 문제점들에 대해 검토할 여유도 없이 이미 열화상 체온측정기는 일상이 되었고 우리 주변에 또 다른 정보 유출의 네트워크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열화상 체온측정기의 문제점에 대해 심층 취재한 5월 13일 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취재 결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100만 원대 중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열화상 체온기의 기판에는 통신 칩이 달렸고, 트래픽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한 모니터링 화면에선 외부 접속을 시도하는 모습이 잡혔다. 방화벽 시스템을 이용한 트래픽 추적에선 중국·미국 내 인터넷 주소를 가진 서버와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체온측정기의 기능은 글자 그대로 체온을 측정해서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와 통신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취재 결과 국내에서 운용 중인 열화상 카메라의 대부분이 외부 통신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유 중 하나는 체온측정기가 의료기기로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통신기자재로 수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로 수입되었다면 식약처의 까다로운 검사 절차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열화상 카메라의 통신 기능에 대해 문제 삼을 수 있었겠지만 방송통신기자재로 수입되면 통신 기능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팬데믹의 혼란스러운 와중에 방송통신기자재가 의료기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체온측정기를 통해 흐르는 개인 정보들이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공공의 목적을 위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개인정보를 수집하려면 반드시 본인의 사전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반할 경우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실제 열화상 체온측정기의 개인정보 수집, 저장, 통신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열화상 체온측정기의 통신 기능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정부가 실태조사조차 못하고 있는 사이에 개인정보는 계속 유출되고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얼굴•음성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특정 회사 서버에 저장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비대면 열화상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은 팬데믹의 산물이다.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열감지 센서를 부착한 화상 카메라는 팬데믹 방지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식약처에서 열화상 체온 측정기의 부작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문제 삼기 힘들 수도 있었다. 팬데믹 초기에는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부작용보다는 코로나19 방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팬데믹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개인들의 정보가 유출된다면 결과적으로 개인과 사회 모두 치명적 결과를 얻게 된다. 본인 동의 없는 개인정보 유출은 철저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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