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인구구조 변화,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 모색’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 연구위원은 AI와 로봇을 활용한 기술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위원은 자신이 작성한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연구보고서를 인용하며 구체적으로, 만약 지금 AI와 로봇을 활용한 기술을 현장에 적용한다면 국내에 존재하는 38.8%의 일자리의 70% 이상의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고 2030년에는 현재 형태의 일자리의 약 90%에서 직무의 9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AI 일자리 대체 (PG) (이미지=연합뉴스)
미래 일자리 감소 및 대체 등에 관한 이런 종류의 예측 보고서는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여러 분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사회, 노동, 경제, 경영, 미래예측 관련 기관들에서 작성 배포되기 때문에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들이 왜 감소하는지 또는 없어지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들이다. 한 위원은 우선 직종을 저임금 직종과 고숙련 직종 또는 전문직으로 크게 나누고, 저임금 직종 직무의 많은 부분이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위원의 이런 분석은 현재 업무가 얼마나 많이 자동화될 수 있느냐에 근거하고 있다.
한 위원은 전문직의 경우 가까운 미래에 대체될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된다면서 그 이유로 직무 구성의 복잡성, 본질적으로 사람의 판단이 중요한 업무, 약간의 오류 가능성도 용납될 수 없는 일, 고도의 창의성이 필요한 상황을 예로 들고 있다. 미래에는 전문직의 자동화도 현재보다 좀 더 진전되겠지만, 기초 업무 수준에서의 자동화 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AI 도입 정도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30년의 AI 기술은 주방장 및 요리연구가, 패스트푸드 종업원, 냉난방 설비 조작원, 음료 조리사 등의 전체 직무가 자동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고, 의회의원·고위공무원 및 공공단체 임원(64%), 항공기 조종사(78%), 작가(80%) 등은 직무 자동화 비율을 비교적 낮게 예측했다.
자료 출처= ‘인공지능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정책방향’ 연구보고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 연구위원)
자동화 정도에 따라 어떤 직업이 소멸될지를 예측하는 이런 분석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이런 방법론은 과학기술이 전근대 생산양식을 대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보편적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에 오랜 전통을 갖고 있고 지금도 설득력 있는 방법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이 AI시대 또는 포스트 AI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다른 예측 보고서를 살펴보자. 한국은행의 한지우 조사역과 오삼일 고용분석팀장이 작년 11월에 발표한 ‘BOK 이슈노트: AI와 노동시장 변화’란 제목의 보고서 역시 AI가 향후 어떤 직업을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지만 결론은 한 위원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그래픽] 직업별 AI 노출 지수 백분위 (서울=연합뉴스)
이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고소득·고학력 일자리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필자들은 직업별 ‘AI 노출 지수’라는 방법론을 활용해 특정 직업이 얼마나 AI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특정 업무가 AI에 의해 얼마나 대체 가능한지를 측정하기 위해 직무내용 설명서와 AI 관련 특허 제목이 얼마나 중복되는지를 동사·명사 조합을 통해 분석했다. 특정 직무내용 설명서와 AI 관련 특허 제목에서 사용된 동사·명사의 중복이 많은 경우 그만큼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허 데이터를 통한 미래 예측 방법론은 기술 기반의 시장 트렌드나 신사업을 선택할 때 유용한 미래 예측 도구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AI 노출 지수’를 직업별로 적용해 본 결과, 대표적인 고소득 직업인 일반 의사(상위 1% 이내), 전문 의사(상위 7%), 회계사(상위 19%), 자산운용가(상위 19%), 변호사(상위 21%) 등이 높게 나타났다. 즉 이런 일자리들은 AI에 의해 대체 가능성이 큰 직업들이라는 것이다. 반면 음식 관련 단순 종사자, 대학교수 및 강사, 상품 대여 종사자, 종교 관련 종사자, 식음료 서비스 종사자, 운송 서비스 종사자, 기자 등은 AI 노출 지수가 낮게 측정되었다. AI가 대체하기 힘든 직업들이란 것이다. ‘AI 노출 지수’를 통한 분석은 KDI 한 위원의 분석과 일부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둘 다 나름대로 합리적 분석틀에 기초해 결론 내렸기 때문에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미래는 두 보고서 중 하나로 굳어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길로 진입할 수도 있다. 칼럼의 제목은 “미래 일자리에 관한 두 개의 시각”이지만 실제 우리는 여러 시각을 갖고 있다. 미래는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결정되지 않고 여러 요인이 결합되고 결합된 요인들이 시대적 상황과 조우하고 갈등하면서 나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모사피엔스의 사회적 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인문학적 통찰력과 사회과학적 분석력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