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중국의 대표적 ICT 기업 화웨이가 쉽지 않은 도전을 시작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로 양분된 모바일 OS시장에 ‘하모니(Harmony, 훙멍)’라는 OS를 출시한 지 4년 만에 하모니 차세대 버전인 ‘하모니넥스트’를 론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내 출시될 하모니넥스트는 하모니의 업데이트 차원이 아니라, 화웨이의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하모니넥스트 이전 화웨이 OS는 일종의 개방형 OS였다. 안드로이드용으로 개발된 모바일 앱들은 대부분 별다른 수정 없이 화웨이 하모니에서도 쓸 수 있었다. 화웨이 모바일 사용자들은 안드로이드 앱 사용에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하모니 자체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화웨이 로고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개방형 OS였던 하모니가 하모니넥스트부터는 폐쇄형 OS로 전환된다. 하모니넥스트는 애플의 iOS와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앱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모니넥스트부터는 화웨이 모바일폰에 앱을 업로드하려면 하모니넥스트용 앱을 만들어야 한다. 하모니넥스트용 앱을 만드는 것은 개발자들이 할 일이지만, 그전에 시장 수요가 있거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해야 사업자들이 개발을 지시할 수 있다. 즉 화웨이 모바일폰 사용자들이 현재 어느 정도이고 향후 모바일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과 예측이 있어야 투자나 개발이 가능하다.
모바일 생태계라는 표현처럼 모바일은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앱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모바일 속 앱을 통해 쇼핑하고 거래하고 콘텐츠를 즐기고 공부하고, SNS를 하면서 소비하고 생산한다. 앱이 많을수록 당연히 생태계는 풍요로워진다. 반대로 앱이 빈약하면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구축됐다고 하더라도 이내 쇠퇴한다. 화웨이의 하모니넥스트가 쉽지 않은 도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모바일 생태계는 오직 두 개의 OS에서만 가능했다.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등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한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퓨라 70'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무모한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화웨이 모바일폰이 시장에 많거나 전망이 좋아야 한다. 화웨이가 폐쇄형 OS 하모니넥스트의 론칭을 선언한 배경은 일단 화웨이 모바일폰의 시장 점유율 증가에서 나온다. 작년 4분기 하모니 OS를 적용한 화웨이 모바일폰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17%로 애플 21%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작년 8월 화웨이가 출시한 5G 모바일폰 ‘메이트60 프로’가 출시 한 달 만에 150만 대 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영원한 1위 애플을 단 4% 차이로 추격한 것이다. 메이트60 프로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올해 1월 첫 2주 동안 화웨이는 중국 모바일폰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적어도 중국 내에서는 화웨이 모바일폰이 항구적으로 1위가 될 수 있고 따라서 화웨이 OS의 성공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중국 내 판매 1위는 화웨이 OS 성공의 최소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이미 구축해 놓은 모바일 생태계에 맞서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의 어느 정도 의미 있는 판매가 이루어져야 한다. 화웨이의 2023년 세계시장 점유율은 4%로, 1위 애플 20.1%, 2위 삼성 19.4%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다. 3위 샤오미(12.5%), 4위 오포(8.8%), 5위 트랜션(8.1%) 모두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이라 추월하기가 쉽지 않다.
애플 로고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글 로고 [샌프란시스코 로이터=연합뉴스]
게다가 현재 모바일폰 OS 점유율은 안드로이드가 72.2%, iOS 26.99%로 둘이 합치면 거의 100%에 가깝다. 애플의 경우 전체 점유율의 1/3이 채 안 되지만 강력한 사용자 충성도를 보유하고 있어 애플 고유의 생태계가 잘 유지되고 있다. 화웨이의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 내 모바일폰 점유율 증가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중국인들의 애국소비 열풍 외에 다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애국소비는 화웨이 신제품에 대한 호평과 미국과 무역 분쟁 등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강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삼성 등이 독자 OS를 개발, 모바일폰에 탑재했다가 이내 포기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시장 진입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개방형 OS 안드로이드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웨이가 독자 OS를 주장하는 이유는 화웨이 차원이 아니라 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일 수 있다. 틱톡 사태 등을 비롯해 미국과의 정보보안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면서 독자 OS를 보유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화웨이를 통해 발현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특별한 매력이 없는 폐쇄형 OS가 성공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지금으로 봐서는 잘해야 중국 내에서만 유통되는 폐쇄형 OS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