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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열 Jun 03. 2024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수도검침원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서울시 소속 수도검침원의 업무가 2040년 종료된다고 서울시가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서울시, '수도(水道) 행정'에 인공지능… '40년까지 스마트 검침 전면 도입’ 제하의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기계식 수도 계량기를 사물인터넷 등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검침 시스템’으로 교체한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의 도입이 완료되면 1924년부터 모든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수도 사용량을 체크하던 수도검침원이 11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5G 등 디지털 솔루션 및 인프라의 발전이 100년 넘게 유지해 온 검침원에 의한 수동 점검 시스템을 퇴장시키고 있다. 


지능형 스마트 검침 시스템 개념도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보도 자료를 보면 그동안 아날로그 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기계식 수도 계량기와 연결된 수도 검침원 체제가 만든 수동식 점검 시스템은 민원의 주요 대상이었다. 수도요금 관련 민원은 지난해 기준 80만 건으로,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접수되는 민원 중 ‘교통’ 다음으로 많았고 구체적 민원 내용 파악을 위해 시내 8개 수도사업소 전화상담 직원 73명, 요금심사 직원 141명이 업무를 담당하는 중이다. 민원의 주요 내용은 이사하게 되는 경우 중간 정산 문제와 누수로 인해 발생한 부당 요금에 대한 항의 등으로 나타났다. 모두 디지털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민원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새로운 시스템은 수도계량기함 내부에 온도를 자동으로 감지하는 센서를 설치, 겨울철 ‘동파 우려’ 시 자동으로 시민에게 알림을 보내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매년 3천 건 이상 발생하는 수도계량기 동파를 예방할 수 있게 됐다. 또 일정 기간 물 사용량이 없는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등 위기가구를 자동으로 분석해 시와 자치구 복지 부서로 위기 상황을 알릴 수도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기술의 안정성, 실제 효용성, 성공사례 분석, 예산 문제 등으로 오랜 기간 준비 과정을 거쳤고 이제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가 물꼬를 트면서 이제 다른 지자체도 실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자동검침 시스템이 도입되면 당연히 검침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수도의 경우 새 시스템이 최종 완성되는 2040년까지는 대안 마련의 시간이 있어 서울시설공단 소속 수도 검침원 352명은 비교적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미리부터 스마트 계량기 사업을 추진한 전기 분야의 경우 2025년부터 전기 사용 검침 업무가 스마트 계량기를 통한 원격 검침으로 전환되어 약 1500명의 한전MCS 소속 검침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가스 검침원의 상황도 유사하다. 도시가스 스마트 계량기 설치가 늘어나면서 가스 검침원의 일자리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우리 일상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검침원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 챗봇 (PG) (연합뉴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본격화되면서 수도, 전기, 가스 검침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지만, 근대화 초기에는 이 업종이 인기 있는 직업들이었고 일종의 전문직이었다. 수도, 전기, 가스 자체가 이전에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신문물이었기 때문에 이 업종에 종사하려면 최소한의 근대적 교육을 받아야 했고 전문적 용어를 배워야 했다. 한번 구축된 생활 인프라를 거부하고 다시 전근대로 회귀하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한 번 검침원이 되면 정년에 이를 때까지 일거리는 계속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업종은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관리하고 있어 안정성도 보장된 좋은 직업이었다. 

이렇게 유망했던 전문 직업이 고등교육이 일반화되고 국민들의 문해력과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노무직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검침 업무를 자동화, 디지털화하면서 이제 검침 업무는 사람의 지능이나 경험이 필요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사례는 비단 검침원뿐만 아니다. 전화교환원들도 당시에는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자동화되어 직업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아날로그 사진관의 현상, 인화 업무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고 아주 소수의 인력이 마니아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도검침원 사례는 다시 우리에게 변화의 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직업들도 어느새 하나둘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고 현재 유용해 보이는 직업들도 미래 어느 시점에는 조용히 없어질지 모른다. AI 시대에는 그 변화의 폭과 속도가 더 급격해서 우리의 예측조차 무용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직업이 유망하다거나 또는 유망해 보인다는 전망은 그저 전망에 그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예측 너머에서 계속 놀라운 결과물들을 생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 진화의 과정에서 끝까지 생존한 호모사피엔스의 장점이 다시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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