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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an 09. 2021

부활이 없어도 예수를 믿겠습니까

예수는 누구인가. 존 도미닉 크로산 


오래전에 우연히 읽은 '역사적 예수' 이후로 존 도미닉 크로산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그 후로 그의 저서 몇 권을 더 읽었고 지난겨울 공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읽은 다음 이 책 '예수는 누구인가'를 읽었다. 책의 출판연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대충 제목만 보고 사서 읽은 탓에 때로는 오래된 책을 읽기도 한다. 이 책이 그렇다. 읽다 보니 '역사적 예수' 이후 나온 미국 대중의 뜨거운 반응과 저자에게 보낸 중요한 질문을 모아 회신하는 형식으로 편집해서 낸 책이다. 원서 초판이 1996년에 나왔다. '역사적 예수'가 출간된 이후 미국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저자는 복음서를 그리고 예수를 세 가지 방법론으로 분석했다.  교차 문화적 연구, 역사적 연구, 본문 연구가 그것이다. 교차 문화적 연구는 예수 당시 지중해 문화와 다른 문화를 비교함으로써 필요한 정보를 얻고 역사적 연구는 예를 들어 요세푸스의 저술과 로마 제국에 관한 기록들을 분석하면서, 본문 연구는 성서와 성서 바깥에 있는 기록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구전으로 떠돌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문서화됐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이러한 방법론의 결과물인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성서 무오설 또는 성서 문자 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을 경악시켰다. 복음서는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어떤 필요에 의하여 제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창작된 이야기라는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놀랬다. 하나의 예를 보자.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누가복음 2장 1- 4) 


이 이야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치하에서는 전 세계적인 인구조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둘째, 지방적 차원에서 인구조사가 있었지만 해롯이 죽은 지 10년 후입니다. 셋째 인구조사를 할 때 고향으로 가서 등록하지 않습니다. (일부 요약) p 51 


복음서에 나와 있는 호구 조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누가가 어떤 필요에 의하여 예수의 탄생 전후 시대상을 가공한 것이다. '누가의 창작'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물론 창작의 의도는  예수의 탄생 과정을 미화하기 위해서다. 세례 요한의 죽음 과정 역시 창작이다.  


헤롯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의 잔소리에 못 이겨, 요한의 체포를 명하고, 그에게 사슬을 채워 감옥에 가두었던 자다. 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의 관계가 '불륜'이라고 말해 헤롯을 자극했다. 헤로디아는 증오에 사무쳐서 요한을 죽이고 싶었으나,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요한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헤롯은, 그를 특별 대우했다.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들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워하면서도, 그를 멀리 할 수 없었다. 요한에게는 헤롯을 계속 잡아끄는 어떤 힘이 있었다. 마가복음 6장 17일 - 20절 


위 이야기 역시 매우 극적인 이야기지만 그러나 창작입니다. p 70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지중해 연안의 한 이야기를 어떤 필요에 의해서 마가가 삽입했다는 것이다. 요한의 체포와 처형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 근거는 충분하지만 헤로디아의 간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동박 박사의 출현도 어린 예수의 회당 토론도 베드로의 세 번 부인 후 참회도 저저들의 어떤 필요에 의해 창작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분석이 계속 이어진다. 


저자는 이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에 대해 분석을 한다. 우선 예수의 처형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말한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모두, 예수가 로마의 유대 총독의 명령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p 163


왜 예수는 처형되었는가. 저자의 의하면 당시 로마 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세상을 예수는 꿈꾸고 있었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나라는 새로운 종류의 밥상공동체로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비차별적인 밥상은 비차별적인 사회를 축소된 형태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전은 근본적으로 고대 지중해 연안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들과 충돌했습니다. p 10 


예수는 로마에 의해 처형당해야만 했다. 역사적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십자가 처형 그 이후부터는 복음서 저자들의 창작이다저자는 예수가 십자가 운명 후에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청하고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에 싸서 최근에 바위를 깎아서 만든 자신의 새 무덤에 모셔두고 큰 돌을 굴려 입구를 막고 나서 그곳을 떠났다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수가 그의 친구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비역사적이며, 매장되었다면 적들에 의해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바위를 파내어 만든 무덤이 아니라 동물들이 시신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얕은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이것은 불유쾌한 결론입니다만, 저는 이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p 198


저자는 말한다. 부활은 하루 만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며 이미 죽은 예수가 여전히 제자들 사이에서 계속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는 제자들의 고민의 결과이며, 부활한 예수가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난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지도력 싸움 (p203) 때문에 생긴 문학적 창작들이며 하나의 은유다.     


여전히 그리고 강고하게 예수를 믿고 있는 저자에게 부활은 " 저에게 있어서 부활의 핵심은 하느님의 능력이 이제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예수를 통해 그를 믿고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p 209


부활이 없어도 예수를 믿겠습니까?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육체의 부활이 없어도 예수를 믿겠습니까? 저자의 답은 이렇다. 예수의 육체적 부활은 없었고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부활한 예수를 신앙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몇 문장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세계가 내세 afterlife를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 안에만은 내세 신앙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습니다. p 213 


우리의 문제는 지옥에서 눈을 피하여 천국만을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생각은 천국과 지옥은 둘 다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는 것입니다. 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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