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사회학을 공부하다 보면 개념어의 번역 과정이 궁금해질 때가 많다. 근대에 들어와 형성된/체계화된 서구의 개념어가 왜 이런 표현으로 번역되었을까. 예를 들어 Communism 은 어떤 과정을 거쳐 또는 누군가의 주도적 영향력에 의해 '공산주의'로 번역되었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대부분, 사실상 거의 대부분 서구의 개념어 - 주로 영어로 표기된 - 는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한자로 번역되었었다. 아시아에서 서구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흡수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당연히 엄청난 지적 노고가 필요한 일이었다. 번역 당시, 서구의 개념어에 대응하는 일본어 (사실상 한자, 다행히도)가 없었기에 적절한 한자를 찾거나 조어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일본 학자들은 당시 도입된 개념어들의 적절한 한자 대응어를 찾기 위해 우선 그 개념어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했다. 영어뿐 아니라 당시 유럽어 공부는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과 희랍어까지 공부했다. 그 개념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이번에는 동양 고전을 찾아 적절한 대응어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은 서구 학문을 자기의 시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서구 개념어가 동양의 언어로 재구성되었을까, 알고 싶었다. 이 책은 그런 요구를 어느 정도는 채워주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빈약했다. 개념어 하나로 한 챕터를 채우고 있다. 설명이 너무 길다. 너무 친절하다. 번역 당시 일본의 학문적 분위기, 동양 고전에 대한 설명, 개념어 자체에 대한 설명이 너무 디테일하다. 일본 대학 학부생 교재로는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필요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내가 원했던 것은 개념어 하나에 한두 페이지 정도의 분석이었다. 몇 장 읽고 나서 내 기대가 배반당한 것을 알았다. 선택한 내가 잘못이다. 애초 이 책은 1870년 ~71년에 쓰인 백화연환, 이라는 책에 대한 주석서 성격이 강하다. 일부 내용을 번역하고 저자가 해석을 하면서 개념어의 번역 과정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 제목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읽다가 언더라인 표시한 곳 적어둔다.
자유학예 (LIBERAL ARTS, 인문학)의 내용은 논자에 따라 다양합니다. 전형적으로는 문법, 수사학 변증론,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라는 일곱 가지 내외의 분야로 이루어집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문과의 학술과 이과의 학술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이 별개로 보일지 모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음악은 수학의 일종으로 다루어집니다. 60
사람이 지식을 어떻게 가시화하거나 도상화하는가/해왔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유럽에서는 지식 전체를 나무로써 파악하는 발상이 있었습니다. (학술) 지식만 그렇게 한 게 아닙니다. 계통수라는 형태로 가계, 생물, 언어 등 다양한 대상의 관계를 묘사했습니다. 87
자연 NATURE과 대비되는 아트 ART는 사람이 손을 댄 것을 말합니다. 인공이나 인위 같은 한자어가 해당됩니다. ARTIFACT 인공물 ATRIFICIAL 인공의 과도 연결되는 의미입니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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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제1장 「백학연환」이라는 문서
우선 전체를 살펴보자/ 차례를 읽다/ 학술기예/ 학술의 방략/ 신치지학/ 진리
