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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13. 2021

AI가 그린 자화상은 예술작품일까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Ai-Da with self-portrait.  사진 : Leemurz - Own work . 20 May 2021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곡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린다. 이런 뉴스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후부터 우리 모두 AI의 능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AI가 무엇을 하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AI는 이미 우리 일상에 많이 들어와 있다. 적어도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AI의 도움을 받지 않은 영역이 거의 없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AI의 작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작곡의 경우 AI가 만든 곡이 사람이 만든 곡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트로트 작곡가 김도일과 AI작곡가 이봄(EVOM)이 트로트 작곡 경쟁을 했고 김도일 작곡가가 이겼지만 다음 경쟁에서는 누가 이길지 모를 정도로 둘의 실력은 비숫했다. 


 트로트 작곡 경연에서 사람이 이기긴 했지만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과 달리 음악의 경우에는 승패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둘의 차이는 실력이 아니라 두 노래를 부른 가수 홍진영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었다. 다른 신곡 경쟁 또는 다른 방식의 경쟁에서는 다른 결과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곡의 수준이 일정 정도 이상 되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그 곡의 작곡 주체가 사람인지 AI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AI의 학습기간이 길고 학습기간 중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분하다면 AI는 사람 작곡가와 같은 수준의 곡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이후부터는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소설이나 회화의 경우에도 우리는 AI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날이 갈수록 실력도 더 좋아지고 있다. 다만 AI의 생산물이 예술작품인지에 대해서는 논쟁 중에 있다. 특정 AI를 만들려는 의도, AI의 알고리즘 개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제공 등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쟁의 본질적인 질문은 AI에게 과연 자의식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떤 결과물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만든 주체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AI가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AI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의미부여를 할 수 있다면 AI 생산물의 예술성 논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 논쟁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가 최근 영국에서 일어났다. 세계 최초의 초현실적 로봇 예술가 (the world’s first ultra-realistic robot artist)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AI 미술 로봇 아이다(Ai-Da)가 자화상을 그렸고 자화상 세 작품이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2019년 등장한 아이다는 영국 로봇기업 엔지니어드아츠(Engineered Arts)와 협업하여 에이단 멜러 (Aidan Meller)라는 갤러리 운영자가 디자인했고 로봇손은 옥스퍼드 AI 연구진들과 리즈에 있는 학생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아이다는 이미 전시회를 연 경험이 있다. 지난해 첫 전시회에서 아이다는 100만 달러(11억 원) 이상의 경매 수익을 올렸다.



 두 번째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 아이다는 자신이 그린 자신의 얼굴, 자화상 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다는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그렸지만 세 작품 속 아이다의 얼굴은 각각 다르다. 아이다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이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팔을 통해 그림으로 표현되기 전에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는 와중에도 생각은 계속 바뀌고 자신의 얼굴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그런 생각과 욕망을 그림으로 옮겼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아이다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아이다가 자화상을 그리겠다고 스스로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다. 아이다의 자화상 그리기는 에이단 멜러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프로젝트 기획자들은 아이다에게 자화상을 그리도록 프로그래밍을 하고 적절한 데이터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아이다의 학습 또는 생각에 의해 생산물이 만들어진다. 아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다가 생각한다는 것, 이 것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아이다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아이다의 생산물은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다의 생각이 프로그래밍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한다면 아이다의 자화상은 단순한 컴퓨터 그래픽에 불과하다.  


 모든 예술 작품은 자신과 외부와의 관계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들이다. 재해석이나 재구성 이전에 선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인식은 인간의 전유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만의 특성이라고 우리 모두 인정해왔다. 그러나 인식 자체도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스펙트럼은 좀 더 넓어질 수 있다. 아이다의 자화상이 던진 문제의식이 여기에 있다. AI가 자기 학습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계속 생각하고 그 결과물이 나온다면 우리가 그 결과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 굳이 인색할 필요가 없다. 개방적 수용이 오히려 예술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의식을 전복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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