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홍열 May 13. 2024

게임중독 질병코드화는 적절한가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한국게임이용자협회가 22대 총선 후 국회의원 당선자와 각 정당에 매주 게임 관련 정책을 개발하여 전달하고 있다. 정책은 주로 게임산업진흥 및 K게임 경쟁력 강화, E스포츠 및 게임·버튜버 방송 콘텐츠 육성 등 게임 산업에 대한 국가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가운데 지원과 관계없는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다. 게임중독을 질병코드화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개인 성향에 따라 과몰입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게임중독을 굳이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게임 자체를 질병의 원인으로 오인케 해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고 게임이용자를 잠재적 중독자로 여겨 게임 이용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협회가 이렇게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의 포즈냑 박사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등록한다고 공식 발표한 후 채 2년이 안 된 2019년 5월 24일 WHO가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코드 등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질병코드 6C51로 등록된 '게임이용장애'는 이제 질병코드 6C50로 등록된 도박 중독과 같은 부류인 중독성 행위 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WHO의 분류체계를 개별 국가에서 수용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개별 국가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게임 중독 (PG)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WHO의 신속한 결정과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찬반 논쟁이 진행 중이며 정부 부처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은 국제 기준에 맞춰 질병코드를 도입하면, 게임이용장애 실태 파악을 통한 공공의료 증진과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게임업계와 의료계 역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관련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의료계는 게임 중독 역시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질병이라 WHO가 제정한 기준에 따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며, 게임업계는 게임 중독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게임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견 서로 반대되는 두 의견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두 의견을 비교하기 전에 우선 WHO가 펴낸 국제질병분류(ICD,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번째 버전인  ICD-11, ‘중독 행동에 따른 장애' 카테고리에 추가된 '게임 장애(Gaming disorder)' 내용을 보자. 여기에서는 정신적·육체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오랜 시간의 게임, 일의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게임에 몰두하는 행위 등이 게임 장애로 규정된다. 적절한 수준이면 상관없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개인과 사회의 자정능력 대신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임은 도박과 알코올처럼 중독이 예상되는 예비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몰입은 비단 게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적 활동 영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왜 게임이 중독의 매개로 선정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게임의 종류 관련, ICD-11에서는 온·오프라인 게임 구분 없이 모든 게임에 대해 게임중독을 적용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주요 대상은 온라인 게임이다. 아날로그 게임 또는 오프라인 게임의 경우 중독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온라인 게임의 경우 중독 정도를 분석하기가 용이하다. IP를 통해 이용자를 추적하기도 쉽고 게임 콘텐츠 내용 또한 쉽게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진단, 처방, 치료의 프로세스도 용이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예를 들어, 특정 온라인 게임이 선풍적 인기를 얻어 게임에 중독된 일부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에 빠지거나 일시적 일탈 현상을 보이면, 언론은 게임중독에 의한 심각한 폐해를 언급하며 게임의 폭력성, 중독성 등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에는 중독 예방 및 중독 치료에 관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의 멘트도 포함된다. 기사 말미에는 온라인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한 IT 전문가들의 기술적 조언도 추가된다. 하루 몇 시간 이상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강제 제어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거나, 늦은 밤 시간에는 접속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하자는 방안들이 거론된다. 게임은 이제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되고 청소년들은 치료 대상이 된다. 


WHO 결정은 게임중독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온라인 게임에 대한 주도권을 개인으로부터 전문가 집단으로 가져가겠다는 의사표시다. 오프라인 게임과 달리 통제분석이 가능한 온라인 게임을 철저하게 해부해, 있을지도 모를 문제점을 사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과는 다르게 게임은 일종의 스포츠와 같은 레저의 일종이다. 몰두의 정도는 취향과 상황에 따라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행위가 계속 질병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면 남는 것은 의사와 환자뿐이다. 온라인 게임의 일부 부작용을 구실 삼아 인간의 자유로운 레저·취미 활동에 불필요한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규정이나 규제가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틱톡' 강제 매각이 의미하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