제2장 백학연환은 무엇인가
「백학연환」 본문 속으로/ 그리스어 철자 문제/ 철자가 달라지는 이유를 추리하다/ ‘바퀴 안의 동자’의 수수께끼/ 둥근 고리를 이룬 교양/ 지(知)의 릴레이/ 정치학의 엔사이클로피디아?/ ‘정치학의 엔사이클로피디아’의 정체/ 법학의 엔치클로패디/ 문헌학의 엔치클로패디/ 철학의 엔치클로패디/ 학술의 엔사이클로피디아/ 책으로서의 ‘엔사이클로피디아’/ 지식의 나무/ 학역(學域)을 변별하다/ 떡은 떡집에서/ 중국의 학술 분류
제3장 ‘학(學)’이란 무엇인가
동사로 생각하다/ 술, 기, 예의 원뜻/ 왜 Science and Arts인가/ 왜 Scio와 ars인가/ 학문의 정의-해밀턴을 인용/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자/ 학에는 정의가 있다
제4장 ‘술(術)’이란 무엇인가
이치를 탐구하여 달성하기 쉽게 한다/ 술의 정의가 나오는 출전을 찾다/ ‘아트’를 둘러싼 거대한 말 전달 게임/ 술의 정의는 어디서 인용했을까/ 술의 정의를 둘러싼 지(知)의 연쇄
제5장 학과 술
학과 술의 구별/ 아트와 사이언스는 혼동하기 쉽다고?/ 사이언스의 동의어/ 라틴어 인용문의 출처/ ‘에피스테메’와 ‘테크네’/ 어떤 〈웹스터 영어사전〉인가/ 의학, 의술을 구체적인 예로 들다/ 진리에 관여하는 두 가지 방법
제6장 관찰과 실천
관찰과 실천/ 오용에 주의하라
제7장 지행(知行)
지행이란 무엇인가/ 가상의 적은 누구인가/ 지는 폭넓게, 행은 세부적으로/ 온고지신/ 일신성공/ 지는 위로도 향하고 아래로도 향한다/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는 않는다/ 에도의 ‘학술’-가이바라 에키켄의 경우
제8장 학술
‘단순의 학’과 ‘적용의 학’/ ‘기술’과 ‘예술’/ 〈웹스터 영어사전〉의 정의/ 술의 구별을 비교하다/ 만민의 학술과 진정한 학술
제9장 문학
문학 없이는 진정한 학술이 될 수 없다/ 문학의 힘/ 세계 3대 발명/ 동서양 활판 인쇄 사정/ 출판의 자유/ 글은 도를 관통하는 수단이다/ 글은 도를 싣는다/ 글의 힘-일본의 경우/ 하늘의 도를 따라야 한다/ 옛 서양에서는 학술을 칠학으로 정했다/ 휴머니티스/ 문장학을 하려면 다음의 오학을 배워라/ 어원을 밝히는 학문인 산스크리트
제10장 학술의 도구와 수법
학술과 글의 관계/ 학술에 관련된 시설/ 다양한 전문박물관/ 특허청이 박물관이었다고?/ 학에는 실험이 필요하다/ 공리에만 빠지려는 걸 방지하라/ 불립문자/ 서적상의 논의/ 에도 유학자들의 경우/ 글은 모든 사람의 이해를 돕는 게 주목적이다
제11장 논리와 진리
신치지학-진리를 탐구하는 방법/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논리학/ 왜 ‘연역’이라고 했는가/ 연역을 고양이와 쥐에 비유하다/ 서적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양명은 학문에서 마음을 중요시했지만/ 귀납법을 반찬 먹기에 비유하다/ 사과와 만유인력/ 귀납법-정치학의 경우/ 여러 학문이 탐구하는 진리의 예
제12장 진리를 깨닫는 길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학(學), 진리를 응용하는 것은 술(術)이라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하지만.../ 진리의 가치를 중국 고전에 따라 말하자면/ 지식의 연상 작용/ 니시 아마네식 노트 필기법/ 경계해야 할 돌팔이 의사/ 진리를 아는 두 가지 길/ ‘음표’를 천문학에 비유하자면/ ‘무반’이란 무엇인가/ 소극은 적극으로 이어진다/ 우주에서 보면 극미물/ 분광분석까지 거론하다/ 산초어라는 기괴한 물고기/ 주인과 도둑
제13장 지(知)를 둘러싼 함정
혹닉과 억단이라는 두 가지 함정/ result와 knowledge의 구별/ 호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안색이 변하다/ 학문의 대율/ 삼단계설/ 천둥의 삼단계/ 학에서 술로-응용의 삼단계/ 학술에도 재능의 유무가 있다/ 영민둔완(頴敏鈍頑)/ 학술에는 재(才)와 식(識)이 있다/ 존 로크가 말하기를/ 재식을 그릇에 비유하다
제14장 체계와 방법
체계와 방법/ 체계-진리를 통합하다/ 체계-건축과 중국의 우주론을 예로 들다/ 기술적(記術的) 학문/ 체계화된 역사학이란/ 방법이란 무엇인가
제15장 학술의 분류와 사슬
사슬로 연결된 이미지/ 보통학과 개별학/ ‘보통’이란 무엇인가/ ‘개별’이란 무엇인가/ 심리와 물리/ 심리와 물리를 군사 용어에 비유하다/ 심리와 물리의 관계/ 학술 분류의 변화/ 새로운 학술 지도를 위하여
후기
역시 웹스터 사전!/ 이 책을 내기까지/ 감사의 말/ 마치며
부록
『니시 아마네 전집』 총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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